사례로 읽는 임상심리학
목 차
Review 1. 로샤의 색채반응(C) ····················································································································3
Review 2. 로샤의 인간운동반응(M) ·······································································································10
Review 3-1. 로샤의 음영반응(Y) ·············································································································18
Review 3-2. 부모 상실에 대한 유아와 아동의 반응 ·······························································21
Review 4. 사고장애 ············································································································································25
Review 5. 로샤의 형태반응(F) ···················································································································32
Review 6-1. 로샤의 대칭반응 ····················································································································36
Review 6-2. 정신분열증의 정신병리 ····································································································36
Review 7. 우울증의 인지행동치료 ·········································································································41
Review 8-1.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정동장애의 로샤 반응 차이 ····································54
Review 8-2. 양극성 정동장애의 인지행동치료 ············································································56
Review 9-1. 로샤의 희귀부분반응 ·········································································································64
Review 9-2. 심리적 내면세계에서 공상의 역할 ·········································································65
Review 10. 정신분열형 성격장애의 인지행동치료 ····································································67
Review 11. 편집증의 인지이론 및 치료 ····························································································70
Review 12. 망상에 대한 인지이론 및 치료 ····················································································78
Review 13. 환청에 대한 인지이론 및 치료 ····················································································88
Review 14. 불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98
Review 15.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이론: Clark ··············································································103
Review 16.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접근 ····················································································117
Review 17. PTSD의 인지행동이론 ······································································································130
Review 18.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의 인지치료 ············································································137
Review 19.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이해와 치료 ·········································································142
Review 20. 변증법적 행동치료 ··············································································································149
Review 21. 폭식장애의 위험요인과 치료 ·······················································································159
Review 1. 로샤의 색채반응(C)
본 장에서는 로샤 검사의 결정인 중 하나인 색채 반응의 임상적 의미를 살펴보도록 한다.
색채 지각과 정서와의 관계
Rapaport에 따르면 색채반응이 반영하는 심리 영역은 다음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피검자의 정서 표현과 반응의 주된 방식은 무엇인가, 둘째, 충동과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셋째, 외향적 경향성은 어떠한가이다. 로샤 반응에서 색채 및 색채와 형태와의 관계는 정서를 적절하게 표출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지연하는 능력의 지표가 된다.
한편, Schachtel은 형태지각이 능동적으로 구조화하고 객관화하려는 타가중심적(allocentric) 지각적 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색채 지각은 수동적이고 자가중심적(autocentric)인 태도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Schachtel은 이를 "눈은 색채에 사로잡히고, 형태는 눈에 사로잡힌다(Color seizes the eye, the eye grasps form)"고 표현하였다.
색채 지각은 수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며, 특정한 감정 혹은 기분을 수반한다. 색채란 지각되면서도 느껴지는 것이며 따라서 자가중심적 태도의 쾌-불쾌, 편안함-불편함의 차원이 개입된다.
감정과 정서는 본질적으로 수동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Freud는 정서 경험을 근본적 수동성(essential passivity)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의식적 통제를 유지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아와 달리 정서는 추동의 파생물이며 추동 만족의 대체 형태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정서 경험은 즉각성, 자극-반응 연결의 직접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색채와 정서가 서로 관련된다는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색채와 정서 모두 수동적으로 경험되는 것이고,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쾌-불쾌 차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즉 둘 모두에 자가중심적 지각적 태도가 밑받침되고 있으며, 때문에 로샤 검사에서의 색채 자극에 대한 반응은 정서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색채와 형태의 관계: Klopfer
다음에서는 색채와 형태의 관계에 따라 각 반응이 어떤 해석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Klopfer와 Rapaport의 논의를 살펴볼 것이다.
Klopfer는 색채 결정인 채점을 크게 FC, CF, C로 나누고 각각의 임상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FC(Form-color responses)
(1) Natural FC
대상이 분명한 형태를 지니고 개념 형성에 반드시 색채가 사용되며 이 때 그 생물 혹은 대상의 본래 색깔을 사용한 경우 FC로 채점한다. 이러한 반응은 피검자가 정서적인 자극을 잘 통제할 수 있으며 상황의 정서적인 요구에 적절한 감정과 행동을 보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프로토콜에서 FC반응이 현저할 경우 정서적 욕구의 충족을 중시하며 유쾌하고 매력적인 대인관계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타인에게 의존적인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FC가 CF보다 많으면 통제된 정서반응의 경향을, CF가 거의 없을 경우 과잉통제 가능성을, CF가 FC보다 많으면 정서 반응이 통제되지 못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2) Forced FC(F↔C)
2번 카드의 위 빨간 부분을 보고 ‘빨간 동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대상의 형태가 분명하지만 색채를 억지스럽게 사용한 경우에 채점한다. 색채와 형태 간에 통합의 필요성을 지각하고 있으나 성공적으로 이 둘을 자연스럽게 통합하지 못한 반응을 말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서 느끼는 긴장감,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쉽게 사회적 기술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개념에 색채를 통합시키는 것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필요성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정서적 상황에서 불편감을 경험하지만 대인관계에서 심하게 위축되지는 않는다.
(3) Arbitrary FC(F/C)
카드 자극을 보고 형성한 개념과 색채가 반드시 서로 관련되지는 않는 경우, 예를 들어 색칠된 지도, 의학 도표 등과 같은 반응을 말한다. 이는 정서 자극에 대해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피상적이고 행동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현실적 요구와 실질적으로 통합된 반응을 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대로 그냥 반응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황에서 진실한 정서적 느낌이 부족한 채 관습적인 방식으로만 반응하는 경향성이 시사된다. 진솔한 사회적 관계에서 정서적 교류에 대한 신경증적인 회피를 시사할 수도 있다. 특히 F/C- 반응은 스스로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정신증 환자에게서 종종 나타난다.
(4) Symbolic FC(FCsym)
분명한 형태를 지닌 대상과 관련하여 색채가 상징적으로 사용된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2번 카드에서 ‘할머니 두 명’이라고 반응하고, 질문 단계에서 빨간색이 분노, 십자가 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경우이다.
(5) FC-
분명한 형태를 지닌 색채 개념이 반점 영역에 부정확하게 적용된 경우, 예를 들어 9번 카드 아래 분홍색 부분을 네 개의 사과로 본 반응 등을 말한다. 이는 정서의 통제가 와해되었음을 의미한다.
2. CF(color-form response)
CF의 경우도 FC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범주가 가능하며 해석 방식은 모두 유사하다. 다만 CF는 FC에 비해 일차적으로 형태보다는 색채에 의한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반응이다. 정서적 통제가 상실되었다는 것은 통제되지 않은 공격성이 나타났음을 의미할 수 있다. 공격적인 CF반응인 폭발, 불, 피와 같은 반응이 도형 전체에서 나타나면 이는 통제에 대한 강한 반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동적인 CF반응(꽃, 아이스크림 등)이 있으면서 다른 공격적인 반응 내용이 나타나지 않는 프로토콜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공격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주변의 정서적 요구와의 갈등으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특성을 시사한다.
CF반응이 없다는 것은 환경과 정서적인 교류가 부족함을 의미한다. 이는 과도한 통제의 결과이거나 정서 자극에 대한 반응성의 결여 때문일 수 있다.
3. C(pure color responses)
이는 색채 중심의 반응으로 형태가 완전히 무시된 반응이다.
(1) Pure color(C)
정서적인 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폭발적인 정서반응을 의미한다.
(2) Color naming(Cn)
‘빨간색이네요, 녹색이군요.’ 등 색채의 이름을 대는 것으로, 의미나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색채의 통합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반응이다. 이는 정서적인 충격에 압도당하여 통합된 통제감을 가지고 정서 자극을 다루지 못함을, 외부 세계를 위협적인 대상으로 지각하는 동시에 자신은 이에 대처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함을 의미한다. 성인에게서 매우 드문 반응이며 병리 수준이 심각함을 반영한다.
(3) Color description(Cdes)
예를 들어, ‘파스텔 톤의 색들이 아주 예쁘고 부드럽네요.’라고 말하는 등 카드의 색채를 기술하는 반응으로 색채 명명보다는 높은 수준의 반응이다. 이는 통제가 어려운 정서적 충격 상황에 의해 강하게 흔들리지만 외적으로는 통제에 성공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통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4) Color symbolism(Csym)
색채만으로 도형을 지각하고 개념을 형성하며 도형의 형태에 개념을 부합시키려는 반응이다. 예를 들어 ‘여기 이것은 살아 있고, 앞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무엇인 것 같아요’와 같은 반응이다. 이는 과제를 회피하는 동시에 지적인 수행을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색채와 형태의 관계: Rapaport
Rapaport 역시 색채 반응을 C, CF, FC 세 가지로 크게 구분하고, 색채 인상의 강도와 색채가 지배적인 정도가 뒤로 갈수록 감소된다고 하였다. 그는 sumC 계산에서 가중치를 각각 1.5, 1.0, 0.5씩 주도록 하였으며, 이 지표는 질적 면에서 주는 정보는 없지만, 피검자의 정서적 삶의 강도를 나타내 주는 중요한 양적 지수라고 하였다.
1. FC
색채 반응 중 가장 지연이 잘 되어 형성된 반응으로 적절한 색채와 명확한 형태가 성공적으로 통합되었음을 반영한다. FC반응이 나오려면 형태와 색채를 통합하는 연상과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연이 필요하다. 이 반응은 유연한 통합 능력, 지각과 연상 과정의 신중한 조절 능력을 반영한다.
이 반응은 또한 정서적 적응을 위한 라포 형성 능력을 나타낸다. 즉 현실을 사실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충동을 억압하지 않고 적절히 표현하며,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자신도 공감 받을 수 있는 자질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행동을 유연하게 통제하고 긴장도 적절히 표출시킬 수 있다. 그러나 FC의 형태질이 나쁠 경우 이러한 적응이 실패했음을 나타낸다.
정상인의 프로토콜에서는 약 2개의 FC반응이 기대되며, 다른 색채 반응이 없고 FC가 더 적으면 외견상 상냥하지만 행동에 대한 열정이나 추진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반대로 다른 색채 반응이 없고 FC가 4개 이상 나타나면 이는 타인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고 자기 목적을 추구하는 주장성이 부족한 과도하게 순종적인 사람임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경우 성격상에 명료성과 성실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응수가 적은 프로토콜에서 FC가 없으면 강한 억압의 가능성이 있고, 반응수가 많은데도 FC가 없다면 이는 타인과의 라포를 형성하기 위한 자원이 부족하며 애착 관계가 빈약함을 반영한다.
2. CF
이는 C반응에 비하여 좀 더 지연된 반응 과정을 보이나, 선택된 도형의 형태가 연상과정을 통해 색채 인상과 거의 통합되지 못한 반응으로 지연의 효율성이 낮음을 의미한다.
정상인의 프로토콜에서는 1개의 CF반응이 기대되며, 너무 많이 나올 경우 정서, 충동 및 행동의 통제가 어렵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색채 반응이 없을 경우 이는 통제가 너무 억압적이고 경직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이 때 갇혀 있던 충동이 형태 반응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오히려 충동적으로 감정 표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3. C
이는 연상 과정에서 색채와 다른 속성 간의 통합을 가능하게 할 만한 지연능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반응이다. 즉 색채 인상 자체가 지각과 연상 과정을 방해하는 것으로, 극단적인 충동성과 정서성 및 모든 통제를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정상인이 C반응을 많이 보이는 경우는 자기감정에 몰입해 있는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다른 색채반응 없이 C반응만 보일 경우는 격렬하고 통제되지 않은 정서 표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FC, CF 반응수가 C보다 많을 경우는 정서 표현이 변화무쌍하며, 통제가 부분적으로 약화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4. 기타 색채 반응
(1) F/C, C/F
형태와 색채의 통합이 연상 과정을 통해 통합된 것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결합된 반응이다. 예를 들어 해부학 도표 반응을 들 수 있다. 이는 정서적 반응 및 적응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인위적이고 부적절한 정서 표현의 가능성이 있고, 종종 피검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행동과의 의미 있는 조화가 어려울 수 있다.
(2) FC(form-color response by denial)
선택된 영역에서의 색채를 부정함으로써 연상과정에서 색채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8번 카드 양 옆의 분홍색 부분을 보며 ‘곰인데, 색깔이 잘못되었네요.’라고 말하는 경우이다. 이는 선택된 영역의 형태로부터 반응을 위한 연합 과정이 시작되며 색채 역시 영향력을 지녔지만 반응 형성의 연상 과정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는 아님을 의미한다.
(3) FCarb(arbitrary FC)
이는 ‘파란 원숭이’와 같이, 반응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완전히 상실된 반응을 말한다. F반응과 같이 실질적으로 최종 반응에서 색채 통합이나 연상 과정에 대한 색채의 영향력은 없는 것이다. 이는 자극에 대한 추상적 해석 능력이 결여되고, 정서적 적응을 위한 노력이 성공적이지 못하며 정서 표출에 있어서 부조화, 부적절성이 나타남을 의미한다. 상황에 대한 정서적인 이해 혹은 유대가 제한되어 있고 취약함을 반영하며,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종종 보인다.
(4) Csym(symbolic pure C)
정신분열증 환자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경우 이는 자폐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를 의미하며, 환자에게 있어서는 그 자체가 현실이다. 이 반응이 나오기까지 연상과정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정상인도 적절한 연상과정을 거쳐 이러한 반응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상상력 혹은 공상 능력으로 볼 수 있다.
(5) Cdet(deterioration pure C)
‘오줌 자국, 핏덩이, 염증 부위’처럼 오염된 반응을 보이는 경우로, 지각적 재조직화나 연상과정상의 재평가를 거치지 못한 반응이다. 정서적인 둔마, 무미건조함을 반영하며, 병리적인 자폐적 사고와 관련된다.
(6) Color naming(C-denomination / C-description)
색채 자극이 피검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지만 적절한 지각적 구체화 과정이나 연상과정을 유발하지 못하고 색깔의 이름만을 이야기하는 경우이다. 정서적 반응에 대한 통제가 전반적으로 부족함을 반영하며, 때로 기질적인 문제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색채 역동(Color dynamics)
1. 색채를 결정인으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
(1) 색채 선별성(color choosiness)
연한 색만 보려 하거나, 2, 3번 카드에서 색채 영역은 보지 않으려는 경향 등을 말한다. 이는 정서적 상황에 개입하기를 꺼리고 정서적 도전에 직면하기 어려워함을 의미한다.
(2) 색채 꺼리기(color shyness)
반응에서 색채 요소를 무시하고 색채 사용을 전반적으로 꺼리는 경우로 타인에 대한 정서적 의존성이 결여되었음을 반영한다.
(3) 색채 부인(color denial)
반응 단계에서는 색채가 사용되었을 법한 반응을 하였으면서도, 질문단계에서는 색채 요소가 관련되었음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2번 카드에서 두 동물이 싸운다고 말하고 나서, 빨간색이 피라는 것을 부인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자아강도를 나타내며 이를 통해 색채가 주는 정서적 영향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다른 색채 반응들을 고려하여 검증해야 한다.
(4) 색채 회피(color avoidance)
색채가 들어가 있는 도형 영역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로 정서적 도전이 되는 상황에서 도피하고 위축되는 경향을 시사한다.
2. 색채 장애(Color disturbance)
(1) 주관적 장애
색채 자극에 대해 불편감이나 고통을 느끼며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경우, 색채를 결정인으로 하여 생성된 반응 내용에 대해서 불편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정서적 자극상황에서 불편감을 느끼지만 이를 다룰 수 있는 지적 효율성은 유지함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러한 주관적 장애가 없는 경우는 정서적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불편감을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2) 객관적 장애
색채 자극에 의해 객관적으로 장애가 일어났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채점을 통해 알 수 있다. 색채가 개입된 카드 영역에서 형태질이 저하되거나, 색채 카드에서 도형 영역을 사용하는 양상이나 결정인이 변화되거나, 색채 카드에서 평범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는 정서적 상황에서 효율성 저하를 의미한다. 특히 주관적 객관적 장애를 동시에 보일 경우 이러한 불편감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며 정서적 상황에서 후퇴하는 것이 정서적 도전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임을 시사한다.
일반적으로는 객관적 장애와 주관적 장애를 동시에 보이지 않으며, 주관적 장애는 신경증적 적응상태에 있음을, 객관적 장애는 보다 심각한 신경증적 상태 혹은 정신증적 장애임을 반영한다. 특히 주관적인 불편감을 보이지 않고 그러면서 형태질 마이너스 반응을 보일 경우, 정서적 자극 하에서 와해된 효율성, 불편감에 대한 통찰의 부재 및 현실접촉의 심각한 손상을 의미한다.
Review 2. 로샤의 인간운동반응(M)
로샤 검사에서 M반응은 가장 중요한 변인 중 하나로, 양질의 M반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수한 성격자원을 나타내는 반면, M반응의 질적인 하락은 그만큼 심한 정신병리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본 장에서는 여러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M반응의 임상적 의미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Rorschach(1942), Schachtel(1966), Dana(1968)
Rorschach는 M반응이 라포(rapport)와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하며, M반응과 C반응 빈도를 비교하여 성격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 M반응이 C반응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세한 사람을 M 경험형(M-experience type)이라 하였고, 이들은 대인관계의 폭은 좁지만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반대로 M반응에 비해 C반응이 더 우세하게 나타난 사람을 C 경험형(C-experience type)이라 하고, 대인관계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지만 피상적인 편이라고 주장하였다.
Schachtel은 자기 자신, 타인 및 주변 세계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지향성, 즉 자기개념과 대인관계에서 갖는 기대가 M반응에 나타난다고 보았고, Dana는 그 사람이 주변 환경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잠재능력 및 처리용량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Klopfer(1962)
Klopfer에 따르면, M반응은 피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한 내적 현실에 대한 태도 및 감정과 관련된다.
첫째로 자기 개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피검자가 사회적 상호관계 속에서 보이는 공감의 질을 반영한다. 둘째, M반응에는 자기 수용과 관련된 긴장과 갈등이 나타날 수 있는데, M이 FM과 적절한 관계이고 (H)와 Hd에 비판적 성향이 나타나지 않을 때 M반응은 장기적인 가치 체계와 충동의 측면이 잘 통합되어 있음을, 즉 죄책감이나 좌절감 없이 둘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셋째, M반응에는 환상과 충동이 나타날 수 있는데, 내적 가치관과 충동 경험을 외부 현실의 요구 및 구조와 통합하려고 부적절한 노력을 기울일 때 이를 반영하는 공상 활동이 M반응에 나타날 수 있다.
M반응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다음과 같은 가설에 기반을 둔 것이다. 첫째, 정적인 잉크 도형에 운동을 투사하는 M반응은 개인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상상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둘째, M반응은 사람(human)의 지각 또는 사람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empathy)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한다. 셋째, M반응은 잘 분화되고 통합된 수준의 지각과정을 반영한다. 따라서 이 같은 특성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수준 높은 자아기능(ego functioning)을 하고 있다고 간주된다. 즉, 자기 자신과 내면의 충동 및 공상을 잘 수용할 수 있고, 양질의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Klopfer(1962)는 잘 적응하고 있는 지능이 높은 성인이라면 적어도 3개의 질 좋은 M반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형태질이 저하된 M- 반응은 자아구조의 결함을 반영하는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 외부 현실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될 정도로 현실을 왜곡하는 데 상상과 공상이 움직이고 있음을 뜻하며, 이는 통제 기능의 붕괴, 더 나아가 내적 경험을 현실과 통합하는 능력의 상실을 반영한다. M반응이 많다는 것은 충동이나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 지능, 창조성, 공감적인 대인관계 등을 반영한다. 그러나 M- 반응은 망상적 사고의 가능성, 사회적 기술의 부족 및 공감능력의 결여를 나타낸다. 충동적인 사람들은 M반응이 적으며, 변화를 수용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직성을 보인다.
Rapaport(1968)
1. 지각-연합 과정
Rapaport는 M반응이 선천적 능력, 성취에 대한 잠재력, 성취 추구 성향을 반영하며 M반응이 많을수록 이런 측면에서 잠재력이 높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운동반응을 하게 하는 심리적 과정을 지각-연상 과정(perceptual-associative process)으로 개념화한다.
먼저 M반응은 정적 자극에서 동적인 특성을 지각하는 것이므로 피검자의 신체운동 감각경험(kinesthesia)과 관련된다. 즉 피검자 고유의 신체운동 감각과 관련된 기억이 있으며, 이것이 지각-연상 과정에서 융통성 있게 통합될 수 있을 때 M반응이 나타난다.
또한 사람은 자극장의 일부를 재조직화하여 보다 안정적인 대상을 지각하려 한다는 게슈탈트 원리(perceptual praegnanz)에 입각해 보면, M반응은 지각적 불균형이 있는 자극에 대해 일어날 수 있다. 즉 불균형이 있는 자극에 대한 지각적 예민성과 지각적 조직화 과정에서 융통성과 연상과정이 개입하여 M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M반응은 피검자의 연상 과정이 융통성 있고, 풍부한 연상자원을 동원할 수 있으며, 지각적 불균형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반영한다.
2. 충동 지연 능력
Rapaport는 Rorschach가 제안한 M 유형과 C 유형으로의 구분은 인간 사고의 전제조건인 충동 지연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충동 지연을 통해 사고과정 및 자아의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는데, 즉 충동의 즉각적인 방출이 지연되는 동안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이 이루어지고 이런 충동을 덜 위험하게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숙한 자아 기능은 충동 지연뿐 아니라 장기적인 전체 이익을 위해 충동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Rapaport에 따르면 M반응이 우세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이러한 충동의 즉각적 방출을 지연시키는 능력이 잘 발달되었음을 의미한다. M반응은 선택된 영역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간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각 및 연합과정의 기능성과 융통성을 반영하며, 충동의 대상과 충동 만족을 추구하는 데 내재된 위험을 다양한 경로로 조절할 수 있는 사고과정을 나타낸다.
M반응은 어떤 정신구조의 범주도 아니고,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반응경향성도 아니며, 모두에게 있지만 단지 그 강도와 나타나는 맥락이 다를 뿐인 하나의 성향으로 볼 수 있다. 즉 M반응은 충동성을 막기 위해 욕구를 지연시키는 능력과, 억압에서 충동을 자유롭게 표현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상 성인의 경우에는 사고의 풍부함이나 생생함과 같은 선천적 재능의 수준, 다재다능함, 지각과 연상과정의 융통성, 창조성, 반추하는 경향 등을 반영한다. 정신증 집단에서는 망상으로, 신경증 집단에서는 강박사고나 공포증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M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에는 자발성이 적고, 추동의 강도와 이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적음을 나타낼 수 있다.
한편 일반적인 M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Rorschach는 M반응의 억압이라고 하였는데, 흔히 M을 보는 곳에서 FM을 본다든지, 인간 모습을 지각하기는 하지만 운동요소는 보지 못한다든지, 도형에서 운동성의 인상을 받긴 하지만 반응으로 나오지는 않는다든지, 도형의 특이한 영역에서는 M반응을 하면서도 흔히 나오는 M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그 예이다.
3. M과 다른 지표 간의 관계
프로토콜이 20~25개 정도의 반응수를 보일 때는 대개 2~3개의 M반응이 나타나며 R이 증가하면 M도 어느 정도 증가해야 한다. R에 비해 M이 너무 적으면 이는 피검자의 생산성이 자신의 자질 수준을 초과하고 있으며 자질 이외의 다른 요소가 발휘되고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R에 비해 M이 너무 많으면 야심이 지나치게 많거나 자기 능력에 비해 성취나 생산성이 발휘되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정신병리의 징후일 수도 있다.
M반응 하나당 2개의 W 반응이 있어야 하며 이 중 하나는 W+여야 한다. M에 비해 W가 너무 많으면 피검자가 자기 능력 이상으로 추상화와 통합을 시도하고 있음을, W가 너무 적으면 우화적(fabulatory)이고 비현실적인(unrealistic) 경향을 반영하며 이는 반사회적인 사람이나(psychopath) 소년 범죄자의 프로토콜에서 종종 나타난다.
또한 M 수가 증가하면 F+%도 적정 수준으로 증가해야 하며, M에 비해 F+%가 낮으면 정신증 전 단계(prepsychotic) 혹은 정신증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여 심각한 정신병리의 지표가 되며, M의 형태질이 좋지 못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M과 FC 반응 수는 같은 것이 좋으며 FC가 M보다 유의미하게 적으면 정신병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4. 진단지표로서의 M반응
Rapaport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고와 관련된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M반응이 많고, 둔마, 무의욕, 사고의 단조로움 혹은 억제를 보이는 사람들은 M반응이 적다. 즉 망상이 활발한 급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M반응이 많고 만성화되고 황폐화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는 M이 적게 나타난다. 또한 편집성 환자는 자아구조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M이 1개 이상 나오기 어렵다. 과잉사고를 보이는 초발 정신분열증 단계에서는 병전 성격에 따라 M이 4개 이상으로 많거나 1개 이하로 적게 나타난다. 신경증 집단의 경우 강박증 집단은 M이 많지만 우울증에서는 1개 이상 나오기 어려우며, 억압이 심하고 충동 조절이 어려운 히스테리 환자들은 M반응이 적다.
Piotrowski(1977)
1. 원형적 역할
Piotrowski에 따르면 M반응은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즉 삶에서 그 사람의 원형적(prototypal) 역할이 어떠한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쉽게 변화되지 않는 경향으로, 중요한 사람이나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리더가 되려고 하는지 따라가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심적으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의 보호를 받고 싶어 하는지, 대인관계를 힘들다고 생각하는지 즐기는지, 자기과시적인지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려 하는지, 공격적인지 협동적인지,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 등이 ‘원형적 역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Piotrowski의 주장은 Rorschach(1942)의 입장과는 상충되는 면이 있다. Rorschach는 M반응에서 나타나는 경향성과 태도는 마치 꿈을 꿀 때처럼 실제 행동과는 반대된다고 하였다.
한편 Piotrowski는 M반응을 내용에 따라 세 유형으로 나누었다. 그 첫째는 주장적 M(assertive M)으로, 자기 주장적이며 외적 방해나 압력을 받지 않는 외현적 운동을 지각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춤을 춘다’, ‘나무 그루터기를 뛰어넘고 있는 거인’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자기의 미래와 타인에 대해 자신감이 있음을 반영하며, 삶의 무게와 무력함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음을 나타낸다.
둘째, 중력에 굴복하며 무언가에 이끌림을 받는 운동을 지각하는 순종적 M(compliant M)이다. ‘물건을 드는데 너무 무거워 구부리고 있는 두 사람’, ‘통나무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 등이 그 예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쉽게 절망하는 등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내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 번째는 이 두 가지로 분류하기 어려운 유형으로 이를 차단된 M(blocked M)이라 명명하였으며 드물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2. 심리치료에 따른 M의 변화
Piotrowski와 Schreiber(1952)는 심리치료에 따른 M반응의 변화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6~12개월의 집중적인 정신역동적 심리치료 후 M반응의 수는 2배가량 증가했지만 그 유형의 변화는 느리고 점진적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M반응의 질적인 변화와 더불어 임상적으로 관찰가능한 성격변화가 일어나고, 피검자의 자기진술이나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질적인 변화는 성격변화의 중요한 측면을 반영하기 때문에 M반응 개수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심리치료에 따라 M반응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롭고 활달한 반응이 증가하고, M 운동에 제약이 줄어들며, 공격성이나 수동성 등 바람직하지 못한 내용이 감소한다. 둘째, 그 인물의 나이, 성별, 성격 및 신체적 특성들이 피검자와 점차 비슷하게 변해 간다. 이러한 M반응의 변화와 동시에 C반응 양상도 변화하는데 이는 더 현저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정서적 몰입의 회피를 반영하는 색채 반응은 감소하고, 타인과의 정서적 관계 형성에 대한 소망을 반영하는 색채 반응은 증가하게 된다.
Mayman(1977)
Mayman은 M반응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한 학자로, 피검자와 운동반응 간의 관계의 질이 바로 피검자의 대상관계의 질을 반영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기존 연구들을 종합하여 M반응의 의미를 다차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정리하였다.
1. 지각적 특성
Rapaport는 피검자가 M반응을 할 때 카드에서 실제로 지각적 불균형을 지각한다고 하였다. 즉 무의식적 수준에서 불균형인 형태(gestalt)를 보고 그 불균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불편감을 느껴 좀 더 안정적인 지각적 형상을 형성하려고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인간운동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Mayman은 이러한 불균형을 지각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피검자가 카드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거리를 상실하고 카드의 세부적인 부분에 집착하게 되면 단순하고 정적인 형태만을 지각하게 되고, 역동적 구성요소를 포함한 보다 미묘한 특성은 간과하게 된다.
둘째, 어느 정도의 사고 활동(ideational activity)이 필요하다. 때문에 인간운동 반응은 사고 잠재력을 반영하며 그 활동의 정도와 범위에 따라 변하게 된다. 하지만 M반응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지적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M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지각적 불균형에 대한 내성(tolerance)이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내적 불균형과 불안정감을 지닌 사람은 외적 균형에서 편안함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카드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고 그 불균형이 유발하는 감정에 지나치게 압도될 수 있다. 따라서 M반응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적으로 유약하고 불안정하거나 정서적 혼란을 겪고 있음을 반영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지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특히 M- 반응은 카드가 부여하는 인간운동의 인상에 너무 압도되어 카드 속성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즉 지각적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해 현실검증력을 상실하고 자폐적 연상과정이 전개되어 버렸음을 의미하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대개 과잉사고를 하고(overideational), 지나치게 의심이 많거나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2. 공상 요소(fantasy)
M반응에는 생생함과 생명력이 있으므로 M반응을 하려면 카드라는 자극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공상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공상은 일상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Singer(1975)에 따르면 공상은 심리적 안정과 통제의 요소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지루함, 초조함, 충동에 더 취약한 반면 공상 능력이 잘 발달된 사람은 공격성 등의 충동을 잘 참아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M반응만이 공상 능력을 반영하거나 피검자의 내적 세계를 탐색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들어 있고 우화적인 반응(fabulized response)에서 그 사람의 공상 세계의 풍요로움을 가장 잘 알 수 있기도 하다.
3. 운동감각(kinesthesia)과 자기표현과의 관계
유아기에는 사고가 대체로 감각에 기반을 두어 이루어지다가, 점차 감각-정서적, 운동감각적 경험을 통해 정교화되기 시작한다. 아이는 고통스럽거나 뭔가를 원하면 소리 내어 울거나 몸을 움직여댐으로써 불완전하게나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이를 충족시켜 주면 아이는 자신이 했던 행동, 즉 운동을 통해 그런 결과가 온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면서 아이는 운동감각적 기억들을 형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아가 초기 충격적 경험에 대해 취했던 운동감각적 태도가 성격구조 속에 남아 그 사람의 반응 경향성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M반응은 피검자의 자기속성(selfhood)과 관련된 핵심 경험을 반영하는 운동감각적 기억에서 도출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4. 대상 표상
M반응에는 운동감각 외에도 그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포함된다. 이는 피검자의 대상 표상을 나타내며, 여기에서 자기 및 타인에 대한 내재된 상, 내적 삶 등이 표현된다.
임상가는 이러한 대상 표상을 피검자의 자기 체계와 대상관계 조직화의 맥락 속에서 파악해 내야 한다. 그 반응에 나타난 인물이 자기의 측면을 반영하는 정도와 타인표상을 반영하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피검자가 검사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언급한 내용, 검사나 검사자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한 말들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5. 공감(empathy)과 동일시(identification)
Mayman은 대상관계의 질을 공감에 기반한 것과 동일시에 기반한 것으로 구분하고, 각각이 M반응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규명하였다.
먼저 공감적 관계는 개별성과 자타의 경계가 유지되는 쌍방향적 관계를 말한다.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자아의 통제 하에 있으며, 자아가 통합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융해(fusion)됨 없이 관계를 공유할 수 있는 관계이다. 타인의 경험에 대해 느낄 수 있지만 완전히 몰입(immersion)되지는 않으며, 자기와 타인의 고유성이 훼손되지 않는다. 이런 관계는 Freud(1914)가 말한 진정한 대상관계(true object relations), 즉 타인을 분리되고 구분되는 존재, 자기와 다른 동기와 감정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관계와 같은 것이다.
대상관계가 공감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피검자는 타인 표상이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나타나며, 카드의 속성을 고려한 객관적으로도 무리 없는 M반응을 보인다. M반응을 할 때 피검자가 자기가 아닌 타인을 묘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반면 동일시 관계에서는 자타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거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자아가 타인이 되거나, 투사에 의해 타인이 외재화된 자기 혹은 자기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의식적인 자기성찰을 통해 통제하지 못하며, 타인에게 지나치게 밀착하려 하거나 자기 현실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대인관계에서 예민하고 민첩하지만 이는 공감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에 따라 자기 행동을 조절한 것이다. 이는 Freud(1914)가 말한 자기도취적 대상관계(narcissistic object relations)에 해당하는 것으로, 타인을 분리된 존재가 아닌 자기의 연장으로 여기는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대상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M반응이 지나치게 생생하고 정교화되어 우화적(fabulized)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인물의 행동에 자기 자신이 너무 많이 관여(involve)되며, 그 경험을 자신이 대리 경험하는 것처럼 지각하는 경향이 많다.
6. M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
카드의 속성 자체가 M반응을 유도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M반응을 보이는 카드에서조차 인간운동을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대인관계에 자신을 개방하고 참여하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처럼 자기 일관성이나 응집성(cohesive-ness)에 혼란을 겪는 경우, 자신을 개방하면 상대방에게 함입(engulf)되어 자기 정체성을 완전히 잃게 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 경우, 금지된 충동을 표현하기 두려워하는 경우, 정체성이 통합되지 못한 상태를 자아이질적(ego-dystonic)으로 느끼고 이를 행동화(acting-out)할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 등이 그 예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보는 부분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려는(dehumanizing) 경우도 있다. 이는 피검자의 자기(self)가 대인관계에서 소외되어 왔거나, 타인을 어울려도 좋은 친절하고 안전하며 편안한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위협적이고 적대적이며 가까이 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대인관계가 왜곡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검자의 자기감(sense of self)과 관련하여 심각한 정신병리가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Review 3-1. 로샤의 음영반응(Y)
Klopfer
Klopfer의 음영 반응 해석에서 기본적인 전제는 피검자가 로샤도형의 음영을 다루는 방식이 애정욕구를 다루는 방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음영 반응의 의미를 분석할 때는 다음의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1. 피검자가 결정인으로 음영을 사용하고 있는가? 만약 사용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가?
2. 피검자가 결정인으로 음영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원인이 부인, 회피, 무감각 중 어떤 것 때문인가?
3. 자극의 음영 요소로 인해 발생한 반응의 장애 정도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것이 주관적 장애인지 객관적 장애인지를 확인해 본다.
1. 결정인으로서 음영의 사용
음영의 역동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할 때는 연계분석(sequential analysis)을 통해 음영과 관련된 가설을 검토하고, 음영반응과 위치, 내용, 형태수준 등 간의 상호관계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음영반응이 어느 위치에서 사용되었는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Klopfer는 음영이 짙은 영역은 강한 1차적 대상관계에서의 정서적 영향력을 반영하는 반면에, 옅은 음영의 영역은 정서적 부하가 적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보다 약한 정서적 영향력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2. 결정인으로서 음영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
(1) 음영 부인(shading denial)
짙은 음영의 도형 영역에 대해 적어도 두 개의 반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 단계(inquiry)에서 이 반응에 음영 요소가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IV번이나 VI번 카드와 같이 음영이 짙은 카드에서 동물의 가죽을 지각하였으나, 피검자 본인은 형태만을 보고 생각한 것이며 결코 음영은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음영 부인은 애정이나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수용하는 것에 대한 의식적 갈등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는 음영에 대한 가장 방어적인(ego-defensive) 반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영 부인이 색채 부인과 함께 자아강도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2) 음영 회피(shading evasion)
짙은 음영의 카드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명백한 음영 영역 외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여 음영 반응을 하는 경우이다. VI번 카드의 LargeD 영역이 아닌 UpD 영역에 대해서 음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한 예가 될 수 있다. ‘동물가죽’이나 ‘털 달린 동물’이라는 음영반응을 하면서, 질문단계에서는 도형의 음영이 짙은 재질을 강조하기보다 모호한 반점의 가장자리를 지적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이 음영 회피에서는 일반적인 음영영역을 사용하지만 직접적 접촉 감각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모호한 음영반응을 하게 된다.
이는 애정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과정에는 의식적이기 보다 억압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초기의 버림받은 경험이나 애정 결핍 및 박탈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며, 현실 생활에서 만족스러운 대상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3) 음영 무감각(shading insensitivity)
반응 및 질문단계에서 음영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또한 구름이나 가죽과 같은 음영에 관련된 반응을 거의 내놓지 못한다. VI번과 같은 카드에서 동물가죽 반응을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음영이 반응에 사용되는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이에 대한 관심도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음영 부인이나 회피에서 나타나는 음영에 대한 저항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음영에 대한 반응 중 가장 심각한 손상과 장애를 나타내는 것이다.
음영 무감각은 안정적인 의존 및 애정 관계 욕구가 적절히 동기화되거나 발달되지 못한 초기의 심각한 애정 결핍과 박탈 경험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는 애정 욕구가 심하게 억압되어 있거나, 깊고 의미 있는 대상관계 능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이들은 로샤 카드의 음영 자극 요소에 의한 영향을 거의 안 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3. 음영자극요소로 인한 장애
음영 자극 요소로 인해 나타나는 반응의 손상은 주관적인 장애와 객관적인 장애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주관적인 장애는 음영에 대한 불편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애정 욕구의 좌절을 주관적으로 잘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둘째, 객관적인 장애는 형태질 마이너스 반응, 평범 반응의 실패, 긴 반응지연 시간, 반응 거부, 병질적인 반응 내용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주관적인 장애에 비하여 보다 심각하게 뿌리박힌 결핍과 거부의 경험 혹은 그로 인한 부적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Rapaport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Klopfer에 의하면 로샤 카드의 음영 반응은 친밀한 관계 형성 영역에서의 갈등이나 양가감정, 친밀한 관계 형성 능력, 애정 욕구에 대한 태도와 인식 등에 대한 역동적인 자료를 제시함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Rapaport는 지각과 연상의 연합 과정에서 음영 자극에 대한 반응의 손상이 불안감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Rapaport의 가정은 확산된 음영의 인상이나 전체적인 음영의 덩어리가 도형을 명료하게 지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불안한 사람은 명료화하고 통합하는 능력이 손상되어 있어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보다 쉽게 음영카드에서 실패하게 된다. 이 가정에 의하면, 불안한 사람들이 음영 카드의 반응에서 실패하는 것은 음영과 불안 때문이 아니라 도형을 부분적으로 명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불안이 적은 사람은 음영의 영향을 무시하고 음영을 단순히 반응의 수식적인 요소로서 그 역할을 제한할 수 있다. 또는 그리 성공적으로 음영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에도 적절한 형태질을 유지할 수 있다. 불안감이 많은 환자들은 자신의 불안으로 인해 자극 전반으로 확산되어 있는 음영을 명료화하여 사용하지 못하고 De 또는 Dr반응을 선택함으로써 도형의 음영을 명료화하는 과제를 회피할 수 있다. 또는 음영에 완전히 압도되어 형태 지각 과정이 손상된 나머지 Y나 Vista와 같은 음영에 지나치게 기초한 반응을 하곤 한다.
IV번이나 VI번 카드에서 음영반응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불안감이 심할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음영이 확산되어 있는 도형 어디에서도 형태를 명료화할 참조점을 찾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각적으로 도형을 명료화하는 것이 어렵게 되어, 반응이 모호해지고, 결국 음영을 반응의 근거로 삼게 된다. 지각과정에 대한 음영의 여파는 반응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어서, 이로 인해 반응 내에서 형태 지각이 매우 저조해지는 것이다. 전체 구조상 명료화가 어려운 하나의 검은 덩어리이고 지각적으로 파고들 구석이 적은 짙은 음영 카드는 다수의 음영 반응을 유발한다. 이러한 반응의 모호함은 불안에 대한 지표이다. 음영 자체의 충격은 연상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음영이 최종 반응에 포함된다.
상대적으로 음영 반응의 빈도가 적은 카드에서 음영 반응이 발생하는 것은 피검자의 지각과 연상 과정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저해하는 강한 불안이 존재함을 시사 하는 것이다. 즉, II번, III번, V번 카드에서 음영을 사용한 모호한 반응은 IV번, VI번, VII번 카드에서 음영을 사용한 것에 비하여 강한 불안이 내재되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진단적인 의미를 논할 때 음영은 다른 결정인에 비하여 진단적 지표로서의 특성이 약하다. 또한 로샤 반응에서 불안이 나타나는 방법은 매우 여러 가지이다. 불안이 직접 표출되지 않고 관념화 과정을 거쳐 표현될 때는 음영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음영반응의 존재 여부와 피검자의 불안을 단정적으로 연결 지어서도 곤란하다.
Review 3-2. 부모 상실에 대한 유아와 아동의 반응
1. 6개월에서 16개월 사이의 생애 초기에 부모를 상실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일시적으로 엄마 역할의 보호자가 없을 때 유아들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실험 결과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약 6개월 된 유아들은 엄마가 방에서 나갈 때, 따라 나가려고 시도하는 동작을 하고 또한 엄마가 돌아왔을 때는 반겨 맞는다. 이 시기에 유아들은 기초적인 엄마표상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엄마를 재인하는 능력은 있으나, 엄마가 없을 때 기억 회상을 통해 엄마에 대한 표상을 되살릴 능력은 발달되지 않는다. 이러한 능력은 만 일 년이 되도록 발달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6개월 이하의 유아들은 엄마가 곁에 없고 낯선 곳에 있을 때, 낯선 사람을 엄마 역할로 받아들이며 정서적으로 별다른 반응의 변화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7개월째부터는 보통 낯가림(stranger anxiety)이 시작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를 인식하고, 울거나 보채고 낯선 사람을 거부하는 반응을 나타낸다. 이것은 출생 첫해 하반기부터 유아에게 엄마가 자리를 비우거나 돌아와서 재회하게 될 때 비교할 수 있는 엄마에 대한 표상이 형성되고 있다는 가설, 또한 이 시기에 유아가 엄마를 자신과는 독립된 존재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가설과 일치하는 관찰 결과이다.
셋째, 여러 사례를 통해 Bowlby는 16개월 정도면, 유아들이 부모에 대한 모델을 기억 속에 유지하고 회상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낯선 사람과 있는 동안에 이러한 모델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적어도 이 시기부터는 아이들이 상실된 대상을 놓고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시기에는 외부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상할 수 있으며, 또한 심적 표상의 조작도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과거의 행위를 반복하거나 미래의 행위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며, 행위 없이 인지적인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징 조작의 능력은 언어능력의 근간이 된다.
유아가 어릴수록 부모(caregiver)의 상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개념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구 근거들에 의하면, 6개월 이전에는 이러한 상실에 대한 반응이 차후의 반응과 매우 상이해서 ‘애도(mourning)’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Bowlby는 7개월부터 17개월까지의 상실에 대한 반응은 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의 애도 반응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6개월부터 16개월까지 아이들의 상실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가 난해한 문제이다. 만일, 인지심리학자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17개월 미만의 아이들에게 상징적 표상 조작 능력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면, 엄마에 대한 항상적이고 지속적인 표상이 비교적 견고하게 형성되어야 가능한 ‘애도’ 반응을 이들 연령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6개월에서 16개월 사이의 유아들도 친밀한 애착 대상이 부재할 경우에 명백히 불편감을 나타내며 애착 대상을 찾으려 한다(proximity seeking). 따라서 이러한 불편감은 명백히 떨어져 있는 사람의 부재에 대한 선택적인 반응으로서 슬픔(grief)이라 지칭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이 시기의 슬픔은 상황 여건에 따라 병리적이고 만성적인 양상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2. 부모 상실에 대한 아동의 반응(Bowlby)
나이가 어린 아이는 보다 성장한 아이에 비해 애도의 강도가 약한데, 이는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지적 이해가 발달 수준과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이 많은 아이들은 죽음이 전체적이고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9세 정도의 아이들은 죽음의 전체성을 적절히 이해할 수 있으나, 6세 이하의 아이들은 이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비가역성의 경우는 어떤 연구에서는 10세까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하나, 어떤 연구에서는 8세 정도면 죽은 부모는 다시 되살아나거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보고하고 있어 모호한 부분이다. 다른 가족이나 애완동물의 죽음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비가역성의 개념을 보다 일찍 이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죽음에 대해 아동들의 인지적 이해가 어떠한 발달 양상을 나타내고, 이것이 대처양식과는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1) 불안의 지속: 추가적 상실 및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
한쪽 부모를 상실했을 때, 죽음이나 유기에 의해 남아 있는 부모마저 잃게 될 것에 대한 불안감을 겪게 된다. 이는 거의 모든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보고하는 결과이며,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병리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족 중 한두 사람이 더 죽거나, 남아 있는 부모가 아플 경우에 특히 이러한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심해진다. 또한 남아 있는 부모가 그 죽음의 원인을 비밀스러운 것으로 돌려 버리고 죽음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못하도록 하거나, 죽은 부모에 대해 혹은 살아 있는 부모의 건강에 대해 아이에게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돌리게 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불안감이 악화된다. 또는 남아 있는 부모가 ‘죽고 싶다, 인생이 살 가치가 없다, 죽는 게 낫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 역시 불안감을 악화시킨다.
또, 부모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나도 일찍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부모 상실의 결과로 나타난다. 특히 동성 부모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남아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여아는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남은 부모가 아이에게 그 죽음의 원인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다른 부모나 자신, 또는 그 형제도 일찍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죽음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고, 왜 일어난 것인지’ 설명하려고 해도, 어린 아이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또, 역시 고통스러운 부모가 아이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제지하고 거부할 수도 있는데, 이는 아이들을 불확실성이나 불안의 세계로 빠뜨린다.
(2) 죽음을 통한 재결합의 소망
아이들에게는 비가역성의 개념적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죽은 부모와 재결합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부모가 이 세상으로 다시 살아서 돌아오든지, 또는 아이가 죽음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소망이 강화되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부모가 갑작스럽게 죽기 직전에 아이에게 어떤 약속을 했을 경우, 이것이 재결합에 대한 소망의 씨앗이 된다. ‘장난감을 사 주겠다’ 혹은 ‘응급실에서 꼭 돌아올 것이다’라는 부모의 약속, 또는 아이가 죽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좋은 관계에 있었으나 그 이후 남아 있는 부모로부터 적절히 사랑을 받지 못할 경우에 이러한 소망이 강화될 수 있다.
(3) 지속적인 비난과 죄책감
부모의 죽음에 대해 자신을 비롯하여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이것이 가능한 두 가지 이유는 아이가 어떻게 죽음이 일어난 것인지 전반적으로 명료한 이해가 어렵다는 것과, 아이들은 자신이 보고 듣는 것에 자연히 많은 무게를 두게 된다는 점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아동이나 청소년의 40% 정도가 부모의 죽음을 자신이나 남은 부모에게 귀인 하였다(Arthur & Kemme, 1964).
생전에 아동의 행동(시끄럽거나, 더럽거나, 성가시거나, 못된 짓을 하거나)을 두고 ‘네가 나를 아프게 만들고, 그래서 못 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던 부모가 죽을 경우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원인을 내부귀인하고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또는 남아있는 부모가 죽은 부모와 생전에 다투거나 위협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을 목격했을 경우, 그 원인을 남아 있는 부모에게 돌리게 된다.
(4) 과잉행동: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흔히 부모들이 자기 자신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에 별 관심이 없거나 공감적이지 못한 사람이었을 경우에 이러한 과잉행동 반응을 나타낸다. 상실 이후에 이러한 부모들은 자신의 슬픔을 억눌러 버리고 또한 아이들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해 매우 둔감할 가능성이 높고, 남편이 죽은 뒤에 감정을 억제하고 주지적인 설명만 하는 엄마는 아이에게도 역시 적절한 애도 과정을 밟을 수 없게 만든다.
대개의 경우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상황회피를 보이는 것은 적절히 애도할 수 없는 아이들이 죽음이 언급될 때마다 나타내는 반응일 때가 많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적절히 애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고 분노감을 표출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방략이 적용된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죽은 부모로부터 힐난을 받았던 아이들은, 부모가 사망한 이후에 자신이 그 죽음에 기여했다고 느끼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남아 있는 부모가 자기감정을 억제하고 아이가 느끼는 바에 대해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애도 과정을 억제할 경우 과잉행동으로 이를 표출하게 된다.
따라서 아동들의 이러한 적대적, 공격적인 행동의 배후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잠재된 경우가 많다. 가족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부모의 죽음과 같은 불행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게 되며, 또한 적잖은 경우에 남아 있는 부모가 죽음을 애도하며 주변의 아무에게나 비난을 쏟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상이 어린 아이가 될 때가 있다.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이와 같이 꾸짖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동에게 뿌리 깊은 죄책감을 심게 될 수 있다.
(5) 강박적인 보호(compulsive caregiving)
자신이 보호를 받기보다는 남아 있는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는 내적 강요를 느끼고 행동하는 것도 부모 상실의 결과로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 상이한 아동기 경험이 보고되고 있다.
첫째, 부모를 보호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지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부모의 다툼에 아이가 중재하는 역할이 맡겨질 때이다. 이러한 경험을 한 아동은 부모에게나, 나중에는 배우자에게도 강박적인 보호를 하게 된다.
둘째, 간헐적이고 부적절한 엄마의 역할이 거의 상실수준에 이르는 경우이다. 이때 아동은 보다 불특정적으로 다른 아이들이나 낯선 사람들을 향해서도 보호 행동을 나타내곤 한다. 아이가 부모의 보호를 상실한 이후에, 자신을 향한 애정과 지지를 기대하거나 혹은 슬퍼하는 대신에 타인의 슬픔에 대해 극심한 걱정을 하며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고 지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강박적으로 주변 사람을 보살피는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6) 강박적인 자기 독립(compulsive self-reliance)
이것은 애정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고 그 대신 전적으로 자립과 자족을 주장하는 것으로, 역시 부모 상실에 의해 강화되는 좌절과 슬픔 등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보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랑받고 보호받는 것에 대한 강한 열망과 좌절에 대한 두려움, 분리나 상실에 대한 불안감과 취약성이 잠재해 있다.
(7) 동일시적 증상(identificatory symptoms)
병리적인 애도과정을 밟는 사람들 중에는 죽은 사람과 동일시하고 마치 그 사람인양 느끼면서, 그 사람이 보였던 증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동기에도 나타난다.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동일시하여 가슴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아버지가 사전에 두통을 호소하는 것을 본 아이가 이후에 두통을 호소하게 되는 경우가 그 예이다. 또는 부모의 죽음이나 질병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상황에서 골절상과 같은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요컨대, 유아기와 초기 아동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애도 반응은 성인기의 병적 애도 반응의 특징적 면모를 지니고 있고, 이러한 과정은 성장한 뒤에도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건강한 애도 과정의 핵심은 상실된 사람에 대한 정서적 집착을 포기하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 형성을 준비하는 것이다.
Review 4. 사고장애
인지기능 양상에 따른 사고장애의 분류
1. 개념 형성 능력(concept formation)
(1) 과도하게 구체화된 사고(concreteness)
추상적인 사고 능력의 상실로 인해 바로 그 당시의 특정한 자극상황이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표면적 한계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이다. 속담의 뜻을 물을 때, 속담에 있는 단어의 의미만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한 예이다.
(2) 과도하게 포괄적인 사고(conceptual overinclusion)
이는 지엽말단적인 자료들까지 포괄하는 사고 경향이다. Cameron(1944, 1963, Johnston과 Holzman, 1979에서 간접이용)은 과포괄적 사고가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기본적 사고장애라고 제안했다. 개념의 경계가 유지되지 못하여 부적절하고 탈선적인 생각들이 끼어들고, 그 결과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이 혼동된 사고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고 양상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서 많이 나타나고, 망상과도 관련이 깊다. 개념 형성의 질은 급성과 만성 정신분열증에서 다소 상이하게 나타난다. 만성 환자는 급성 환자에 비해 과구체화된 사고가 많고 연상의 풍부성이 결여되어 있다. 급성 환자는 대개 심리적으로 와해되어(disorganized) 있어서 개념적 과포괄성을 더 많이 나타낸다.
2. 사고의 초점(cognitive focusing)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적절한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고, 주의의 맥락을 변화시키며, 부적절한 연상을 억제하는 데 곤란을 겪는다.
(1) 자극의 과포괄성(stimulus overinclusion)
관련 자극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거나, 광범위한 무관한 자극에 불필요하게 집중하거나, 그런 자극에 의해 주의가 분산되는 경향을 말한다. 정신분열증에서 빈번히 나타나나, 심한 불안과 우울 상태에서도 보일 수 있다.
(2) 특이한 사고(idiosyncratic thinking)
이것은 통상적인 사회적 규준이나 기대에서 벗어나고, 주어진 과제에 부적절하여, 결과적으로 혼란되고 모순되며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사고 내용을 의미한다. Rapaport는 이를 ‘peculiar', 'queer', Exner는 ‘deviant verbalization’이라고 표현했다.
(3) 연상의 이완(loosening of associations)
연상과정에서 논리적 인과성을 상실하여, 사고의 초점을 상실하고 부적절하고 이완되게 논리적 흐름이 약화되거나 와해된 사고의 연결을 나타내는 것이다.
(4) 과도하게 정교화된 반응(overspecific responses)
과도하게 정교화된 반응은 개인화되고, 부적절하고, 탈선적인 사고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며 도형에서 제공되는 속성 이상으로 지각물을 정교화하는 것이다.
3. 추론(reasoning)
대상들 간의 관계에 대해 논리적인 추론에 실패하고 특이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1) 과잉일반화 사고(overgeneralized thinking)
최소한의 증거에 근거하여 비약된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자신의 경험을 정교화하여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2) 결합적인 사고(combinative thinking)
개념과 대상 간의 통상적인 경계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생각과 개념 간의 경계가 융합되고 혼합되는 것이다. 부적절한 조합 반응(incongruous combination, fabulized combination)이나 오염반응(contamination)을 통해 나타난다. 이 중에도 오염반응이 가장 심각한 개념 경계의 상실이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구분, 나와 내가 아닌 것들 간의 구분을 상실하고, 무의식적인 내용이 의식으로 침투하고, 심리내적인 경계나 대상간의 경계를 상실한 것을 반영한다.
(3) 자폐적 논리(autistic logic)
어떤 상황의 우연적 측면이 오류적 결론으로 비약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삼단 논법의 형태로 목표지향적인 비논리가 명확하게 나타날 때는 이를 자폐적 논리라고 한다.
4. 정서의 조절(modulation of affect)
정동이 인지적인 활동에 침투하는 것으로, 억압의 실패 혹은 정서조절의 실패라고 할 수도 있다. 정서적인 통합능력이 무너진 것을 의미하며, 대개의 경우 자아기능이 와해된 정신병 환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경우에는 정서적인 자극이 사고장애를 두드러지게 한다.
5.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
Freud(1911)는 주어진 자극이 외부 세계로부터 온 것인지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별하는 능력을 현실검증력이라고 정의했다. 즉 지각물(percept)과 생각(idea)을 구분하는 능력으로, 정신병적인 손상이 있는 경우에는 내적인 자극과 외부 자극 간, 자기 자신의 소망과 타인의 요구 간, 심적 표상과 지각 간에 혼동과 융합이 일어난다.
심각도 수준에 따른 사고 장애의 분류
Rapaport, Gill과 Schachtel(1968, Johnston과 Holzman, 1979에서 간접이용)은 로샤 검사에서 언어 반응과 지각적 과정 간의 관련성을 정교화하였다. 이들은 언어적 연상의 장애가 현실검증력의 장애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고, 일반적인 정상 집단의 태도나 언어 반응과 검사 상황의 현실이 부합되지 않는 것을 일탈적 사고(deviant thinking)라고 정의하였다. 이후 Watkin과 Stauffacher(1952, Johnston과 Holzman, 1979에서 간접이용)가 Rapaport의 일탈적 반응을 양화하여 개발한 지표가 Delta Index로, 로샤 반응에서 나타난 각각의 사고 장애를 그 장애의 경중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것이다. 경미한 사고 장애에는 .25, 중도의 장애에는 .75, 극심한 사고 장애에는 1.0을 가중치로 부여하였다. Johnston과 Holzman(1977)은 로샤 반응과 지능검사의 프로토콜을 분석하여 계산해 내는 사고장애지표(Thought Disorder Index)를 개발하였다. .25부터 1.0까지 모두 4개의 수준에 따라 사고장애가 분류되고, 가중치를 계산한 총점을 합산하게 된다. 본 리뷰에서는 네 가지 수준에 따른 사고장애의 종류를 정리하였다.
사고장애지표(Thought Disorder Index)
1. 0.25 수준
(1) 부적절한 거리(inappropriate distance)
원래의 생각을 잘못 정교화한 결과로, 도형의 물리적 특성에 지나치게 실제적인 반응을 하거나 사고의 제약 없이 과도한 연상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거리의 상실 혹은 증가(loss or increase of distance), 어느 정도 통제되고 있는 연상의 이완(tendency to loosening), 구체적 사고(concreteness), 과잉세분화(over-specificity), 그리고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반응인 종합적 사고(syncretistic response)가 포함된다.
(2) 모호한 반응(vagueness)
분명한 의미나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모호한 반응이다.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의 장애지만 정보를 조직화하고 통합할 능력이 없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3) 유별난 반응(peculiar verbalization and responses)
단어를 이상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사용하는 경우이다.
(4) 단어 찾기 곤란(word finding difficulty)
피검자가 어떤 단어를 알고는 있지만 사고 과정이 차단되어 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5) Clangs
의미보다는 운율 등의 요소에 의해 반응할 경우이다.
(6) 보속증(perseveration)
이미 나왔던 반응을 반복하는 경우이다.
(7) 관계 반응(relationship verbalization)
현재의 반응을 이전에 했던 반응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도 아까와 똑같은 거네요. 돼지가 도살되어 버린 것 빼고는 … 여기서는 악마가 동물과 나비를 죽여 버렸어요.” 등이다.
(8) 부조화 조합(incongruous combination)
인접한 도형의 세부 영역이나 제시된 이미지가 하나의 부조화스러운 지각물로 합쳐지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오리얼굴을 한 곰’과 같은 혼합 반응(composite response), ‘빨간 곰’과 같은 작위적 형태-색채 결합(arbitrary form-color), 어떤 동물이나 인간이 부적절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는 반응(inappropriate activity),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어떤 대상의 내부와 외부가 동시에 보인다고 하는 반응(external-internal response)이 포함된다.
2. 0.25와 0.5의 중간(intermediate .25, .5)
(9) 특이한 상징(idiosyncratic symbolism)
사용된 상징이 적절한 것인지, 아니면 심하게 확장되거나 기태적인 것인지에 따라 .25나 .5으로 채점된다. 상상을 통한 유희가 아니라, 피검자의 주관적인 현실 속에서 실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에 채점한다.
3. 0.5 수준
0.25 수준의 반응은 일상적으로도 어느 정도 나타나며,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0.5 수준의 반응은 현실검증력이 불안정해지고 정서적으로 과도한 반응을 보이며 분명하게 현실과 동떨어진 반응을 하는 경우이다.
(10) 기괴한 반응(queer response)
이는 유별난 반응(peculiar response)의 극단에 해당되는 반응이다. 피검자는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거의 알기 어렵다.
(11) 혼동(confusion)
자신이 말하고 생각하고 지각하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어 보이거나, 지남력이 상실되었을 경우이다. “어떤 종류의 곤충 같아요, 음 그 저 바다 밑에, 음. 일종의, 아니 바다 밑이 아니고, 일종의 게, 그래요 바다 밑에” 등이 그 예이다.
(12) 이완된 반응(looseness)
이것은 인지적 초점이 상실되어, 질문이나 도형과 무관하거나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생각으로 반응하는 경우이다. 과제의 흐름을 상실하고 본래의 질문과는 거리가 먼 연상의 내용을 이어가거나, 대화의 초점이 없이 연상의 논리적인 흐름이 끊기는 경우이다. 지각과정상의 이완을 유동성(fluidity)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건 까매요, 어두워요, 어두움, 사랑하기”, “순록이 보이네요. 루돌프 빨간 코 순록. 그리고 이 코는 피를 흘리고 있네요. 눈이 내리니까 추워요” 등의 반응에서 이러한 유동성이 나타난다.
(13) 작화적 조합 반응(fabulized combinations)
이 반응은 응축(condensation)의 일차 과정적 기제를 사용하며, 지각 대상이나 생각간의 현실적인 경계가 무시되고 결합과 조합을 통해 반응이 형성되는 것이다. 0.25 수준에서는 부조화 조합(incongruous combination)을, 0.5 수준에서는 작화적 조합(fabulized combination)을(어떤 경우는 0.75), 1.0수준에서는 오염(contamination) 반응을 하게 된다.
많은 피검자들이 현실적 제약을 왜곡하지 않는 작화적 조합 반응을 보인다. 각 부분에 대한 형태질은 양호한 수준이나, 서로 인접한 부분 간에 비현실적인 관계를 상정할 때에만 채점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흑인식 머리를 한 두 수탉이 두 개의 심장을 함께 밀고 있다”, “일종의 파이프를 기어 올라가려 하고 있는, 눈과 입이 달린 두 개의 감자” 등이다.
4. 0.75 수준
명백한 사고 장애를 나타내며 정신병적인 손상을 시사하는 단계이다.
(14) 유동성(fluidity)
수준 0.5의 유동성은 사고가 집중적으로 전개되어 하나의 초점에 머무를 수가 없고 사고의 연결이 이완되는 경우이다. 반면 수준 0.75는 피검자가 세상을 아주 불안정한 방식으로 지각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처음에 어떤 대상이 지각되지만 곧 다른 대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상항상성이 없어지고, 일단 형성된 개념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두 사람 … 처음에는 이게 그들의 눈 같은데요, 다음 순간에는 전체 몸 같아요”와 같다. 피검자가 지각한 실체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어 검사자가 무어라고 적어야 할지 알 수 없거나, 피검자가 앞에서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0.75 수준의 유동성에 해당한다.
(15) 불합리한 반응(absurd responses)
전혀 이치에 맞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반응으로 피검자의 내면세계와는 관련되지만 검사자에게는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 과제와 무관한 임의적 반응이다. 예로서 III번 카드의 가운데 공백을 보며 “이건 가운데를 묶은 옥수숫단이나 밀단이에요”, “전체가 흰개미의 머리처럼 보여요”라고 반응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16) 작화적 반응(confabulations)
작화적 반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도형의 작은 부분의 특성에 기초하여 도형 전체에 대한 과잉일반화적 결론을 내리는 경우이다. X번 카드에서 “수염달린 얼굴이요. 도형의 아랫부분이 그랬는데, 그리고 머리장식, 도형의 나머지 부분은 그 사람의 머리장식 같기도 하군요.”, VIII번 카드에서 “농구선수요. 이게 공인데, 선수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이 있으니까 선수가 어딘가 있겠지요.”와 같은 반응이다. 두 번째 작화반응은 극단적인 정교화이다. 도형 영역을 과도하게 수식하고 정교화하고 임의대로 해석하지만, 도형에서 주어지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반응의 경우이다. 예를 들어, II번 카드에서 “이건 누군가의 손이 갈가리 찢어진 거예요. 그리고 이건 손을 찢어 낸 칼이예요. 개 … 개들이 입에 그 칼을 물고 있네요.” 등이다.
(17) 자폐적 사고(autistic thingking)
피험자는 “왜냐하면 말이죠 …”하면서 자발적으로 이유를 설명하지만 논리적으로 와해된 추론에 의한 진술이다. “숲속의 쥐요. 일단 쥐를 봤는데 그러면 이 부분이 숲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쥐가 동물원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쥐는 먹어치우고 갉아먹으니까 숲에 있어야 해요.”
5. 1.0 수준
(18) 오염(contamination)
두 개의 개별적이고 양립될 수 없는 지각물이 하나로 융합되는 반응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조합 반응으로 두 개의 상이한 이미지가 동일한 도형 영역 위에서 하나의 지각물로 융합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I번 카드, “세상을 잡고 있는 나비. 양쪽편이 지도 모양이니까요.” X번 카드, “인공으로 만든 식물, 왜냐하면 동물처럼 생겼기 때문에. 입도 있고 다리도 있고. 어떤 식물을 코끼리 이파리라고도 부르잖아요.”
(19) 지리멸렬(incoherence)
과제와 무관하며 검사자가 어떠한 맥락에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와해된 반응이다.
(20) 신조어(neologism)
피검자가 새롭게 만든 말이지만, 자신이 한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분명한 의미를 갖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Review 5. 로샤의 형태반응(F)
로샤 검사에서 형태(form)는 현실상황에서 정서적인 영향을 제거할 수 있는 정도 혹은 통제능력을 의미한다. 로샤 프로토콜 중에 F반응이 있다는 것은 갈등과 연관된 정서의 영향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한다. 심한 정서적 혼돈 속에 있는 사람은 F반응을 잘 하지 못하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세계에서 정서적인 면을 배제하고 상황에 객관적으로 반응할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태 반응은 정서의 통제나 충동조절 능력뿐만 아니라 주의집중력과도 관련이 있다. 단적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는 F- 반응이 많고, 성공적인 치료를 받은 후에는 F반응이 증가한다. F반응이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예후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양질의 F반응은 지적 통제 능력을 반영한다
형태질이 양호한 F반응은 상황에 정서적으로 말려들지 않고 인지적인 통제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한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이를 다룰 수 있는 통제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샤 자극에는 매우 많은 자극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실제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풍부한 자극과 비례한다. 로샤의 10개 자극판은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로샤 카드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자신이 처한 세계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나타낸다.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와 같이 극심한 정서적 혼란을 겪고 쉽게 흥분하고 과민한 사람들은 로샤 도형으로부터 정서적인 자극을 비롯한 형태 이외의 요소들을 적절히 배제하지 못하고 쉽게 휘말리기 때문에 특징적으로 F반응이 매우 적고 람다 값이 낮다. 그러나 F반응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다른 변인들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운동 반응, 음영 반응, 색채 반응 등 다른 요소들이 적절히 있으면서 F반응이 많을 때는 성격자원이 풍부함을 의미하고, 필요에 따라 사실적인 자세로 상황을 다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F반응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방어적이고 경직되고 위축되어 있음을 뜻한다(F%=50~80, 적절한 운동, 색채, 음영 결여). 다른 한편 긍정적인 의미로는 자신의 감정을 매우 신중하게 통제하거나 감정 발산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하기도 한다. F%가 80% 이상으로 지나치게 높은 경우(Exner의 종합체계에서는 높은 람다 값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병리적인 제약과 통제, 자발성의 결여를 의미하고, 만일 여기에 형태질까지 저하되어 있다면 지적 기능이 충분히 분화되어 있지 않거나 성격구조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고 환경의 정서적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반영한다. 전반적 발달 장애를 겪는 아동들은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의 매우 피상적인 측면밖에 처리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로샤 반응이 F반응 위주로 나타나곤 한다.
F반응의 비율이 너무 낮은 경우에는 정서적 혼돈이 매우 심하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움을 의미하며, 일부 성격장애, 기질적 장애, 충동 조절 장애 등에서 나타난다. F반응이 전체 반응 중 20% 이하일 때는 객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발적이고 민감하고 창의적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만일 다른 통제 요인에서 저조한 반응을 보인다면 이것은 부적절한 통제, 너무 주관적인 반응 태도를 의미한다.
요컨대, 정서조절과 인지적 통제력 간의 관계는 색채자극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등 다른 로샤 변인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F반응 역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석상 주의할 점은 대부분의 로샤 변인에서 그러하듯이 어떤 변인에서 양질의 반응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것이 다른 변인과 균형 있는 관계와 비율을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성격적인 취약성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양질의 F반응이 너무 적을 때는 적절한 인지적 통제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태임을 나타내지만, F반응만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역시 인지적 통제력상의 약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아를 위한 퇴행(regression in the service of ego)은 창조적인 사고와 이완을 가능하게 하는 반면에, 경직되고 엄격한 통제는 정서 표현이나 사고 과정의 자발성과 유연성을 손상시킨다. 유연한 정서와 공상의 표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아통제의 강도가 유연하게 조절될 수 있는 탄력(ego resilience)을 지녀야 한다.
F반응은 자아강도 및 현실검증력의 지표이다
단적으로 우리가 F-의 의미에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F-가 현실검증력을 비롯한 자아기능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Exner의 체계에서 F반응은 순수 형태 반응을 지칭하지만, 여기에서는 좀 더 폭넓게 로샤 도형의 형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지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자극이 포함된 상황에서 정서적인 자극과 갈등에서 발생하는 압박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인지적인 통제력뿐만 아니라 건강한 자아기능과 자아강도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F반응은 현실검증력의 지표이다. Weiner는 형태질 마이너스 반응의 비율이 상승하는 것이 정신병의 단적인 지표이며, 이것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와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들의 로샤 반응에서 가장 현저한 차이점 역시 지각적인 왜곡이 어떠한 차이를 나타내는가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외부세계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가는 로샤 도형에 대한 지각적 정확성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외적 현실에 대한 검증능력이 손상되었을 때는 지각적 왜곡이 발생하며 이는 F-반응을 통해 반영된다.
Bellak은 현실 검증력의 세 가지 요소로 생각과 지각의 구별, 지각적 정확성, 공상내용의 적절성을 제시했다. 자신의 내면 경험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지각물로부터 부적절하고 기태적인 공상이 나타나고 그 공상의 내용 역시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 정확히 판단되지 못한다. 로샤 도형을 보통 사람들이 지각하는 평범한 방식대로 지각하고 연상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것은 실제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로샤에 나타나는 사고 장애 중 오염반응(contamination)이나 지각적 유동성(perceptual fluidity)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한 사고장애에 해당하며, 이는 정신분열증과 같은 현실검증력이 와해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샤 도형에서 정확하게 형태를 인식하고 그 경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아 경계(ego-boundary)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유지하는 능력과 상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염반응이나 지각적 유동성은 주어진 자극에서 분명한 정체성이 있는 하나의 형태를 인식하고 개념을 형성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의 심각한 장애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아경계의 손상을 암시한다. 즉 나와 타인, 나와 세상 간의 경계가 유동적이고 현실적인 경계선이 분명하게 유지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경계의 손상은 망상이나 환청을 비롯한 정신병적 증상을 생성하는 기초가 된다. 따라서 로샤 도형을 정확하게 지각하고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형태로 인식하여 이에 대한 연상을 전개시켜 양질의 F반응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심리적인 기능을 반영하는지 알 수 있다.
Korchin과 Larson(1977) 역시 잉크 도형이라는 현실을 다루는 방식이 실제로 피검자가 자신이 처한 현실 세계를 다루는 방식을 반영한다고 했다. 양질의 F반응이 자아강도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건강하고 성숙한 자아의 필요조건이라고 제안했다. 무의식적이고 정서적인 요인이 침투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고, 충동의 발산을 지연시키고 보다 현실에 적합한 반응을 할 수 있으며, 지각과 연상 과정을 통합하고 통제하고 조직하며 서로 간에 적절한 관련을 짓는 능력, 더 나아가 자아기능의 통합적 기능이 양질의 F반응을 통해서 반영된다고 하였다.
F-반응을 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지적 통제력의 결함이나 현실검증력의 장애는 F-반응을 생성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적 요구(need)의 압력이 압도적이어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구성하고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될 때이다. 의식수준에서 내적 추동이 지각과정에 강한 영향을 미쳐 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없는 경우이다.
둘째, 추동의 표현과 발산에 대한 방어 과정에서 지각적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방어적인 사람에게 F+ 수준이 높은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질적으로 저조한 반응을 급조하게 하기도 한다. 만일 로샤 도형에서 그 사람에게 위협적인 공상이 자극된다면, 그는 그러한 지각내용을 부인하거나 로샤 도형 지각의 정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즉 방어는 지각의 내용이나 적절성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반응을 구성해 낼 수 있는 연상의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화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해왔거나 지능 수준이 낮은 경우 양질의 F반응을 생성하기 어렵다. Rapaport가 제안한 바와 같이 지각과정과 연상과정은 맞물린 톱니바퀴와 같다. 이는 지각의 장애와 연상의 장애가 맞물려 있으며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뜻한다.
넷째, 현실검증력의 장애가 있을 경우 현실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과정이 손상된다. 자아경계의 장애가 발생할 경우, 외부 자극에 대한 지각과 비현실적 공상 간의 객관적 구별 능력이 상실되고, 지각과 연상 내용에 대한 적절성도 평가하지 못하게 된다. Lerner(1991)가 지적했듯이 형태는 우리의 시각 세계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므로 로샤 반응의 2/3 정도가 F반응이라는 것은 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이다. 또한 세상을 인식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은 형태에 대한 지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형태 지각의 왜곡은 이러한 핵심적인 자아기능의 장애를 반영하는 지표이다.
다섯째, 통합적 기능이 발휘되지 못할 경우이다. 주어진 자극에 주의를 집중하고, 형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기억 창고 속에서 유사한 형태를 재인해 내고, 이로부터 연상을 전개하여 하나의 반응을 생성해 내는 과정은 복잡한 과정일 수 있다. 어떤 다루기 어려운 충동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개인 자체가 지닌 통합적 기능의 결함으로 인해 과제 수행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Review 6-1. 로샤의 대칭반응
왜 편집증 환자들은 대칭구조에 집착하는 것일까? 문헌에서도 로샤 도형의 대칭구조에 집착하는 것이 편집증적 성격패턴과 연관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실제 임상장면에서 대칭반응이 편집증적 성격구조를 지닌 환자들에게서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Lerner(1998)의 대칭반응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칭반응에 대한 언급은 카드의 균형(balance)과 불균형(imbalance)에 집착하는 것으로서, 이들은 외부 상황이 엄격하고 질서정연하고 명료한 상태일 것에 대한 과도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익숙하지 않거나 애매모호한 것들에 대해 불편감과 갈등을 느끼며, 성격적으로 매우 억제되고 경직되어 있다.” 이러한 성격특성은 편집증적 성격특성의 핵심 갈등 중에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로 잘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칭구조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 이러한 가설이 경험적 연구를 통해 지지된다면 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결과일 것이다. 첫째,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과민하게 경계하는 편집증 환자들에게 대칭, 비대칭의 구조는 이러한 ‘공평성’에 대한 갈등을 자극할 수 있다. 둘째, 모호하고 예측할 수 없는 자극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어떤 규칙을 찾아내고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대칭’이라는 형태를 찾아내는 것이다. 모호한 검사자극과 검사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으로 인해 외부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로 예측가능하고 명료한 속성인 대칭구조에 집착하려 하는 것이다.
Review 6-2. 정신분열증의 정신병리
정신분열증은 많은 경우에 만성적인 경과를 통해 한 개인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정신장애이다. 정신분열증의 초기에는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하고 원색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감정반응을 나타내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여 만성화된 이후에는 정서적으로 황폐화되고 감정반응이 고갈되어 목석같이 굳어진 표정만 남기도 한다. 일상생활 전반에서 의욕이나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적인 접촉도 전폐하고 비현실적인 공상 세계 속에 칩거하게 된다. 정신분열증은 사고, 정서, 감정, 행동, 대인관계 등 거의 모든 영역의 기능을 광범위하게 손상시키는 장애이다. 여기에서는 MacKinnon이 정리한 정신분열증의 임상적 특징을 중심으로 그 정신병리를 살펴보도록 한다. MacKinnon은 정신분열증의 일차적인 장애가 정동, 사고 및 대인관계의 문제이며, 그 외 환청이나 망상 및 기태적 행동 등은 일차적인 장애에 수반되는 이차적인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의 일차적인 장애(Primary disturbances)
1. 정동의 장애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정동 및 정서의 조절과 표현에 심한 손상을 나타낸다. 이들은 주관적인 정서 경험이 감소되고 위축되고 둔마된다(diminished, flattened, blunted).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 감정의 미묘한 변화(gradation)가 상실되고, 감정표현이 종종 과장된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감정은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감정을 마치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면 마치 자신의 독립적인 존재가 위협받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실제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던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는 등 애정의 대상이 이상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서적인 결핍으로 인해 타인과의 교류가 어렵고 고립되기 마련이나, 고독을 즐길 능력 또한 결여되어 있다. 외롭고 불행감이 많고, 즐거움이나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것(anhedonia)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내적 갈등을 느끼고, 사소한 즐거움도 잘 느끼지 못한다.
자신은 단지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며, 다른 사람들도 배우들처럼 보인다는 특이한 느낌을 보고하기도 한다. 불편한 상황에 대해 자신의 정서를 고립시킨 방어적인 반응의 결과로 이러한 역할극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나 타인의 감정으로부터 소외되어 거리를 유지하곤 한다.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감정 반응을 무시하고, 물리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간주하려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도 역시 어렵다.
사고 내용이나 외부 상황에 비추어 부적절하고 부조화스러운 감정 표현이 많다. 이것이 주관적인 세계에서는 적절한 경험일 수 있으나, 외부 상황에 비추어보면 부적절하다. 환자와 면담할 경우에는 이러한 감정 표현에 대해 인식시킨 후 그러한 감정을 유발한 생각이 무엇인지 탐지해야 한다.
환자에게 일상적인 감정 반응을 기대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환자는 이러한 기대를 감지하고 자신의 본래 감정을 은폐하려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려고 하면 이러한 치료자의 감정이 자신의 본 감정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며 상황을 회피해 버릴 수도 있다.
2. 사고의 장애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일상적인 논리와 현실의 규칙에 따라 조직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연상의 이완, 지리멸렬한 생각, 탈선적인 연상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사고 및 의사소통의 와해가 반드시 무의미한 우연의 산물은 아니다. 이러한 와해의 과정은 역동적인 관점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환자의 혼동은 불편한 주제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무의식적 방어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우원증(circumstantiality)이나 탈선적인 사고(tangentiality)를 통해 적대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지리멸렬한 사고를 통해 사회적 고립을 감수하는 대가로 동정을 유발해 낼 수도 있다.
한편 주의 범위가 협소해진다. 자신의 사고 초점을 이동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사소한 세부사항에 빈번하게 집착한다. 언어의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보인다. 부적절할 정도로 구체적이거나 추상화된 생각을 통해 이들이 적절한 상징과 추상화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절한 수준의 추상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중심 주제를 무시하고 난해하고 모호한 특성이나 관념과 상징을 강조하기도 한다. 단어 간의 연결이 장애되고, 단어 자체가 본래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치료자의 말을 특이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정서 조절의 실패로 인해 보통 말 속에 성적이고 공격적인 감정과 갈등이 노출된다. 이는 정서적인 충동이 조절되지 못하여, 개인적인 함의나 정서적 의미들이 사고 속에 섞여 나오는 것이다. 일상적인 단어들도 특별한 성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다리’라는 말을 듣고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며 당황스러워할 수도 있다.
외부 세계의 관점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공상에 집착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기괴하고 자폐적인 공상일 뿐이다. 개인화된 특이한 상징이나 비논리적인 사고 양식으로 인하여 행동은 그의 내부 현실의 견지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치료적 탐색을 할 때 공상의 역동적인 의미와 기원은 치료 후반에 탐색해야 하는데, 너무 초기부터 공상에 초점을 맞추면 그의 현실 접촉이 더욱 손상될 수도 있다.
공상이 정교화되면 복잡한 생각의 체계를 구성하고 자신만의 정신병적 세계를 형성한다. 현실 검증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상과 현실이 변별되지 않고 공상이 망상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생각들은 종종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성향을 띠기도 한다.
3. 행동의 장애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또한 자발성, 주도성,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 일상에 대한 의욕이 결여되어 있고(avolitional), 무관심하고 무감동하다.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관심하고, 무엇을 하는 데도 관심이 없고,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자신이 부적절해 보일까봐 두려워한다. 감정의 둔마와 마찬가지로, 목적이나 동기의 부재 역시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남들에게는 상당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은 더욱 고립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거부증(negativism)을 나타내기도 한다. 치료자와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치료자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이들의 행동은 상황에 부적절하고 통제 불능이고 와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관성이나 뚜렷한 목표가 없고, 부적응적인 목표를 추구하기도 한다. 다분히 충동적이어서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행동을 나타내곤 한다.
4. 대인관계의 장애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매우 어렵다. 친구가 거의 없고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조차 그를 피하여 고독감과 소외감이 깊어진다. 친구를 사귀면 그 역시 대인관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장애는 가족관계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병리와 의사소통의 미묘한 장애가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에서 발견되곤 하며, 이로 인해 사회 적응에 필요한 기술을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정서적인 거리를 유지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배우고, 타인과 경험을 공유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자폐적인 세계를 선호한다.
또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강한 양면감정 본고에서는 ambivalence를 양면감정 혹은 양가감정으로 번역하고 맥락에 따라 서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을 지닌다. 다른 사람에 대해 동시에 좋음과 나쁨이 상충되는 양면적인 감정 상태를 지닌다. 양면성은 모든 인간관계에 내포된 것이나, 대부분의 정상인은 덜 수용할 만한 감정은 의식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감정의 억압이 불가능해진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양면감정은 거의 모든 관계에 내포되어 있고, 비일관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도록 한다.
이들은 또한 불신감이 많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공포심, 양면감정을 지닌다. 정신분열증 환자들도 전이관계를 형성하며, 경우에 따라 신속하게 강렬한 전이를 형성하고 때로는 너무 강렬하여 기본적인 치료자-환자 관계를 위협할 정도이기도 하다.
부차적인 증상
환각, 착각, 망상, 기괴한 행동 등은 일차적인 사고 및 정동의 장애에서 비롯된 파생물이다. 일차적인 정신병리는 이차적 증상의 발달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이차적 증상을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는 기제를 파괴한다.
1. 정체감의 장애
다른 사람과 공생적인(symbiotic) 연합 속에 융합되는 것에 대한 소망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본래 이러한 소망은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나,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와의 관계에서 거절과 숨 막히는 과보호를 번갈아 경험할 경우 아이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엄마와 마술적인 연합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병합의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자신과 주변 세계를 분간하는 경계를 정확히 지각하기 어려워지고, 자신의 정체감을 확립하는데 곤란을 겪는다. 아동은 분리와 독립을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 유기, 거절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갖게 된다.
환자와 정서적인 접촉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치료자의 적극적인 노력은 공생적 융합에 대한 두려움을 촉발할 수 있다. 반면에 구조화된 면담을 통해 치료자의 반응을 제한한다면 환자는 버림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자신과 타인을 분별하는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자기감(sense of self)의 손상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 신체에 대한 지각과 개념, 자기 생각과 감정의 인식, 가족과 사회에서 동화시킨 가치와 목표를 통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이러한 제반 요소에 결함이 있고, 이를 통합하기 위한 능력도 부족하며,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실패한다.
2. 의존성의 장애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의존 욕구가 증가하지만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감소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자신을 돌볼 수 없고 타인의 도움에 보다 의존적으로 되지만, 타인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관계형성 능력에 있어서는 무능하다. 이러한 실제적 혹은 공상적인 무력감은 퇴행적인 의존양식을 일으키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까지도 타인에게 의존하려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의존욕구를 표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동성이나 종속감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이러한 위협은 심각한 것이어서 정체감의 위협으로 연결된다. 대인관계를 맺는 데 심한 곤란이 있고, 친밀감 혹은 애정 관계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의존적 측면에 대해서도 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의존하려고 하지만 실제적인 의존에 동반되는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독립적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진정한 독립에 동반되는 성취감이나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다.
3. 공격성, 힘과 통제를 위한 분투
그들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다루기 어려운 적대감과 분노감정을 품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공생과 개별화 갈등과 관련된 것이다. 타인과 구별 짓는 경계나 자신의 자유에 대해 확신이 없는 어린 아동은 사소한 분노감정을 느껴도, 이러한 감정이 자신과 외부 세계 모두를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우 두려워하게 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신의 적대감이 나타나 다른 사람들을 파괴할까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종종 건강한 자기주장 욕구를 격렬한 분노감과 함께 억제하고 있으며, 이것이 외현 상 나타나는 무감동의 주요한 원인이 될 때가 있다. 자신의 파괴력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판단력이 매우 부족하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자신을 부적절하고 무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자신의 통제를 나타내고 힘을 과장하려는 시도를 통해 이를 보상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힘과 통제에 대한 분투는 주로 강박적인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주제이지만 그 동기에 차이가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함입되거나 정체감이나 존재성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동기화되는 것이다.
Review 7. 우울증의 인지행동치료
인지치료 이론은 부정적 신념이나 역기능적 정보처리 방식을 수정하는 것이 부정적 감정이나 행동의 수동성을 완화시킨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인지적 변화는 여러 가지 방식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RET에서 말하듯이 논박이나 설득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자기-진술(self-statement)의 변화를 통해서도 가능하고(Meichenbaum self-instructional training), 경험적인 가설 검증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경험적 가설 검증이다. 치료자는 부정적 신념을 검증할 수 있는 행동상의 단서를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신념의 변화는 치료자의 신뢰성이나 설득보다 내담자 자신의 행동 결과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인지치료의 절차(Piasecki와 Hollon, 1987)
기 간
내 용
초 기
1. 치료의 원리 설명
2. 자기 감찰 훈련
3. 행동 치료 방략(behavioral activation strategies)
중 기
4. 생각의 탐색 훈련(training in identifying cognitions)
후 기
5. 신념(belief)*의 평가
6. 기저 가정(underlying assumption)의 탐색
7. 종결과 재발 방지의 준비
*본고에서는 인지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belief를 믿음, 신념 혹은 확신으로 번역하고, 어떤 의미가 더 적절한 맥락이냐에 따라 서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치료 진행 과정의 순서나 개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며, 여러 요소들이 한 회기 내에서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치료 초기
1. 치료의 목표와 원리교육
치료의 목표는 우울증과 그 변화에 대한 인지모델을 제시하고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특히 환자가 자신의 괴로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치료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탐색해야 한다. 자신이 우울해진 것을 스스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밝혀내야 하는데, 보통 인지삼재(cogni-tive triad)의 관점에서 자신의 부적절성이나 압도적인 생활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얻는 정보를 ABC model의 틀에 맞추어 설명하며 우울증의 인지이론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대안적인 ‘B’를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시하는 것은 인지모델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Beck과 Young(1982)이 제시하는 치료 초기의 여섯 가지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표적이 될 구체적인 문제를 정의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내담자가 현재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둘째, 정의된 문제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가장 중심적인 문제가 무엇이며 각 문제가 변화가능한 정도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절망감을 다루어야 한다. 초반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먼저 공략하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던 환자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감정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
넷째, 생각과 감정 간의 관계를 설명해야 한다.
다섯째, 치료과정을 교육한다(socialization). 인지치료는 어떠한 스타일로 진행되는지 교육시키는 것이다. 치료자는 문제해결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구체적인 생각, 감정,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여섯째, 과제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치료자는 부과한 과제를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환자들이 과제수행에 비협조적인 한 가지 이유는 치료자가 이전 회기에서 부과한 과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2. 초기 단계에서 고려할 중요 사항
(1) 인지치료의 효과가 확증된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치료를 통해 자신도 효과를 볼 수 있는가 질문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해봐야 알겠지만, 네 명 중 적어도 세 명 정도는 효과를 본다.”는 대답이 적절하다. 특정 치료 방법이 특정 환자에게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2) 환자의 문제가 부정적인 신념이 아닌, 실제적인 기술의 부족이나 실생활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있다.
Hollen은 이런 겨우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ies)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한다. “부정적인 신념이나 기대는 그 사람을 부적응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부정적인 기대와 유사한 결과를 낳게 한다. 이러한 기대가 자신의 무능함이나 주변 환경이 극복하기 어렵다고 지각하는 근거로 다시 채택되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3) 단일 요인 모델(single factual model)보다는 중다 가설적 접근(multiple hypothesis approach)이 바람직하다.
환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private formulation)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정적 자기도식(negative self-schema)이 우세한 경우에는 자신의 성격 특질 약점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self-blaming depression). 둘째, 부정적 세계관(negative view of the world)이 우세한 경우에는 자신에 대한 인지도식은 그다지 부정적인 것인 것이 아니나, 주변 세계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분노와 적개심의 감정반응을 나타낸다(blaming depression).
치료자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개인적인 약점, 비우호적인 세계관에 대한 대안적인 개념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은 ‘가설’로 제시되어야 한다. 실제로 환자가 무능할 수도 있다. 치료의 시작 단계에서 한 가지 모델을 현실로 수용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모델을 유연하게 고려하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내담자와 치료자 모두가 인지치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오해를 하기 쉽다.
첫째, “치료자의 이야기는 결국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라는 빈번히 발생하는 오류이다. 인지치료의 목적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정확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며, 정확한 생각을 통해 부정적인 신념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둘째, ‘사실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써’ 일시적으로 기분 좋아지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치료 목적은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경험주의에 입각하여 분명한 현실 검증방법을 배우고, 또한 발견되지 않은 실제적인 장애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룰 것인가를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셋째,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생각하는 바(what he thinks)’가 아니라 ‘믿고 있는 바(what he believes)’이다. 긍정적인 자기진술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없이 단순히 인지치료적인 문답을 하는 것은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운 피상적인 접근일 뿐이다.
넷째, 단순한 권고나, 반복, 호소와 같은 정도로는 신념을 변화시키기에 충분치 않다. 어떤 신념이 형성되기까지는 그만한 경험과 이유가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신념을 바꾸는 것 역시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치료자는 인지치료를 단순히 기술의 집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행동치료, 인간중심적 치료, 정신역동치료와는 상이한 ‘협력적 경험주의(collaborative empiricism)’라는 독특한 양식을 지닌 치료방법이다. 인지치료는 협력적 경험주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사용되는 기법의 원리를 분명히 제시하고, 논박보다는 귀납적인 질문을 던지며, 지속적으로 치료에 대한 반응과 의견을 듣고, 치료 진행 과정에 대한 의사결정에 내담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여섯째, 인지치료는 생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부적응적인 감정을 찾아내고, 비합리적인 사고와 가정을 수정함으로써 그러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5) 매 회기마다 치료화제(agenda)를 회기가 시작될 때 내담자와 함께 선정한다.
첫째, 지난 회기 이후에 있었던 경험을 탐색하고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둘째, 내담자에게 우선적으로 다루고 싶은 문제를 제안하도록 하고, 치료자가 추가적으로 화제를 제안할 수도 있다. 셋째, 함께 다룰 화제와 그 우선순위를 정한다. 가능하다면 각 화제에 할당할 시간도 정한다.
3. 자기감찰 훈련(training in self-monitoring)
이것은 한 시간 간격으로 행동이나 상황에 대해 기술하거나 기분 상태를 감찰하여 기록하는 과제이다. 정밀한 자기감찰을 통해 기분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조절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자기감찰은 탐색의 도구가 될 뿐만 아니라, 특정 환자에게 인지 모델이 적용가능한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때로는 이러한 자기 감찰을 통해 ‘근거 수집’의 연습을 하며 자기 탐색의 과정으로 유도할 수 있다.
4. 행동 활성화 기법(behavioral activation)
인지치료는 인지적 절차와 행동적 절차의 통합적 접근이며, 특히 치료의 초기 과정에서는 다양한 행동적 치료 방략이 사용될 수 있다. 행동적 전략 및 기법들은 언제나 ‘명시적인 가설 검증’의 맥락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행동 치료 전략은 인지치료의 시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많은 경우에 내담자의 비합리적인 신념을 검증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된다. 이러한 행동적 전략은 인지적인 변화를 촉진시키고 변화의 결과가 일반화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chunking 방법은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기 어려워하는 내담자에게 과제를 여러 개의 다루기 쉬운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씩 완성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할 수 없다’와 같은 신념을 검증하는 실험을 실시할 수 있다. Chunking과 같은 전략을 사용하여 거둔 성공은 즉각적인 목표 달성으로 인한 성취감과 더불어, 자신도 효과적인 전략만 사용한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자신의 우울하고 취약한 성격 특질로 귀인 시키던 것에서, 그보다는 상황에서 선택한 ‘행동’이 얼마나 적합한 것인가의 문제로 초점을 옮길 수 있다.
중기에서 후기
중반으로 진행되어도 인지치료 회기의 구조는 변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변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회기는 ‘문제 파악, 무력감 극복, 관계형성, 인지행동치료의 개념 설명, 인지적 왜곡 지적, 교육’ 등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반면에, 중기 이후는 보다 집중적인 인지적 탐색을 요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중기 이후에는 환자의 자동적 사고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여러 가지 역기능적 사고와 행동을 포함하는 복잡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더 나아가 치료 후기에는 구체적인 사고와 문제로부터 삶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과 가정으로 초점을 옮겨 온다. 치료 후기로 올수록 내담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생각해 내고,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책임을 맡게 된다.
인지치료의 회기 구성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화제를 설정하고 과제를 검토한다. 정해진 화제를 순서대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한 회기 중에 보통 한두 가지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각 문제를 다룰 때 필요한 일련의 질문이 있다. 사건을 어떻게 왜곡해서 해석하는가? 그의 기대가 현실적인가? 부적응적 가정에 근거한 시각은 아닌가? 행동이 적합한가? 실생활의 문제라면 가능한 모든 해결책을 고려해 보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환자의 문제를 명확히 이해하고, 수정해야 할 한두 개의 핵심적인 사고, 감정,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 가장 적합한 인지행동 기법을 선택하고 그 원리를 설명한다. 이러한 기법에는 가설 검증(hypothesis testing), 행동실험(behavioral experiment), 행동시연(behavioral rehearsal), 인지적 시연(cognitive rehearsal), 대안사고 모색(generating alternatives), 주의전환(diversion), 성취도와 즐거움 평가(mastery and pleasure ratings), 활동 계획(activity scheduling) 등이 있다.
넷째, 회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내담자에게 회기의 주요한 결론을 요약해 보도록 한다. 그 외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과제를 부과한다. 과제는 그 회기에 배운 개념이나 기술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사고의 확인(Identifying cognitions)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믿음에 접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외현상 반사적 혹은 자발적이며 전형적으로 감정(affect)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자동적 사고’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치료 초기에 ABC 모델을 설명하며 자동적 사고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자동적 사고의 탐색과 수정이 회기의 중심 화제가 되는 것은 몇 회기가 지난 후에 시행된다.
자동적 사고의 탐지를 돕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동적 사고의 특성을 잘 설명한다.
둘째, 회기 진행 중에 환자의 태도나 기분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보일 때 대화를 중단시키고 의식의 흐름에 어떠한 생각이 지나가고 있었는지 질문하고 탐색한다.
셋째, 자기감찰 기록을 재구성하는 것은 자동적 사고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한 좋은 시발점이 된다. 그러한 감정 반응이 나타난 가능한 이유를 탐색하기 위해 일련의 귀납적 질문을 던져 내성적 탐색을 유도한다.
넷째, 심상을 사용하여 당시 상황을 재현한다. 이미지가 현실적이고 선명할수록 자동적 사고의 탐지가 용이하다.
다섯째, 특히 자동적 사고가 대인관계에 관한 것일 때 역할 연기(role playing)가 심상보다 효과적이다. 치료자가 상대역을 맡고 연기 속에 내담자를 적절히 관여시킬 때 자동적 사고가 탐지되기 쉽다.
여섯째, 역기능적 사고 일지(daily record of dysfunctional thought)를 기록한다. 내담자가 언급하지 않은 자동적 사고를 치료자가 먼저 지적하는 것은 비효과적이고 협력을 저해하는 일이며, 독자적인 자동적 사고 탐지를 어렵게 한다.
일곱째, 사건의 전체적인 의미를 조명해 본다. 생각이 언제나 감정에 선행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내담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또한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가 일어나는 맥락에서 반드시 내담자들이 자동적 사고를 경험하는 것처럼 전제하지도 말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자동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자동적 사고를 찾아내려 애쓰기보다 그 ‘상황’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이 상황에 대하여 어떠한 기대를 갖고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 좋다. 종종 인지모델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결과 감정과 행동으로 연결되는 의식의 흐름 속에 항상 생각이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적 사고의 평가
이 과정은 “확신(belief)의 의미를 탐색, 확신의 타당성을 평가, 경험적인 방식으로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도”의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1. 의미의 탐색(exploring meaning)
인지치료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실례를 들어보시겠습니까?(Can you give me an example?)’라는 것으로 내담자의 마음속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유용한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What does that mean to you?)’이다. 이는 특별한 자동적 사고를 둘러싼 의미체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질문이다.
의미를 탐색하는 중요한 기법으로 하향 화살표 기법(downward arrow technique)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실패자’라는 진술과 함께 감정의 변화를 보였을 때, 이것은 부정적인 자기지각의 반영일 수도 있고, 또는 ‘나는 실패자이고 가족들 모두 나를 한심하게 보거나 경멸할 거야’와 같은 또 다른 영역에서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초보자들은 이러한 주관적으로 부여된 해석(idiosyncratic connotation)의 미묘한 의미를 충분히 탐색하지 않고 확신을 다루는 과정으로 성급히 도약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죠?”라는 질문이 매우 효과적이다. 또는 내담자가 믿는 것을 치료자 자신도 믿는다면 어떤 감정이 들겠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일 주어진 상황에서 내담자가 보고하는 감정을 상상을 통해 느낄 수 없다면, 그의 주관적인 해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2. 확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evaluating beliefs rationally)
이 단계에서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그렇게 믿는 증거가 무엇이죠?(What is the evidence for this belief?)’라는 증거 질문(evidence question)이다. 둘째, ‘이것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Is there another way of looking at this?)’와 가은 대안적 해석 질문(alternative explanation question)이다. 셋째,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죠?(Even if your beliefs are true, what are the real implications for you?)’라는 함의 질문(implication question)이다.
3. 경험적인 가설 검증(prospective empirical hypothesis testing)
확신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검증하여 자신의 확신이 오류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기 이후의 치료과정에서 앞에서 진술한 확신의 타당성 평가와 함께 치료의 주요 초점이 된다.
분명히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여 어떠한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대 초반에 수술을 받아 불임이 된 이후 사귀는 남자들이 이를 알면 자신을 거부할 것이라고 믿으며 고독하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는 여자 환자에게 실제로 주변 남자 동료들에게 마치 드라마의 이야기인양 가장하여 반응을 조사해 보도록 하는 것이 가설검증의 한 과정일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실제적인 행동 실험에서 얻는 결과는 내담자의 부정적인 예측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며, 이것은 확신과 행동의 변화에 기여하게 된다. 이것은 과거경험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며, 가설 설정과 미래 행동의 예측 및 검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험적인 판단 과정이다.
(1) 가설 검증에서 주의할 점
첫째, 실험을 계획할 때 내담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협력적 경험주의에 근거해야 한다.
둘째, 실험의 목표는 내담자에게 설득력이 있는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실험이 최소한 내담자의 기대에서는 매우 당황스럽거나 실제로 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실험 설계 과정에서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넷째, ‘생각’이나 ‘가정’과 같은 것들은 인지치료에서 검증되어야 할 가설로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가설을 채택하거나 기각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한다. 치료자는 내담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며, 논리적인 분석과 실험을 통하여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왜곡된 생각과 현실 간의 괴리를 발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2) 자동적 사고를 검증하는 방법
첫째, 가능한 증거를 검토한다. 내담자의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와 이와 상반된 증거의 목록을 작성하고 타당성을 검토한다. 자동적 사고가 부정확하고 과장된 생각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실험을 계획한다. 이는 부정적인 예측과 확신을 반증하기 위한 행동 실험이다. 내담자가 직접 결과를 예측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자신의 예상과 상충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자는 내담자의 초기 예측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셋째, 귀납적 질문(inductive questioning)을 던진다. 앞의 방법들이 잘 적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논리적인 갈등,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경험적인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넷째, 내담자가 사용하는 부정적인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해 본다. ‘나는 겁쟁이다’라는 생각을 평가하기 위해 우선 ‘겁쟁이’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격을 당해도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후에 과거의 경험을 탐색하여 이러한 명칭이 타당한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 평가의 인위성, 왜곡, 피상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재귀인(reattribution)을 통해 사건의 원인을 재평가한다. 불쾌한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환자들의 경우, 그 사건의 상황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세밀히 검토하여, 그의 행동 외에 이 사건을 유발한 다른 요인이 무엇인가 고려해야 한다.
여섯째, 대안적 사고를 모색해야 한다(generating alternatives).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때 아직 고려되지 않은 대안적인 방법들을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좋은 대안을 고려하였지만 이를 조기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내담자의 사고를 현실에 맞추어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권고나 논박보다는 단계적이고 귀납적인 질문이 보다 효과적이다.
(3) 행동 기법
행동적 기법은 행동지향적인 것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그 일차적인 목적은 역기능적인 생각을 수정하는 것이다. ‘행동상의 변화’는 인지적 변화를 초래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회기 전반에 걸쳐 사용될 수 있지만 대체로 치료 초기에 많이 사용되며, 특히 수동적이고 무쾌락적이고(anhedonic)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집중력이 손상되어 있는 환자들의 경우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① 활동 계획(scheduling activities)
하루 일과를 시간단위로 계획하고 실제로 수행한 내용을 시간 단위로 기록한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사용되는 우선적인 기법이다. ‘동기 상실, 무망감, 과도한 생각에의 침잠’을 차단하는 데 유용하며, 하루 일과로부터 적절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② 성취와 즐거움(mastery and pleasure) 평가
활동 계획에서 각각 수행된 행동에 대해 10점 척도로 성취도와 즐거움을 평가한다. ‘나는 아무 것도 즐길 수 없고, 더 이상 어떤 성취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반박할 수 있다.
③ 점진적인 과제 할당(graded task assignment)
성취와 즐거움 평가를 위해 직접 계획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할 때, chunking 등을 통해 과제를 다양한 난이도의 하위 과제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단계적인 접근은 얼핏 보기에는 불가능하고 압도될 듯한 과제를 궁극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즉각적이며 명료한 성취감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④ 인지적 시연(cognitive rehearsal)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요구되는 일련의 과정을 밟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환자들이 있는데, 이는 보통 주의집중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인지적 시연은 과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각 단계를 상상을 통해 미리 밟아보는 것이다.
⑤ 자기 독립 훈련(self-reliance training)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일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행위에 대한 통제는 결국 자신의 정서 반응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점진적 과제 할당, 자기주장 훈련 등은 모두 자기 독립 훈련의 일환으로 사용될 수 있다.
⑥ 역할 연기(role playing)
역할 연기를 통해 특정 대인상황에서 자동적 사고를 발견하고, 문제가 되었던 대인상황에서 새로운 인지적 반응을 연습하도록 하며, 보다 효과적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새로운 행동을 연습할 수 있다. ‘역할 바꾸기(role reversal)’는 효과적인 현실 검증으로 기능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좀 더 온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주장훈련의 일환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⑦ 주의전환 기법(diversion technique)
신체적 활동, 사교적 만남, 일, 유희, 시각적 상상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고통스러운 감정, 불안, 분노감 등으로부터 주의를 전환할 수 있다.
기저 가정(Underlying assumption)
기저 가정이란 자동적 사고와 달리 내담자의 특정한 사고 내용, 감정,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일관적인 특징을 통해 유추될 수 있는 ‘일반화되고 추상적인 원칙’이다. 기저 가정은 자동적 사고를 둘러싼 의미체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자동적 사고를 관통하는 공통적이고 일반화된 규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표현하며, 다양한 상황에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 여러 상황에서 그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탐색한 결과 주로 그가 어떤 일을 ‘성취하기’ 원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루지 못했을 때 주로 자신을 ‘나쁜 놈’으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가 이러한 감정을 느꼈던 가장 초기 기억을 탐색했을 때,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늘 동생과 경쟁하며 좌절되었던 경험, 그리고 이렇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결국에는 무성의하고 자포자기적인 태도를 취해 ‘나쁜 녀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과거의 기억을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초기의 경험과 관련하여 점차로 그는 원하든 원치 않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의 기본적인 성격에 결함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기저의 가정이나 규칙이 형성된 원인을 발견하게 되면, 치료 회기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생활사건과 감정반응 및 행동이 보다 일관적으로 엮이게 되며, 이를 통해 내담자가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누구라도 그러한 상황을 겪는다면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그러한 확신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이해시키고, 이를 통해 내담자는 공감과 함께 자신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치료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기저 확신을 명료화하고 보다 강력한 가설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지치료는 귀납적인 접근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개의 생각-감정의 고리를 구체적으로 치료 초반에서 다룬 후에 보다 일반적인 기저 확신을 다룬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확신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REBT의 접근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기저 신념에 대한 접근은 어디까지나 협력적 경험주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일단 기저 가정이 명료화되고 이에 대한 내담자의 동의가 이루어졌다면 첫째, 그 확신이 타당하게 여겨지는가를 묻는다. 밝혀낸 기저 가정에 상충되고 모순된 요소가 있다면 이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둘째, 기저 확신을 변화시킨다고 가정했을 때, 장점과 단점의 목록을 작성하여 비교해 본다. 또한 단기적인 유용성과 장기적인 유용성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셋째, 많은 경우 이러한 기저 확신은 ‘~ 해야만 한다(should)’의 형태를 지니며, 주어진 상황에서 이상적으로 해내야만 하는 경직된 규칙으로 나타난다. ‘반응 방지(response prevention)’와 같은 행동적 기법이 ‘~ 해야만 한다’를 극복하는 좋은 실험이 될 수 있다.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적인 검증을 통해 기저 가정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다. 이 경우 should를 위반하는 다양한 정도의 과제를 점진적으로 수행하여 변화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종결에 대한 준비와 재발 방지
1. 종결에 대한 점진적 접근
치료의 종결은 첫 회기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인지치료가 대개 단기치료로 이루어짐을 명확히 밝히며 시작하지만, 때로 우울증을 초월하는 공고화된 성격 장애가 발견될 경우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가 진행되는 과정에 종결에 대한 암시를 줄 수도 있다. “이 과제는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지만, 당신이 2~3주 안에 아주 잘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치료를 종결할 수도 있습니다. 몇 주안에 치료를 종결하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과제를 당신 스스로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들이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는지 신중하게 탐색하여 가능한 한 불편감을 다루어 주고 논의해야 한다.
2.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첫째, 치료의 단기적인 특성을 강조하여 내담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특별한 기법이나 이론을 교육하는 시기에는 진행 속도를 완화시켜 예방적인 기능을 하는 구체적 기술을 확실히 배우도록 유도한다.
둘째, 치료가 끝난 후 혼자가 되었을 때 다시 우울증상이 발생할 경우 내담자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하고, 역할 연기를 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재발 방지책이다. 우선 보통 사람들보다 다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해 주어야 하지만, 이것이 필연적으로 재발한다는 의미는 아님을 명시해 주어야 한다. 다시 우울해질 수 있는 사건을 상상해 보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내담자가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기관리 방략, 치료적 기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셋째, 재발이라는 것이 내담자에게 어떠한 의미로 해석되는지 평가하는 것도 간과하면 안 된다. 재발을 치료의 실패로 해석하여,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거나 혹은 갑작스러운 자살 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사용하는 비유로, ‘우울증은 더러워지는 것이고, 인지치료는 다시 샤워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샤워 이후에 다시 더러워졌다 해서, 이전의 샤워가 무효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다시 한 번 샤워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시킬 수 있다. 일단 어떻게 샤워를 하는 것인지 알게 된다면, 더러워지는 것이나 이를 원상 복귀시키는 것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다른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인지치료로 획득한 자기관리 기술을 잘 적용함으로써 증상이 재발하더라도 그 지속시간이나 강도를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넷째, 치료 과정에 호전되었던 증상이 다시 악화되거나 재발되는 경우는 증상의 재발을 방지하는 값진 기회로 사용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재발은 처음 호전이 온 이후에 내담자나 혹은 치료자의 노력이 감소되었을 때 나타나곤 한다. 만일 특수한 치료적 절차에 따라 증상의 변동이 있다면, 이는 그 치료 기법이 변화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밝혀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자발적으로 증상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회기 중반 이후에 ‘계획적인 증상의 재발’을 유도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즉 환자의 동의하에 모든 적극적인 가설 검증과 비합리적인 생각의 평가를 중단하고, 개인적인 약점과 실수에 대해 집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다시 우울해질 것이고, 여기서 다시 치료 기법을 적용함으로써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으며, 치료 기법이 지닌 특정한 효과도 더욱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다.
다섯째, 재발 방지를 위해 치료 중에 배운 인지적 기술을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격려하는 것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여섯째, 치료가 종결된 후에 한두 회기 정도 추후 회기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드시 증상이 재발했을 경우에만 치료자를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제안은 종결 시의 불안감을 감소시켜 주는 좋은 장치가 된다.
기타 고려할 사항
1.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형성 문제
내담자가 저항적이고 불만족스러워한다고 느껴질 때, 치료자는 자신의 관찰이 정확한지 확인하고 내담자가 치료나 치료자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다루어야 한다. 저항은 수동적인 비협조나 적극적인 저항의 형태 모두로 나타날 수 있다. 치료자는 언제라도 저항에 직면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하고, 되도록 이러한 저항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료적인 요구나 과제를 적절히 구조화하여 할당하고, 과제 완수가 치료의 유일한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협조나 저항은 관계 손상의 신호라기보다는 치료에 기여하는 요인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내담자가 다른 대인상황에서 범할 수 있는 왜곡된 판단 양식에 대한 유용한 근거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부적응적인 해석에 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2. 치료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을 때
내담자가 꾸준히 과제를 수행하며 잘 협조하고 있어 보이는데도 치료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점검한다.
첫째, 치료자나 내담자 모두에게, 변화의 속도나 정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닌가?
둘째, 인지치료의 기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 대안적인 합리적 사고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정서적인 자극 상황에서 연습한 합리적 사고를 기억해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가?
셋째, 치료자가 주변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나?
넷째, 치료자가 하나의 기법만 경직되게 고집하지는 않나?
다섯째, 내담자의 기본적인 절망감이 치료 효과나 성공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닌가?
3. 치료자는 인지치료가 모두에게 잘 맞는 것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치료가 왜 효과적이지 못한가에 대한 원인과 관련 없이, 치료자는 자신의 역기능적 사고 내용을 감지해야 한다. “인지치료는 이 환자에게 잘 맞지 않는다. 문제가 너무 깊다./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 망쳐버렸다./ 저 환자는 스스로 기분 나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도대체 내가 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우울하다. 아무 것도 해낸 것이 없다./ 호전이 너무 느리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와 같은 것이 치료자의 역기능적 신념이다.
4. 자살 문제
자살사고를 명료하게 다루어야 하며, 이에 관련된 의도 및 의미를 탐색하고, 현재의 심각성을 평가해야 한다. 언제라도 자살 사고가 존재한다면 어떠한 주제보다도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특히 치료 초반을 포함하여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다루어야 한다.
Review 8-1.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정동장애의 로샤 반응 차이
DSM-IV의 진단 기준상에는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정동장애가 명확히 구별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임상장면에서는 두 장애 간의 감별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것은 주로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가 망상이나 환청을 비롯한 정신병적 증상을 현저하게 나타낼 경우이다. 이 경우 환자의 증상이 기분장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정신분열증적인 사고장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에 따라 환자의 증상에 대한 이해와 약물치료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감별진단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로샤검사는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정동장애의 감별진단에서 매우 값진 정보를 제공한다.
본 리뷰에서는 로샤검사를 통해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정동장애가 어떻게 감별될 수 있는지, 각 장애의 특징적인 로샤반응의 양상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특히 두 장애는 모두 사고장애를 나타내지만 사고장애의 종류나 병리적인 정도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므로, 상이한 사고장애의 패턴은 감별진단의 주요한 초점이 된다(Weiner, 1998; Johnston & Holt, 1979; Solovay, Shenton, & Holzman, 1987).
정신분열증
1. 지각적 왜곡과 형태질의 저하
WSum6의 상승으로 나타나는 사고 연상의 장애는 정신분열증 외에도, 망상장애나 정신분열형 성격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분열증 스펙트럼 상의 장애나 양극성 정동장애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Weiner는 다른 장애에서는 정신분열증에서처럼 명확한 정신증(overt psychosis)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로샤검사의 형태질 저하에 의해 측정되는 ‘현실검증력의 장애’라고 하였다. 따라서 X-%가 상승하는 것은 심한 현실검증력의 장애를 반영하며, 장애가 단순히 망상장애나 정신분열형 장애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임을 의미한다.
2. TDI 점수가 높은 사고장애
TDI 1.0 수준의 오염(contamination), 지리멸렬(incoherence), 신조어(neologism)와 같은 심한 사고 장애가 나타난다. 특히 오염 반응이나 신조어 등은 개념의 경계가 매우 유동적이고(fluid) 각 개념의 현실적인 경계가 와해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자아경계(ego boundary)의 손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사고의 비논리성 및 비현실성
조증 화자들의 장난스럽고 유쾌한 반응, 또는 과다하게 수식적이거나 앙양된 분위기의 장광설 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보다 와해되고(disorganized), 혼동되어 있고(confused), 매우 특이하거나(peculiar) 기태적인(bizarre) 단어나 문장을 사용하는 이상한 언어 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양극성 정동장애
1. TDI 점수가 비교적 낮은 사고장애
조합(combination) 종류의 비논리적인 연상(INCOM, FABCOM)이 많고, DR반응이나, 경박하거나 장난스러운 작화적 반응(flippant response, playful confabulation)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정신분열증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형태지각의 왜곡, 즉 형태질의 저하는 경미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우울한 생각이 잠시 나타났다 금방 부인되고, 여기에 긍정적인 색채의 생각이 나타나곤 한다. 병적이고 우울한 생각과 매우 긍정적이고 유쾌한 생각이 번갈아 나타난다. 유머, 장난기, 경박함이 특징적이고 또한 부적절한 자극이 끼어드는(irrelevant intrusion)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TDI 지수 1.0 수준의 사고장애는 보이지 않는다.
2. 양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반응경향
반응 수가 많고, 람다 값이 낮고, blend 반응이 많다. 발산적인 정서 반응(CF, C의 우세)이 특징적이고, 정서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높다.
3. 정서적 색조가 강조된 반응
우울증의 지표들과 더불어, 불쾌한 정서를 억지스럽게 유쾌한 정서로 대치하려는 원초적이고 취약한 부인반응으로 색채투사 반응(CP)이 나타나곤 한다. 이는 양극성 정동장애나 순환성 정동장애에서 나타나는 강한 기분 변동(mood swing)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Review 8-2. 양극성 정동장애의 인지행동치료
양극성 정동장애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질병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어 왔지만, 기분 장애 증상이 발현되는 동안 판단력의 장애나 기능의 손상으로 인해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가 많이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적절한 심리치료적 개입을 실시한다면 여러 가지 치료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우선, 환자가 약물치료에 충실히 순응하도록 교육하고, 진단기준을 만족시키는 상태로 증상이 활성화되기 전에 상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여 증상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증상의 유발 혹은 악화 요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대인관계적 스트레스 원인에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할 수 있다.
양극성 장애 증상의 진행과정
우울증이나 조증의 발병은 기분 변화(슬픔, 기분 고조, 짜증, 과민함), 지각이나 사고 과정의 변화(걱정, 과대망상, 자기 비난), 생리적 변화(수면, 식욕, 에너지, 활력)를 야기하고 이런 변화는 활동의 증가 혹은 감소와 같은 행동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행동상의 변화는 환자의 심리사회적 기능 수행을 방해하고 금전적 혹은 대인관계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이러한 증상이 가라앉은 후에는 스트레스가 된다. 이는 다시 다른 심인성 증상을 유발하면서 우울증이나 조증을 발병시키는 취약성 요인이 된다.
치료적 개입
1. 전통적 약물치료
<그림 1>에서 A와 B에 대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A는 약물을 투여하여 우울증이나 조증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B는 우울증이나 조증의 증상
<그림 1> 양극성 장애의 현상학적 과정 및 CBT 개입에서의 목표
이 활성화되어 있는 동안 증상을 통제하고 조절하기 위해 시도된다.
2. 인지행동치료(CBT)
반면에 CBT는 <그림 1>의 모든 단계에 적용될 수 있다. CBT의 기능은 약물치료의 효과를 증가시키거나, 약물치료가 충분치 않을 때 부가적으로 대처 전략을 제공하는 것이다.
① A와 B: 약물치료에 순응하게 하고 증상과 싸워나가는 전략을 제공한다.
② C: 인지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을 통해 부적응적인 행동을 야기하는 역기능적 사고와 이와 관련된 정서들을 감소시킨다.
③ D: 우울증으로 인해 무기력하고 침체상태에 있어 일상생활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CBT 기법을 적용하여 활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고, 경조증이나 조증으로 인해 활동성이 증가되어 있고 위험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활동성을 억제시킬 수 있다.
④ E: 심각한 심리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구조화된 문제 해결 기법을 사용한다.
⑤ F: 심리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CBT 기법을 적용하여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행동 · 정서 · 신체 · 인지적 증상들을 조절하도록 도울 수 있다.
양극성 장애의 CBT 목표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CBT를 적용할 때 치료적 목표는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첫째, 환자와 보호자에게 양극성 장애란 어떤 것인지, 치료적 접근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양극성 장애로 인한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교육한다. 둘째, 환자에게 조증과 우울증 증상들의 발생, 심각도, 진행과정을 스스로 감찰하는 방법을 교육한다. 셋째, 처방된 약물에 대해 순응하도록 도와준다. 넷째, 증상과 관련된 인지, 정서, 행동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비약물적 책략들(특히 인지행동적 기술들)을 제시한다. 다섯째, 치료를 방해하거나 증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하도록 환자를 돕는다.
양극성 장애에 대한 CBT 치료법의 가정
첫째, 사고나 정서 및 행동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상호간에 영향을 끼친다. 환자에게 정서, 인지 및 행동의 패턴이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인식시킨 후에 인지 혹은 행동 반응을 변화시킨다. 둘째, 양극성 장애에 걸린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환자는 치료에서 더욱 적극적일 수 있고, 더욱 자세한 정보에 기반을 두어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CBT의 구체적인 기법을 교육하기 전에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조증이나 우울증의 초기 경고 징후를 일찍 알아차리면 초기에 개입할 기회가 생기고 증상도 억제될 수 있다. 넷째, 인지적, 행동적 개입을 추가적으로 하게 되면 약물의 효과를 증대시켜 재발이 억제될 수 있다. 다섯째, 약물에 대한 순응도를 높여 주어 환자가 치료에서 최대한의 도움을 얻게끔 할 수 있다. 여섯째,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되어 증상을 악화시키는 심리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리능력을 향상시켜 증상의 재발을 막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일곱째, CBT에서는 양극성 장애의 증상 및 그 결과로 생긴 일들에 대처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극성 장애에 대한 CBT와 전통적인 인지치료 형태의 차이점
양극성 정동장애의 CBT에서는 기술 훈련이 설교적이고 교육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소수의 기본적인 인지행동 기법만을 가르친다. 또한 각 회기의 화제도 상당 부분 구조화되어 환자가 제안한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증상이 매우 심한 상태에서는 약물치료가 우선되며, 다음으로 심리교육과 기술훈련이 시행된다.
치료단계와 회기의 주제
총 20회기의 치료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환자교육 1회기 인지행동치료 개관
2회기 양극성 장애란 무엇인가?
3회기 기분 안정제(mood-stabilizing medications)
4회기 항우울제 약물치료
5회기 양극성 장애의 개별 증상들
6회기 증상 감지(symptom monitoring)
치료 순응 7회기 치료 순응(treatment compliance)
인지행동적 개입 8회기 왜곡된 사고(biased thinking)
9회기 우울증에서의 인지 변화
10회기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에 대한 논리적 분석
11회기 조증에서의 인지 변화
12회기 우울증의 행동 양상
13회기 조증에서의 행동 변화
심리사회적 문제들 14회기 심리사회적 문제들
15회기 심리사회적 기능에 대한 평가
16회기 문제해결기술 개발
17-20회기 심리사회적 문제 해결하기
유지(maintenance) 치료 1-4회/ 1개월 CBT 기법들을 복습한 뒤 이용하기
다음에서는 몇몇 회기와 관련된 사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1. 치료 순응(7회기)
7회기의 치료 순응과 관련하여, CBT에서는 비순응(noncompliance)이 저항이 아니라 행동으로 정의된다. 특히 약물에 대한 협조는 약물치료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익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행동이다. 비순응 행동을 야기하는 것에는 개인내적인 것(증상, 두려움 등), 대인관계적인 것(환자와 임상가의 관계), 사회적인 것, 치료적인 것(부작용, 비용) 등의 요인이 있다.
치료에 대한 순응을 이끌어 내는 과제는 환자, 치료자, 환자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진다. 여기서 임상가의 역할은 치료적 동맹을 확립하고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환자의 증상, 생활양식, 선호를 고려한 적절한 치료를 계획하고, 치료 순응 문제가 비판단적 방식으로 논의될 수 있는 신뢰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며 환자와 치료 목표를 협상하고, 질환과 치료적 대안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환자의 책임은 자신이 동의했을 때에는 치료에 반드시 참석하고, 치료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거나 걱정이 되면 질문하기 등이다.
2. 우울증에서의 인지적 변화(8, 9, 10회기)
우울증에서는 슬픔, 불안, 분노, 죄책감 등의 부정적 정서와 관련되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 특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정보처리의 오류로 인해 사건의 부정적 측면은 강조하고 긍정적 측면은 간과한다. 이처럼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정보에 기반한 해석은 그에 수반되는 행동 또한 악화시킨다. 여기에 관여하는 인지 왜곡에는 비관적 사고와 불충분한 정보에 기반을 두어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것 등의 다양한 오류가 포함된다.
CBT의 목표는 기분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는 생각을 구분해 내고, 이러한 생각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타당하지 않은 부정적 사고는 정확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수정하여, 인지의 왜곡에서 비롯된 감정의 강도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3. 경조증과 조증의 인지적 변화(11회기)
경조증 혹은 조증 상태에서는 자신, 타인, 미래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생기는데, 주로 근거 없이 낙관적이거나 과대적(grandiose)이다. 사고 속도와 생각의 양이 증가되어,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생각이 머릿속에 쇄도한다. 조증이 심할 때는 편집증, 망상, 환각이 동반되기도 한다.
인지적 변화를 다루기 위해서는 미묘한 인지 변화를 초기에 감지하여 신속히 치료적으로 개입하고, 의심이나(suspiciousness) 과대적 사고(grandiose ideas)와 같은 역기능적 신념 혹은 관념들을 평가하며, 자가 자극 행동(self-stimulating activity)들을 제한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조증에서는 사회적 판단능력의 손상이 나타난다. 환자들이 과거의 조증 시기를 회고할 때, 타인과의 교류에 있어서 자기인식이 감소해 있었음을 보고한다(“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이들은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흔히 조증 발병 초기에 발생하는 오류적 생각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그들이 나를 원한다(They want me).”
성적 흥미와 욕구가 증가한다. 즉, 성적인 생각을 자주 하고, 성적인 행동(사창가에 가고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지냄)이 증가한다. 이로 인하여 상대방의 성적 관심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언어적, 비언어적 단서들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그것이 상대방의 성적인 감정이나 욕망을 나타낸다고 해석하고, 자신이 성적으로 매력을 느낀 타인도 자신에게 매혹되었다고 결론짓는다.
(2) “사람들이 너무 천천히 움직인다.”
사고, 언어, 행동의 속도 증가와 내적인 흥분 혹은 불안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 결과로 이들은 타인에 대해 참을성이 없어지고 쉽게 짜증을 낸다.
(3) “최고의 사람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아랫사람을 통해도 되는 일에 성급히 상급자를 찾거나, 자신이 지각한 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체 체제의 문제임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언론기관을 찾는 등의 행동을 한다.
(4) “유머를 쓰는 것이 좋다.”
유머를 많이 사용하는데, 종종 풍자적이고 비판적이고 신랄한 것이어서 사회적 상황에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5)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좋아한다.”
타인들이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있으면 이를 과대평가한다.
(6) “다들 바보 같다.”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긍정적인 인정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타인은 주의력이 없고 재치 없고 어리석고 창조성이라곤 조금도 없다고 판단한다.
(7) “약은 필요 없다.”
조증의 초기에 아주 흔한 생각으로, 환자들은 기분이 아주 좋은 것이 병이 치료되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물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분안정제의 투약을 감소하거나 중지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강화된다.
(8) “내가 가장 잘 안다.”
“나는 대단해!”, “역시 나는 이렇다니까.”, “너희는 다 틀렸어.”라고 생각하며, 앙양된 기분으로 인해 모든 생각들이 한결같이 인정된다고 느끼고 확신감과 직관력이 증가한다. 이런 상태에서 부하나 동료에게 부적절한 요구를 하게 되고, 이것이 저항을 유발해 환자는 점차 더욱 짜증스러워진다.
(9) “오늘을 즐겨라. 내일은 더욱 좋을 것이다.”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자기 행동의 잠재적인 부정적 결과를 무시하고, 현재와 미래 사건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확신으로 인해 도박을 하거나 성생활이 무분별해지기도 하며 사기를 치기도 한다.
4. 우울증에서의 행동적 변화(12회기)
무기력(lethargy), 흥미감소, 동기 저하, 피로, 우유부단으로 인해 행동패턴이 변한다. 사회적 위축, 직업수행의 장애, 집안일이나 가족 간 책임에 대한 태만이 나타난다. 이 같은 변화는 다시 죄책감, 무망감, 좌절감을 유발하여 악순환을 강화한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는 목표 지향적이고 즐거운 활동을 증가시키는 행동적 개입이 필요하다. 점진적 과제 할당법(graded task assignment)를 사용하여 과도하다고 느껴지는 과제들을 더 작고,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소과제로 만들어 한 번에 몇 개씩 숙제로 내거나, 일상적 과제들의 우선순위(A list/ B list)를 매겨 실행하도록 하여 활동량을 증가시켜야 한다.
우울증에서 보이는 비활동성의 인지적 측면들(죄책감, 우유부단, 수행에 대한 비현실적 기준, 자기비하)을 지적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무기력감과 흥미의 결여로 인해 즐거운 활동을 포기하게 되지만, 즐거운 활동을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기분을 호전시키고 동기를 증가시키며, 삶에 대한 관점을 호전시킬 수 있다. 환자들은 행동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하고 첫 번째 과제부터 안 해오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숙제를 하지 못한 이유를 논의하게 되는데, 환자를 비판하거나 거부한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과제가 오히려 너무 큰 부담이 된다면 이는 치료적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
5. 경조증과 조증의 행동적 변화(13회기)
조증 시기에는 무슨 일이든 간섭하고, 부적절하게 유혹적이며, 장난스럽고 경박하고, 즐기려 하는 등의 행동을 나타낸다. 이러한 양상은 우울한 기간이 길었을수록 더욱 나타나기 쉽다. 이런 점 때문에 경조증 상태는 환자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운 변화로 여겨져 많은 환자들이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애쓴다. 겉으로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과민하고 신경질적이어서 공격적인 행동도 나타난다. 또한 조증상태에서는 돈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행동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CBT에서 경조증 상태로 나타나는 행동 증상을 다루는 방법은, 조증의 극단 상태로 가는 것을 막는 방편으로 행동적 변화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조증 발병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초기 행동변화를 환자들이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활동을 조절하고 억제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한다.
6. 심리사회적 문제(14, 15, 16회기)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만 양극성 환자들에게는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연구조사에 의하면 스트레스적 생활사건들과 우울증이나 조증이 명백히 관련되어 있었는데, 특히, 초기단계에서의 우울증이나 조증은 생활 속의 중요한 스트레스 사건에 이어서 발생한다. 하지만, 심리사회적 문제가 우울증이나 조증 기간의 환자 행동의 결과로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울증의 무기력, 피곤, 의욕저하나 조증의 금전적 낭비와 판단력 손상의 결과로 직장을 잃게 되고 재정적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심리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실패하면 환자의 스트레스가 악화되고 재발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다음의 단계를 따라 조심스럽게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문제를 규명하여 정의하고, 가능한 해결책들을 모색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선택하고 실행하여 그 결과를 평가한다.
문제해결훈련은 환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환자의 대처 자원들을 조사해야 하며, 환자의 능력을 알아야 하고, 협조가 용이하고 치료 과정을 촉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7. 대인관계 문제(17, 18, 19, 20회기)
우울증과 조증이 있을 때에는 타인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부정적인 사고, 역기능적인 태도나 신념이 기분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타인과 교류할 때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가정을 하거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게 만들며, 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충돌을 일으키기 쉽다.
Review 9-1. 로샤의 희귀부분반응
Exner의 종합체계
Exner의 종합체계(Comprehensive System)에서 희귀부분 반응(unusual detail; Dd)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회피하는(retreat) 것을 의미한다. 즉 희귀부분 반응은 자신이 처한 환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지각하거나(전체반응: W) 보다 명확한 요소(부분반응: D)를 지각하는 대신에 지나치게 세부적인 요소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실에 대한 직면을 회피하는 반응이다.
보통 정상 성인에게 있어 Dd 반응은 전체 반응의 6% 정도를 넘지 않으나 아동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좀 더 비율이 높을 수 있고, 정신분열증 환자 등에서는 이 비율이 25% 이상으로 증가될 수 있다. 그러나 Dd가 W와 D반응 수에 비추어 적당할 경우에는 적절한 주도성과 더불어 현실로부터 피할 수 있는 적절한 능력, 즉 건강한 적응양식을 의미한다. 특히 Dd가 높을 경우에는 상황 전체에 포함되어 있는 모호성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욕구가 많음을 나타낸다.
다수의 Dd가 정신분열증 스펙트럼 상의 환자에게서 나타날 경우 이는 환경으로부터 지각하는 내용을 자신의 내면세계에 보다 일치하도록 만들기 위해 환경에 대한 지각을 협소하게 제한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즉 Dd 반응은 내면세계, 혹은 공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지각과정의 손상을 반영하는 하나의 지표로 여겨진다. Exner는 만일 Dd 반응에 운동반응 결정인이 겹쳐진다면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고 하였다.
다수의 Dd가 강박적인 환자들에게 나타난다면 이것은 불안을 감소시키고 자신의 지각 과정을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부적절한 세부사항을 배제하고 적절한 요소들을 취합하여 주어진 상황의 전체 맥락을 지각하고 추상화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Dd의 수가 증가하고 지각물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이러한 사고의 경직성은 보다 심하다고 하겠다.
Klopfer
Klopfer는 Exner의 Dd 반응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부분반응을 언급하였다. de(edge)는 도형의 가장자리 윤곽만 지각하는 경우이다. de 반응이 높다는 것은 불안감으로 인해 상황을 직면하지 못하고 주변에만 머물러 있으려는 회피적 성향을 나타낸다. 어떤 상황에 깊게 관여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dr(rare) 반응은 도형의 자연스러운 윤곽, 즉 일반적인 게스탈트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임의로 도형의 어느 영역을 잘라 내거나 결합하여 확대시키는 반응이다. 이는 자신이 형성하려는 개념, 혹은 공상의 내용에 맞추어 임의로 부분을 잘라내고 또는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역시 현실로부터 소원해진 과도한 연상 과정을 반영하는 하나의 지표이다.
Rapaport
Rapaport는 de반응이 도형을 지각적으로 관통하여 다루지 못했을 때 나타나며, 당면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으로 인한 회피적인 반응이라고 하였다. 긴 반응시간 이후에 나오는 첫 반응이 매우 협소한 부분의 de일 경우에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현실에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역시 위축되고 회피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dr 반응은 강한 불안감에 의해 지각적 조직화 능력이 손상된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불안감으로 인해 상황을 전체로 조직화하거나 혹은 명확한 부분만을 변별적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임의로 도형에서 베어 낸 부분에 기초하여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dr 반응은 지각적 불균형, 매우 임의적인 지각 양상을 반영한다. 또한 내적 사고의 흐름에 압도되어 있을 경우, 공상 활동이 매우 강렬하고 이에 과도하게 몰두해 있을 경우에 dr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외부 상황에 존재하는 객관적 현실에 대한 관심이나 관련이 이완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과도한 연상에 의존하여 공상에 부합하는 부분을 임의로 지각하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자극의 추상화, 통합, 명료화 과정은 필요치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dr 반응은 주로 정신분열증 초기의 환자나 강박장애 환자 등 연상과 관념 활동이 매우 활발한 집단에서 잘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dr 반응은 과도한 공상집착을 통한 현실 회피적 대응의 양상을 반영한다.
Review 9-2. 심리적 내면세계에서 공상의 역할
백일몽이나 공상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정상적인 심리적 행위로 인간의 정서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합리적인 사고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사람이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그러나 성인기에 나타나는 공상이나 백일몽은 아동기적 사고의 연장으로, 쾌락 원칙(pleasure principle)에 따라 소망 충족적, 마술적, 원초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은 어둡거나 낯선 장소와 같은 불안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낙관적인 공상에 몰입하여 안도감을 찾으려 하곤 한다.
충격적 경험(traumatic experience)에 대한 대응책으로 공상이 사용되기도 한다. 충격적 경험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고 불가피한 경우가 많으며, 장기간에 걸쳐 그 영향력이 지속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때 피해자들은 자신의 정서를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일시적인 도피처를 찾게 되는데,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종종 공상에 몰입하여 의식 상태를 둔감하게 만들고 일시적으로나마 외부 현실에 대한 차단막을 치는 경우가 있다.
정상적인 의식 상태는 명료하게 각성되어 있고, 주의 초점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현재와 외부 현실을 분별하여 인식한다. 순간순간이 일관적이고 의미 있는 각각의 장면으로 조직되고 이러한 장면이 연속적으로 흐르며 의식적인 경험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충격적 사건을 직면하는 상황에서는 의식의 현실 조준 작용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의식 상태가 흐릿해짐에 따라 의식의 유연성이 상실되고 초점이 매우 협소해지며, 공상 경향성이 강한 사람들은 현실을 완전히 차단하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성을 최소화하고 공상과 심상의 세계로 몰입해 버린다. 이와 같은 공상 몰입은 스트레스로부터의 은신처로 기능한다.
따라서 공상 경향성(fantasy proneness)을 반드시 정신병리적 증상으로만 간주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외부 현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대처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공상 경향이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공상을 통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어렸을 때부터 공상 속의 가상세계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자신의 주변에 가상적인 동료를 만들거나 또는 인형 등의 사물에 감정과 인성을 이입시킨다. 또, 선명한 공상을 지니고 있어 실제 사건의 기억과 공상의 기억을 혼동하기도 한다.
공상 경향성이 강한 사람들은 평소에 잘 적응하기도 하지만, 충격적이거나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경우에는 자기보호 수단으로 공상 속으로 도피한다. 이들 중에는 아동기에 정신적 충격 혹은 학대를 겪었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경우가 많다.
Review 10. 정신분열형 성격장애의 인지행동치료
도입
정신분열형 성격장애는 사회적 고립, 제한적이거나 부적절한 정서, 이상한 행동 등을 그 특징으로 하며, 그 가운데 기괴한 사고가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성격장애 중에 인지적 왜곡이 가장 심한 성격장애로, 주로 네 가지 주제의 기괴한 사고가 있다. 첫째, 의심 혹은 편집증적 사고, 둘째, 전혀 무관한 사건도 자신과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등의 관계사고, 셋째, 죽은 친척이 자기 곁에 와 있다든가 남이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등의 기괴한 신념과 마술적 사고, 넷째, 착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고 특징은 이들이 하는 말의 기괴성에서 잘 나타난다.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연상의 이완은 없지만, 우원적이고(circumstantial) 주제를 벗어나며(tangential)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윤색되어 있다. 감정도 너무 제한되어 있거나 상황에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또한 매일 몇 시간씩 옷장을 정리하는 등 행동도 부적절하고 기태적일 수 있다. 이런 행동 때문에 사회적 고립이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지, 사회적 상호교류에 대한 심한 불편감과 긴장감 때문에 사회불안이 생겨난다. 정신분열성 성격장애의 경우처럼 대인관계에 대한 바람이 결여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사회불안 때문에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동적 사고와 기저 신념
다른 장애와 마찬가지로 치료의 가장 첫 단계는 전형적인 자동적 사고를 파악하는 것이다. 인지의 정확한 형태에는 개인차가 많이 있지만 대개 전술한 네 가지 주제에 속한다. 피해사고, 관계사고, 마술적 사고와 착각 외에도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자동적 사고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공포와 걱정이다.
자동적 사고의 내용이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지 양식에도 개인차가 있다. 어떤 환자는 세부적인 데 집착하고 전체 상황을 조망하지 못하는 반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면을 간과해 버리는 환자도 있다. 공통적으로는 정서적 추리와 자기와 관련짓기 등의 인지적 왜곡을 범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열형 성격장애 환자들은 상당히 구체적(concrete)인 편이며, 자신이 상상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이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자동적 사고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저 사람이 나를 감시하나?
2. 저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 나는 안다.
3.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4. 저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5. 저 여자 안에 악마가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6.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7. 내가 죽었나?
자동적 사고 기저의 태도와 가정 역시 상당히 기괴하다.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로는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거나, ‘사람은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제는 개인마다 독특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와 가정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두려운 상황에 처하면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 세상은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3. 사람들은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다.
4.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우연이란 없다.
5. 나는 느낌으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있다.
6. 대인관계란 위험한 것이다.
7. 나는 결함이 있는 존재이다.
전반적인 임상적 전략
첫 번째 전략은 굳건한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신분열형 성격장애 환자들은 사람에 대해 많은 역기능적 신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치료적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단 치료적 관계가 형성되면 이는 사회적 고립을 감소시키는 첫 시작이 된다. 사회적 접촉 없이는 현실검증력을 잃을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신분열형 성격장애 환자들은 대부분 사회적 관계를 소망하고 사회적 고립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사회적 상호교류를 증진시키고 전술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환자의 전반적인 대인관계 폭을 넓히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두 번째 치료 전략은 사회적 적절성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치료자가 회기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환자의 적절한 모습을 강화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기술 훈련이나 적절한 언행의 모델링도 시도해 보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부적절한 반응을 찾아내고 파악해 볼 수 있도록 가르친다.
사회기술훈련에서는 인지 및 행동적 개입을 함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타인과의 만남에 대한 자동적 사고와 기저 가정을 파악하고, 이를 평가하고 검증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 것이다’, 혹은 ‘나는 사회적 낙오자다’와 같은 믿음을 가진 환자의 경우, 실제 대인관계에서 자기가 어떻게 보일 것인지,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수정해 볼 수 있다. 어떤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면 좋을지 위계를 정해 보기도 하고, 적절한 반응을 역할연기 해보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이러한 개입에는 집단치료가 이상적인데, 환자가 지지적인 환경에서 자신과 타인의 상호관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전략은 치료 회기를 구조화하는 것이다. 정신분열형 성격장애자들의 인지 양식이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에 회기 동안 치료 목표를 아주 조금씩 성취해 가도록 해야 한다. 의제를 정하는 것뿐 아니라 그 회기 동안 달성할 작은 목표 한 가지를 환자 스스로 정해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환자가 자신의 생각을 평가함에 있어서 정서적 추리를 하지 말고 객관적인 증거를 찾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자신의 부적절한 생각을 무시하고, 그런 생각에 따라 감정적 혹은 행동적으로 반응했을 때의 결과가 어떠할지 고려해 보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때 이들에게 왜곡된 인지가 무척 많으며, 합리적으로 반응한다고 해서 이런 인지 자체가 잘 감소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치료자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기괴한 사고 자체는 증상으로 취급하고, 그 기괴한 사고에 대해 환자가 가진 생각을 합리적으로 바꾸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현실 속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런 생각이 들 때 이를 무시하는 법을 배우게 할 수 있다. 또, 집에서 물을 마실 때 물 속에 유리조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환자의 경우, 객관적 증거가 없음을 반복적으로 깨닫게 하여 이런 생각이 들 때 무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환자는 자신의 기괴한 생각에 정서적 혹은 행동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대신 ‘또 시작됐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 생각이 옳거나 실제로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등의 대처 전략을 미리 마련해 둘 수 있다.
또한 환자가 가진 인지 양식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상황 해석에서 구체적인 부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면 상황에 대한 질문의 답을 구체적으로 해 보도록 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부분만 묘사하고 큰 조망을 못할 경우 요점을 정리해서 말하는 연습을 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전략은 실제로 환자가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들은 취직하거나 집을 구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환자에 따라 자조 기술, 개인위생 교육, 사회기술 훈련 등의 구체적인 개입이 유익할 수 있다.
치료자 문제
정신분열형 성격장애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치료자가 당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치료 계획에 대해 환자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 내는 것이다. 굳건한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여 환자가 자신의 역기능적 패턴을 기꺼이 수정해 보고자 노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환자가 치료적 작업에 동의하고도 숙제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치료 회기와 회기 사이에 현실과의 접촉을 잃고 다시 공상 세계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치료 초기에는 회기 수를 늘리거나 매일 환자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도록 하는 것도 유용하다. 숙제도 아주 작게, 환자가 관리 가능한 정도로만 내줌으로써 환자가 성공 경험을 많이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어려움은 환자의 말과 행동과 감정이 기괴하기 때문에, 회기 동안 환자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치료가 매우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치료자는 목표를 낮게 잡고, 전통적 인지치료 기법도 융통성 있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들은 치료자의 행동도 이상하게 해석할 것이므로, 치료자는 환자의 감정 변화와 부적절한 행동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그와 관련된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해 내야 한다. 또한 환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치료자와만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치료자에게 깊은 애착을 형성할 수 있고, 치료자와의 만남에 대해 부적절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치료자는 치료적 관계의 한계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사고에 대해 친절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Review 11. 편집증의 인지이론 및 치료
편집증의 인지이론
현 인지이론에서는 편집증을 ‘자기(self)’에 대한 위협과 방어로 보고 있다. Zigler와 Glick(1988)의 이론에서는, 편집증은 낮은 자존감에 대한 방어이며 때문에 편집성 정신분열증은 방어된 형태의 우울증이라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우울과 낮은 자존감이 같은 것은 아니며, 편집형 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현상적으로 우울한 경우가 많다. 이를 볼 때, 편집증은 우울보다는 낮은 자존감을 방어해 주기 때문에 지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 Bentall(1994)에 따르면 편집증에서는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이 과장되며, 대개 우울하면서도 자존감은 높다. 피상적으로는 타인을 비난하고 긍정적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지만 비교적 의식수준에 접근 가능한 우울증적 자기도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Bentall, Kinderman과 Kaney(1994)는 편집증 방어에 대한 통합이론을 내놓았는데, 여기에서는 부정적 사건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일반적 경향이 과장되어 나타난 것이 편집증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과장된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의 동기는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 간의 괴리를 줄이려는 것이며, 그 기원은 어린 시절에 있다고 보았다.
Chadwick, Birchwood와 Trower(1996)의 ABC 모델에 따르면 편집증 방어는 일종의 분노 귀인 양식이다. 대인관계에서 부정적 평가를 지각하고 이를 일종의 부당한 박해라고 해석하며, 비판을 거부하고 박해자를 비난하는 것이다. Bentall의 이론과 달리, 위협의 원천을 모든 부정적 사건이 아니라 ‘대인관계에서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한정하였고, 편집증 방어를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평가’라고 개념화하였다. 즉 박해자에 대한 분노와 부정적 평가가 편집증의 핵심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편집증의 두 가지 유형
Chadwick 등은 편집증을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과 ‘나쁜 나(bad me) 편집증’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피해 편집증(persecution paranoid)으로, 타인을 비난하고 나쁘다고 보며,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나쁜 나(bad me)’ 편집증은 처벌 편집증(punishment paranoid)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기를 나쁘게 보고, 타인은 자신을 정당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본다.
1. 증거
이렇게 구분되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Chadwick 등의 연구에 따르면, 11명의 편집증 환자 가운데 3명이 우울증과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Zigler와 Glick(1988)의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편집증 환자들이 소수이지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 증거는 환청에 대한 연구 결과, 환청 내용이 이전 나의 잘못에 대한 당연한 처벌이거나 아니면 부당한 박해라는 신념 두 가지로 나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환청과 같은 위협을 박해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나쁜 나(bad me)’ 편집증은 위협을 처벌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증거는 편집 망상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의식적인 수준의 자존감이 매우 낮은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2. 이론적 구분
Wessler와 Wessler(1980)는 우울증을 불편감 장애(discomfort disturbance)와 자아 장애(ego disturbance)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 응당 얻어야 할 것에 대한 요구가 좌절된다고 지각할 때, 후자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기 위해서는 성공하거나 인정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을 때 나타난다고 보았다.
‘불쌍한 나(poor me)’ 라는 신념,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기정당성과 자기연면에 대한 신념은 내가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했다고 부당함을 지각한 데서 느끼는 불편감 장애(discomfort disturbance)에서 오는 것이다. ‘나쁜 나(bad me)’라는 신념,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무가치하다는 신념은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남이 나를 나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정말 그런 것이며 이는 끔찍하다’라고 결론짓는 자아 장애(ego disturbance)에서 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구분은 편집증과 우울 외에 다른 많은 장애에도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불쌍한 나(poor me)’와 ‘나쁜 나(bad me)’에 대한 ABC 평가
치료자의 핵심 과제는 우선 내담자를 치료과정에 참여시키고, 다음에는 망상적 추론신념과 자기와 타인에 대한 평가적 신념을 파악하는 것이다. 처벌 편집증의 경우는 부정적 타인-자기평가나 자기-자기 평가가 의식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작업이 비교적 쉽지만 피해 편집증의 경우는 분노감이 강하고 의식 수준에서는 부정적 자기평가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치료에 개입시키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1. 피해 편집증: ‘불쌍한 나(poor me)’
피해 편집증의 심리적 동기는 무시 당하다는 느낌,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과 관련된 공허감 및 절망감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내 흉을 보는 것이 차라리 내 얘기를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여기서 치료자의 과제는 내담자로 하여금 망상을 넘어서서 내면의 취약성에 대해 깨달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사고사슬법과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사용하되,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먼저 망상을 명료화한다. 둘째, 타인-자기 평가를 명료화한다. 이는 ‘망상이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하고 가정해 봄으로써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이것에서 자기-자기 평가가 어떠한지를 찾아낸다.
2. 처벌 편집증: ‘나쁜 나(bad me)’
처벌 편집증을 평가할 때에는 기본적인 ABC 평가를 하고, 의식수준에 있는 부정적 자기평가를 찾아낸다. 일단 부정적 자기평가를 명확하게 찾아내고 나면, 이러한 신념과 문제가 되는 관련 정서와 행동을 파악하고, 이것이 어떻게 편집증 및 초기 아동기와 연결되는가, 그리고 인지치료에서 어떻게 작업될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내담자가 자신의 악함(badness)에 매우 집착해 있기 때문에 이 과제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가? 그 사람들이 당신을 그렇게 비난한다면, 당신 전체를 비난하는가 아니면 일부 행동만을 비난하는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다.
처벌 편집증에는 사고사슬을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한다. 첫째, 편집망상이 참이라고 가정한다. 둘째, 그런 가정 하에서 타인-자기 평가의 특성이 어떠한지를 명료화한다. 셋째, 그와 관련하여 자기-자기 부정적 평가를 명료화한다. 즉 그러한 타인-자기평가에 따라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구체화시킨다.
치료적 개입
피해 편집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진다. 첫째, 피해망상을 논박하고 검증하여, 이를 특정 경험(A)에 대한 반응이자 이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다시 개념화할 수 있게 한다. 둘째, 망상을 타인-자기 평가와 연결시킨다. 즉 타인의 행동 속에서 암묵적인 평가적 위협을 내담자가 지각하고 있으며, 피해 자체뿐만 아니라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도 분노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셋째, 방어적 자기-타인 부정적 평가는 자기-자기평가에 대한 방어라는 통찰을 준다. 넷째, 자기-자기 평가를 논박하고 검증한다.
처벌 편집증에 대한 인지적 개입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내담자 자신의 악함(badness)에 대한 핵심적 부정적 자기평가를 논박하고 검증한다. 둘째, 편집증을 낳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이 악하다는 느낌(sense of badness)이라는 통찰을 갖게 한다. 셋째, 편집망상을 논박하고 검증한다.
치료적 관계
전술한 바와 같이 처벌 편집증이 있는 사람들은 강한 부정적 자기 평가적 신념을 보이며 늘 불안하고 회피적이고 우울하므로, 그러한 정서-행동적 고통과 장애를 경감시키려 하는 인지적 접근을 시도하기가 쉽고, 치료자와 내담자 간에 갈등의 소지가 더 적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한 나쁜 일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악함(badness)을 치료자에게 노출함으로써 비난받고 거부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그 자체로 강력한 수치심 공격하기 연습이 된다. 치료자는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난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체를 공격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내담자는 예견된 공격과 압도적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으며, 자기가 한 ‘안 좋은’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자신을 수용해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반대로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치료자가 내담자에 대한 염려와 관심을 표현하기가 더 어렵다. 대개 치료자에게 자신의 신념을 믿는지 못 믿는지 말해 달라고 요구하며, 자신이 또 다시 오해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리라는 강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확률이 높고 평가과정에서 탈락되기 쉽다.
두 유형의 편집증 모두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편집증 내에 내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나쁜 나(bad me)’ 편집증 환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자기의 악함(badness)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악함(badness)을 발견하고 처벌하지 않을까 매우 두려워한다. 이러한 비일관성을 일깨워줌으로써 ‘타인이 내 생각을 알 것이다(mind reading)’ 라는 망상의 확신 도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피해 편집증 환자는 자신이 실제로 박해를 당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경찰이나 변호사가 아닌 심리치료자를 찾아오는 모순을 보인다. 치료자는 이러한 모순을 부드럽게 반영해 주고, 내담자가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망상과 관련된 심리적 취약성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편집증과 자기
Zigler와 Glick(1988), Bentall(1994)의 이론은 피해 편집증에 대해서는 적절한 이해의 틀을 제공하였지만 처벌 편집증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처벌 편집증의 경우는 자기 봉사적 편향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두 이론 모두 편집증의 핵심이 자기이며 편집증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Chadwick 등의 이론은 자기감이 원래 어떻게 구성되고 이 과정에서 위협받고 와해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으로, 피해 편집증과 처벌 편집증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
1. 자기란 무엇인가?
본 이론에서는 자기라는 실체는 없으며, 자기는 끊임없이 구성되고 결코 안정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자기의 구성에는 세 가지 필요충분조건, 즉 객관적 자기, 주관적 자기, 타인이 있다.
객관적 자기는 산물(product), 즉 구성된 자기(constructed self)이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친숙한 자기의 측면이며, 어떤 내적 실체가 아니라 관찰된, 행동적, 공적 자기, James(1890)의 표현으로는 현상적 ‘나’를 의미한다. 객관적 자기의 실체(substance)는 그 사람의 자기제시 행동이며, 이러한 자기제시를 ‘객관적’으로 만들어 주는 관찰자, 즉 타인을 필요로 한다.
주관적 자기는 행위자(agent)로서의 자기로 객관적 자기를 구성하는 자기제시 행동을 선택하고, 이런 행동을 감찰(monitor, 관찰하고 판단)하고, 타인의 피드백을 감찰한다. 행동하는 힘뿐 아니라 관찰, 해석, 추론, 귀인, 평가, 회상 등의 인지적 과정을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평가기능은 매우 복잡하며, 행위자의 행동에 대한 직접적 평가뿐 아니라 행위자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다시 평가하기도 한다.
타인은 주관적 객관적 측면을 가지는 상호 호혜적 타인을 의미한다. 관찰자로서 주관적 자기의 자기제시를 객관적 자기로 만들어 주는 청중의 ‘공적’ 객관성을 제공하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
2. 자기의 구성
이러한 자기구성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본 이론에서는 Goffman(1959)의 ‘자기제시모델’ 과 그 후속 이론에 동의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람은 청중 앞에 자기제시 ‘공연’을 통해 자기를 구성하며, 이런 의미에서 자기는 ‘청중 앞의 행동’, 즉 객관적 자기를 통해 자신이 연기하는 역할인 것이다.
자기구성 과정을 일련의 단계로 조작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먼저 타인 앞의 자기제시 행동을 한다. Schlenker(1980)는 자기제시를 실제 혹은 상상적 청중 앞에서 자기상을 통제하고 청중이 행위자를 어떻게 지각하고 다룰 것인지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라고 정의하였다. 둘째, 그렇게 제시된 자기에 대한 타인의 지각된, 예견된 혹은 상상된 평가, 즉 타인-자기 평가가 나타난다. 세 번째 단계는 두 가지가 가능하다. 타인의 평가 결과로 나타난 행위자 자신에 의한 자기 평가 즉 자기-자기 평가이거나, 아니면 자기를 그렇게 평가한 타인에 대한 자기의 평가일 수가 있다.
3. 자기에의 위협
자기 구성에 대한 위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행위자가 적절한 자기제시를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습관적으로 이를 무시하거나 부재하여 행위자가 객관적 자기의 지위를 얻을 수 없는 불안정한 자기(insecure self)가 있다. 둘째, 타인의 존재가 너무 강하여(too present) 객관적 자기의 지위를 겨우 얻기는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 의해 부과되는 소외된 자기(alienated self)가 있다.
(1) 불안정한 자기(insecure self)
객관적 자기가 구성되는 데 첫 번째 위협은 주의를 기울여 주는, 객관화해 주는 혹은 ‘반영(mirroring)’해 주는 타인이 없다는 것이다. 행위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행위자는 세상 속에 객관적 자기로 있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는 유기된 느낌(abandonment), 공허감(emptiness), 의미 없는 존재라는 느낌(insignificance), 나를 원치 않는다는 느낌(unwantedness), 정서적 고뇌나 우울한 공허감과 같은 방어되지 못한 형태로 경험될 수 있다.
원형적 불안정 자기는 주관적 자기인 행위자는 온전하나(intact) 그 정도가 지나쳐 과도한 자유를 가지며, 객관적 자기는 결여되어 있다. 그가 구성하고 싶은 자기, 즉 소망하는 자기 혹은 이상적 자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기감을 갖고 있다. 그의 소명은 소망하는 자기를 객관화해 줄 타인(구체적이든 일반적이든)을 찾는 것이고, 그에게 있어 좌절은 무시되거나 거부되고 존재론적 하찮음(nothingness)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의 가장 현저한 방어는 자기도취적 분노이다.
(2) 소외된 자기(alienated self)
두 번째 위협은 타인이 지나치게 존재하며(present) 간섭을 하는 것(intrusive)이다. 객관적 자기를 반영(mirroring)해 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의 소유권을 것이다. 나의 객관적 자기이기 위하여, 행위자로서의 나는 타인에게 자기제시를 구성해야 하고, 상대방은 이 자기를 자유롭게 구성되는 나의 자기로 공감적으로 인정하고 가치 부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 자기가 통제되고 타인에 의해 구성된다면 이는 나의 자기가 아니라 나에게 부과된 소외된(alien) 자기이다. 타인이 명명한 대상(나쁘고 더럽고 쓸모없고 혹은 대단한)인 것처럼 느끼고, 수치심과 자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요약하면, 소외된 자기는 자유를 잃었다고 느끼고, 그의 주관적 자기, 행위자는 타인에 의해 압도된다고 경험하며, 그의 객관적 자기는 안정되기는 하지만 타인에 의해 소유된다. 그의 소명은 그 함정을 탈출하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이 타인에게 예속되기 때문에 좌절하게 된다.
4. 두 유형의 편집증과 자기에 대한 위협
본 이론에서는 ‘불상한 나(poor me)’ 편집증과 ‘나쁜 나(bad me)’ 편집증이 두 유형의 위협 취약성과 방어의 한 예라고 보고 있다.
(1)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불안정 자기 특성의 한 예로 그 취약성과 방어를 보여준다. 이들은 초기 학습경험을 통해 성격적으로(dispositionally) 자기를 불안정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안정된 자기를 찾고자 타인이 웅대한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것이 실패하면 객관적 자기, 세상에서의 존재를 얻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실제-이상적 자기의 괴리는 일반 사람들의 것과 달리 매우 크며, 웅대한 자기를 목표하는 이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에 완전하게 동일시하고 있으며, 무의식적 실제 자기는 객관화해 주는 타인의 부재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 실패한 자기이다.
무의식적 처리 수준에서는 이러한 붕괴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있으며, 이를 방어하기 위한 해결책은 타인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즉 무관심이나 거부 혹은 비판을 ‘박해’로 설명하고, 타인이 전달하는 바의 의미를 마술적이고 망상적으로 변화시키고 거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나를 옳다고 확인해 주지 않는 것(invalidation)이 오히려 자신의 특별함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의 전략이다.
타인을 박해자로 보는 것은 자기가 성공하지 못하고 세상에 부재한 것에 대해 타인을 비난하는 방법이다.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자기의 주관적 자기가 온전(intact)하기 때문에 웅대한 자기상을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귀인 양식을 선택할 수 있다. 타인을 판단하는 행위는 자율감, 행위감 혹은 선택하고 판단할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쌍한 나(poor me)’ 편집증은 자기 초점적 주의를 줄 객관적 자기가 없기 때문에 자기 초점적이기보다 타인 초점적이 되는 것이다. 박해자로 명명될 대상의 역할을 타인에게 두고 대상으로서의 타인에게 원인을 귀인하며 마지막으로 자기의 고통의 원인으로 타인을 비난한다. 그 결과 타인비난 신념과 요구가 생기게 되며 이런 전략을 유지하는 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동기화되어 자신을 우월하고 상대를 열등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2) ‘나쁜 나(bad me)’ 편집증
자기를 소외되고(alienated), 나쁘고(bad), 결점투성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 편집증은 자기제시 행동을 통해 그리고 상대에게 객관화됨을 통해 이러한 주관적 자기가 드러나는 것을 방어하게 된다. 두려워하는 것은 부재한 타인이 아니라 간섭하고 통제하는 타인으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져 버릴 위험이 아니라 타인에게 통제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자신의 객관적 자기는 타인에 의해 구성되고 통제되므로 자율성 상실의 위험에 처해 있다. 타인을 극단적으로 위협적이며 강력하다고 해석하는 반면, 자신을 약하다고 해석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자신이 개선의 여지없이 ‘나쁘며’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하는 것이라고 지각한다. 상대는 선하고 가치있고 우월하며(심지어 웅대하고 전지전능하며), 나는 나쁘고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믿는다. 자기봉사적 편향이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쁜 나(bad me)’ 편집증은 자신의 나쁜 주관적 자기가 타인에 의해 실제로 만들어지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타인에 의해 나쁜 주관적 자기가 인식되기 전에는 지속적으로 낮은 자존감, 열등감과 무력감, 높은 특질 불안(항상 존재하는 인식의 위험 때문), 근본적 악함(badness)에 대한 죄책감, 부적절감 등을 경험한다. 타인에게 인식되고 난 후에는, 높은 공적 자의식, 강렬한 수치심, 도피하고 싶은 소망, 무력감과 무망감이 주된 특징인 우울을 경험한다. 일단 인식되고 나면 자기 자신은 나쁜 대상으로 변형되고, 타인에 의해 구성되고 통제되는 것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운명에 대한 기대는 공포를 낳고 이러한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면 소외감, 절망감, 우울감을 겪게 된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이들은 상대가 자신의 악한 자기(bad self)를 발견하고 구성하지 못하도록 타인으로부터 결점투성이인 자기를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므로 ‘나쁜 나(bad me)’ 편집증의 방어는 기본적으로 불안에 의한 회피이다. 언제라도 도망가기 위해 타인에게 늘 과민해져 있으며, 선택적 추론과 같은 다양한 인지적 편견 및 자기봉사적 귀인편향을 역으로 구사함으로써 타인의 모든 행동을 비판적 타인-자기 평가로 지각한다. 회피는 실제로 숨거나, 안전한 곳에 피난하는 형태를 띨 수 있다. 타인이 계속해서 숨겨진 악함(badness)을 찾고 처벌을 계획할 것이라는 편집증적 공상을 하게 된다. 좀 더 미묘한 형태의 회피는 Winnicott가 말한 거짓 자기(false self)로, 타인이 자기에게 바랄 것이라고 자신이 상상한 대로 자기를 제시하는 것이다.
Review 12. 망상에 대한 인지이론 및 치료
망상 개념
망상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먼저 DSM-III의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외부 현실에 대한 부정확한 추론에 근거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신념이나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굳게 유지되는 잘못된 개인적 신념으로, 그 문화권의 다른 구성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망상을 ‘잘못된 신념’ 이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옳지 않다. 첫째, 망상은 꼭 잘못되거나 틀린 것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도 배우자가 부정하다고 믿는 경우 실제로 배우자가 부정할지라도 이는 부정망상이다. 둘째, 진실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철학적 문제이다.
‘부정확한 추론’ 에 근거한다는 것도 잘못된 주장이다. 특정 실험 조건에서는 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귀인 양식, 공변에 대한 판단, 확률 추론에서의 편차를 보이는 연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결과가 확증적인 것은 아니다. 망상 형성과정에서 일반적 혹은 특정적 인지적 오류나 결함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굳게 유지된다.’ 는 부분을 보면, 망상을 확신하는 정도는 전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드라마틱하게 변화를 보일 수도 있다. 망상만 굳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가지 핵심신념이나 종교적 신념도 그만큼 굳게 유지된다. 신념을 굳게 유지한다는 것이 꼭 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특정적인 병리적 혹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DSM-III에는 망상이 ‘수정될 수 없는 것’ 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망상이 절대로 수정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수정되기 어렵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망상은 확신, 집착 정도 등 여러 차원 상에서 다양하게 변화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라는 부분은 망상 내용이 기괴하고 이상한 것임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기괴함의 정도를 어떻게 평정할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최근에는 망상이 정상적 신념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신념의 확신 정도, 신념에 집착하는 정도에서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DSM-IV에서는 정의가 덜 절대적인 용어로 바뀌어, ‘대개 잘못된 해석과 관련되며’, ‘망상과 굳은 신념을 구분하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고 확신하는 정도에 달려 있으며’, 기괴하다고 결정하는 것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한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언급은 제외되었다.
ABC 모델
망상에 대한 인지이론은 Beck의 이론과 Ellis의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EBT)를 모두 고려하며, 주된 틀을 Ellis의 ABC 모델로 한다. A는 활성화 선행사건(activating event), B는 A가 갖는 개인적 의미 즉 A에 대한 해석과 신념(belief), C는 B에서 파생되는 정서적 행동적 결과(consequence)를 의미한다. ABC 모델에는 다음과 같은 5가지 기본원칙이 있다.
첫째, 모든 임상적 심리적 문제는 C이다. 인지 치료는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심한 정서적 고통과 자기학대나 회피와 같은 부적응적 행동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며, B를 변화시키는 것은 C를 해결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둘째, 문제는 A가 아니라 B에서 생긴다. 셋째, B와 C 간에는 예측 가능한 관련성이 있다. 위협에 대한 신념, 즉 심리적 혹은 신체적 위험에 대한 신념은 불안정서 및 회피, 도피 행동과 관련되며 주로 미래에 대한 것이다. 상실에 대한 신념, 즉 지위, 자기가치, 자유, 중요한 타인을 상실할 것에 대한 신념은 우울 정서 및 위축 행동과 관련되며 주로 과거에 대한 것이다. 권리와 침해와 부정적 자기-타인 평가에 대한 신념은 분노와 공격성에 관련되며 과거, 현재, 미래 모두와 관련될 수 있다. 넷째, 핵심 신념으로서의 B, 즉 역기능적 가정과 대인평가는 초기 경험에서 비롯된다. 왜 어떤 사람만 부정적 자기평가경향이라는 취약성을 갖는지에 대해 완전하게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유전적으로 불안, 편집증, 우울 등에 대한 취약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대인관계 초기 경험이 이런 경향을 유지, 증폭, 혹은 감소시킬 수 있다. 다섯째, 신념을 약화시키면 관련된 고통과 장애도 약화된다.
참고로 B의 신념을 심상, 추론, 평가, 역기능적 가정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추론은 ‘그는 나를 싫어한다.’, ‘나는 실패할 것이다.’ 등과 같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가설을 말한다. 추론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Beck의 표현을 따르자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매우 축약되고 거친 형태의 언어로 일어나는 사고이다.
평가란 ‘나는 A가 B보다 좋다’, ‘그 사람은 나쁜 일을 했다’ 등과 같이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 혹은 선호를 말한다. 극단적인 부정적 정서는 여러 종류의 부정적 ‘평가’ 와 기능적으로 관련된다. 특히 이 가운데 대인 평가(person evaluation)가 매우 중요한데, 대인 평가는 그 사람 ‘전체’ 에 대한 안정적이고(stable) 전반적이고(global) 절대적인(total) 평가로 정의되며, 타인이 자기에게(타인-자기), 자기가 자기에게(자기-자기), 자기가 타인에게(자기-타인) 하는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역기능적 가정은 외현적 행동을 하게 하는 근본적인 내적 규칙 혹은 원칙으로, 아동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의식수준에 올라와 있지는 않으나 그 사람의 대인관계 행동을 보고 추리해 낼 수 있다.
추론은 평가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서적 고통을 겪을 때에는 언제나 추론과 평가가 모두 관련된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완전한 실패자라고 ‘평가’ 하는 취약성을 가진 사람은 ‘지금 하는 이 일이 잘못될 것’ 이라고 습관적으로 추론하게 될 것이다.
망상에 대한 ABC 모델
ABC 모델에서 망상은 B로, 사건 A에 대한 망상적 해석이며 C의 고통이나 장애와 관련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듯 망상이 그 사건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해석에 불과함을 내담자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치료자는 그 망상이 정서적 행동적 문제를 유발하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망상은 항상 외현적 추론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안에는 암묵적으로 평가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사고 사슬을 통해 밝혀내야 한다. 망상적 추론과 기저의 평가적 사고가 모두 파악되어야 C의 정서적 행동적 결과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망상적 해석과 같은 추론은 선행사건 A와 지속적인 신념(평가와 역기능적 가정) 모두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특히 어느 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망상이 있다. 외적 사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망상에는 수동성 망상, 관계망상(reference), 사고주입 망상(thought insertion), 사고전파(broadcast) 망상 등이 있으며, 이는 망상이 비정상적 지각 경험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라는 Maher의 주장과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대망상, 피해망상 등은 심리적 동기, 특히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동기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증 내담자를 치료에 참여시키기
내담자가 치료과정에 참여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치료자가 내담자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정신증 내담자의 경험이 이상하고 때로 기괴한 것이므로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내담자의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내담자의 인간적 반응이며, 이를 공감해 주면 된다.
둘째, ‘망상은 고쳐지지 않는다.’, ‘정신증은 질적으로 다르다’ 등의 치료자의 신념이 치료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슈퍼비전을 통해서 이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치료자가 처벌적이고 통제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것이다, 나의 신념, 관점, 경험을 무시하고, 이를 ‘미친 것’ 으로만 이해하려 할 것이라는 내담자의 신념이 방해가 될 수 있다. 치료자는 이를 직접적으로 논의하거나 반박하지 말고,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점진적이고 은근한 방식으로 내담자를 안심시켜야 한다. 치료자가 내담자의 고통과 장애를 경감시킴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내담자가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넷째, 지나친 예민성과 피해의식으로 인해 치료적 관계도 내담자에게 너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심할 때에는 먼저 비공식적인 접촉을 갖거나, 회기를 짧게 자주 가지는 등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 회기를 구조화하는 것이 좋으며 침묵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고 내담자에게 망상에 대해 털어놓으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내담자가 치료를 받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 때 망상을 사실이 아니라 ‘신념’ 으로 생각해 보도록 격려하며, 그 목적이 내담자 자신에게 힘을 주고 그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만약 망상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무런 대책이 없지만, 내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내 신념이 맞는지 틀리는지 한 번 확인해 보고 나의 감정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얻는 셈이 됨을 깨닫게 한다. 우울이나 불안장애 등을 치료할 때는 이 과정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하지만, 망상의 경우는 이 작업을 매우 천천히 진행함으로써 내담자에게 통찰과 동기를 심어줄 뿐 아니라 치료적 과정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망상의 ABC 평가
망상을 평가할 때에는 6회기 정도를 평가에만 중점을 두며, 현재 기능수준과 발달력까지 모두 평가하는 것이 향후 인지치료를 해나가는 데 좋다. 7회기 이전에는 인지치료적 개입을 가급적 하지 않는다.
1. 평가의 시작
처음 한두 회기 동안에는 내담자가 하는 얘기를 충분히 들어 주고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내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망상에 대한 얘기를 처음부터 나누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에 대한 느낌이 어떤지, 이와 관련된 생각이나 충동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치료에 의뢰된 것인지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 좋다.
이제까지 자신이 치료받으러 올 때 어떤 느낌인지에 관심을 가져 주는 치료자를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치료자나 심리치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감소될 수 있다. 내담자가 치료받으러 오겠다고 동의한 경우 무슨 문제를 변화시키고 싶은지 바로 탐색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사람에 의해 의뢰되었고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치료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경우, 이는 정서적 행동적 고통이 유의미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의 생각이 망상이고 정신분열증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니 약이나 먹으라는 말을 또 다시 듣고 싶지 않다’ 는 심정을 반영할 수도 있다. 이 때 치료자가 도우려는 것은 정서적 행동적 문제임을 다시금 전달해야 한다. 정서적 행동적 고통과 장애가 문제라고 개념화하면 치료적 동맹이 더욱 촉진되고 내담자와의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탐색을 해도 내담자에게 유의미한 C가 없다면 인지치료보다는 다른 치료적 개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지치료는 C를 변화시키기 위한 협동적 과정이므로 C가 없다면 치료과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 문제 명료화: ABC 접근
가장 먼저 A나 C를 탐색하되 A와 C 사이를 융통성 있게 오가면서 각각을 명료화해 나간다. B는 가장 나중에 탐색하는데, 망상 속에 들어 있는 평가적 신념을 탐색하기 전에 먼저 추론의 형태를 띠는 망상적 사고를 확실히 파악하도록 한다. 망상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ABC 분석을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반복해야 한다. ABC 평가기록지를 내담자와 함께 채워 보고, 다음 일주일 동안 내담자가 정서적으로 힘든 사건에 대해 ABC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3. 활성화 사건을 평가하기: A
A를 평가함에 있어서 그 사건이 애착 이슈와 관련된 것인지 자율성 이슈와 관련된 것인지를 염두에 두면 좋다. 망상적 사고와 관련되는 정서적 행동적 고통을 촉발시킨 사건의 유형이 무엇인지를 알면 내담자의 심리적 취약성이 무엇인지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반드시 정서적 고통과 관련된 ‘구체적’ 인 사건에 초점을 두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그 사건이 외적 사건일 수도 있지만 공황 장애에서처럼 내적 사건일 수도 있다. 내담자가 망상을 겪는 상황뿐 아니라 망상을 겪지 않는 상황은 언제인지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A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망상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건 A, 예를 들어 환청이나 관계망상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이다.
4. 감정과 행동을 평가하기: C
질문지나 면담을 통해 내담자가 느끼는 감정의 유형과 강도를 평가하되,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편 망상과 관련하여 신뢰롭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행동을 찾기 어렵고, 설령 있다 해도 행동 빈도의 증감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분명치 않아 행동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폭력적인 행동을 했을 때 이는 망상 때문일 수도 있지만 화가 나고 공격성이 높아져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런 의미 있는 행동이 명백히 있지만(예를 들어 가해자를 공격하기) 빈도가 매우 낮을 때가 있다. 이때는 내담자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 정도를 평가하게 하거나, 그런 공격을 하기 전에 일어나는 행동들을 조사해 볼 수도 있다.
또 행동 빈도의 증감에 대해 해석이 달라질 수가 있다. 자기 망상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회의를 하게 되면 이를 검증하기 위해 망상적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다. 즉 망상적 행동이 증가하는 것은 그 의미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회피행동과 같이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 문제가 되는 경우를 파악하려면, 내담자에게 만약 그 신념을 버린다면 당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겠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좋다.
5. 신념을 평가하기: B, 망상
망상을 평가하기에 앞서 먼저 AC가 아니라 ABC임을 이해하도록 쉬운 예를 들어 설명을 미리 해준 후, 내담자의 A에 대해 C가 나오려면 B가 무엇이겠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망상에 대해 확신하는 정도, 집착하는 정도, 망상의 형성과정, 망상에 대한 증거와 반증, 망상이 변화되기 쉬운 정도(조절-accommodation, 가설적 모순에 대한 반응) 등 여러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
(1) 망상에 대한 확신
주로 확신과 집착정도를 기본적으로 평가하되 100% 척도로 주관적으로 평정하게 하면 충분하다. 내담자가 치료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믿는가 여부를 직접 묻고, 믿어주지 않는다면 치료적 대화를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우길 수가 있다. 이 때 절대 내담자의 의견에 동의해 주어서는 안 되며, 직면시키는 방법으로 망상에 도전해서도 안 된다. 먼저 자신이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말하고 협력적 경험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만 해도 내담자는 누군가가 자기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준다는 점에서 만족해하며 꼭 동의해 주지 않아도 그 단계에서는 괜찮다고 느낄 수 있다.
(2) 망상에 대한 집착정도
어느 정도 망상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해 내담자가 회상을 해야 하므로 측정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매일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 유익하다. 측정은 내담자 스스로 서열척도 상에서 평정하도록 하는데, 주관적으로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평정하는 것보다는 각 척도를 조작적으로 정의해 주는 것, 즉 예를 들어 0은 전혀, 1은 일주일에 서너 번, 2는 매일, 3은 하루에도 여러 번 정도로 망상에 몰두했다 등으로 정해 주는 것이 더 좋다.
한편 망상적 사고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시간의 증감에 대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치료적 작업 중에는 자기 신념에 대해 생각하고 검증해 보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집착 정도가 늘어날 수도 있다. 또 몰두 시간이 줄어든 것은 망상 내용을 완전히 믿고 수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집착의 개념 자체를 치료적 과정 때문에 생기는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3) 망상의 형성 과정
종교적 혹은 정치적 신념과 마찬가지로 망상이 형성되는 데 기여한 모든 요인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 많기도 하고 그 요인 모두를 인식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할 수 있으며, 기억한다 해도 그것이 객관적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담자에게 망상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기억해 보도록 질문하는 이유는 망상형성의 단계와 과정, 형성과정에 담긴 대인관계적 주제, 즉 취약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4) 망상의 증거
내담자에게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 가운데 그 망상을 지지하는 증거와 반대되는 증거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일단 망상이 형성되면 과거 경험을 재해석하게 될 수 있으므로 망상형성 전의 사건들도 함께 물어본다.
Garety는 조절(accommodation) 개념을 도입하여, 일단 치료가 시작된 후에 내담자가 망상을 지지하는 증거와 반대되는 증거를 인식하는 정도를 평가하고자 하였다. 매 회기가 시작할 때 지난 한주일 동안 망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시킬 만한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물어보고, 반대되는 증거를 인식하고 관찰한 정도, 그것이 망상에 영향을 미친 정도를 평가한다.
(5) 가설적 모순에 대한 반응(RTHC: Reaction to Hypothesized Contradiction)
망상에 모순되는 사건을 한번 가설적으로 생각해 보고, 만약 이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신념에 변화가 생길 것 같은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먼저 내담자에게 당신의 신념을 바꾸거나 의심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에 근거해서 모순적 사건을 생각해 낸다. 예를 들어 예전에 만난 여인이 내 마음을 읽어 내고 있다는 망상을 가진 경우, 그 여인을 실제로 만나서 그 여인이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고 말하면 신념이 바뀌겠는지를 물을 수 있다.
6. 핵심적 평가 신념을 평가하기: B
망상과 관련된 평가적 신념이나 대인관계적 주제를 명료화하여 망상의 방어적 기능이 무엇인지 밝혀 줄 수 있다. 망상의 기능은 자기를 위협에서 보호하는 것, 특히 부정적 자기평가, 이와 관련된 절망과 죄책감, 수치심을 재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망상적 추론에서 평가적 사고를 끌어내는 방법은 ‘일단 당신의 생각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고 한 다음, 사고사슬법을 통해 먼저 타인-자기평가를 파악하고 여기에서 자기-자기평가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는 부정적 자기평가사고를 인식하지 않으려 하는 방어적 경향을 극복하는 유용한 방법이며, 두려움뿐 아니라 분노나 불안, 죄책감이 동반되는 피해망상에 특히 효과적이다.
물론 ‘가정’이지만 잠시라도 망상이 옳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치료자가 망상에 동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또, 내담자가 추론에서 평가를 탐색해 들어갈 때 말을 조심해서 하지 않으면 오해를 살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 부모님이 외계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라고 물으면 치료자가 무신경하고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과대망상이나 신체망상의 경우는 방법을 반대로 하여, ‘망상이 만약에 틀린 생각이라면’ 어떨 것 같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여 평가적 사고를 파악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내담자의 경우, 이러한 생각은 그녀가 완전히 선하고 가치로운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임을 명료화해 주고 만약 이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내담자를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지 질문해 봄으로써 평가적 사고를 이끌어 낼 수 있다.
ABC에 기반한 CBT
충분히 내담자의 얘기를 들어 준 후에는 평가를 하고 치료적 개입을 시작하기까지 아래와 같은 7단계를 거친다.
첫째, 내담자에게 먼저 시작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묻는다. 둘째, 선행사건(A)과 정서적 문제(C)를 각각 평가한다. 셋째, 그 C가 제일 힘들고 도움 받고 싶은 부분인지 확인한다. 넷째, 사고사슬법을 통해 신념(심상, 추론, 평가)을 평가한다. 다섯째, B-C 연결고리를 보여 주고, 이를 토대로 역기능적 신념과 심리적 취약성 요인이 무엇인지, 그 기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개념화를 함께 한다. 여섯째, ABC를 이해했으면 이제 치료 초점이 A가 아니라 B를 변화시키는 것임을 인식했는지 확인한다. 일곱째, 신념을 변화시켜 보겠다고 내담자가 동의하면 이제부터 논쟁과 경험적 검증을 통해 신념을 수정하는 인지적 개입과정을 시작한다. 가능한 직접적인 충고는 적게 하고 내담자로부터 제안과 해결책을 끌어내어 내담자 스스로 문제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사용한다.
망상에 대한 CBT
1. 도입
전에는 망상이 원래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인지치료의 치료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 어렵기는 하지만 망상이 수정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망상이란 내담자가 자기에 대한 위협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이므로 이를 약화시키거나 없애면 내담자가 그런 위협에 노출되는 셈이 되며, 때문에 망상을 수정하거나 깨뜨리는 것은 오히려 내담자에게 해롭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경험적 연구결과, 망상에 대한 신념 정도가 약해지는 것은 정서적 행동적 고통의 감소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실제로 이런 고통이 증가되는 경우도 소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고통이 심해지는 것이 망상이 약화되어서라고 인과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의 치료를 하더라도 내담자는 일시적으로 나빠질 수 있으며, 이 때 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이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다.
2. 망상에 도전하는 과정
망상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하나의 추론이므로, 망상에 도전한다는 것은 증거를 살펴보고, 대안적 해석을 생각해 내고, 위험 무릅쓰기 등을 통해 망상적 신념에 대해 경험적으로 검증을 해 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또, 치료자는 망상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평가적 신념, 특히 자기와 타인에 대한 평가를 파악하고 이를 약화시켜야 한다.
망상을 약화시키는 방법에는 언어적 논의(언어적 도전)와 경험적 검증(현실 검증) 두 가지가 있으며, 언어적 논의는 다시 망상적(추론) 사고와 평가적 사고에 대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치료 실제에서는 이런 방법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융통성 있게 실시한다.
인지치료의 목표는 내담자가 망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는 것이다. 첫째, 망상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신념 B라는 인식이다. 둘째, 망상은 자기가 겪은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반응이며 이를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셋째, 망상이 정서적 행동적 고통을 준다는 사실이다. 즉 C는 B와 관련되며 A의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넷째, 망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더 합리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대안적 설명을 채택하는 것이다.
3. 망상을 약화시키는 절차
(1) 논쟁하기(언어적 도전)
논쟁하기는 다음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망상에 대한 증거를 검토하고 도전해 본다. 둘째, 망상체계의 내적 일치도와 ‘그럴 법한 정도’에 대해 도전해 본다. 셋째, 망상을 특정한 경험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반응이자 이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개념화할 수 있도록 하고, 좀 더 의미있는 대안적 해석을 도출한다. 넷째, 망상과 대안적 해석을 여러 가지 정보들을 가지고 각각 평가한다.
① 증거에 도전하기
망상이나 굳은 신념을 수정하려고 하면 심리적 반발(reactance)이 생길 위험이 있으므로 가장 덜 중요한 신념부터, 그리고 신념 자체보다는 그 신념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치료적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Watts, Powell, & Austin, 1973).
내담자가 말한 각각의 증거를 어떻게 ‘망상적으로’ 해석했는지를 들어 보고, 좀 더 합리적이고 ‘그럴 법한’ 다른 해석은 없는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치료자가 대안적 해석을 제공하지 말고 내담자가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것이 좋다.
대안적 해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 다음, 망상적 해석과 대안적 해석 각각에 대해 확신하는 정도를 평정해 본다. 이 때 내담자가 아직도 망상적 해석이 더 옳다고 확신하고 있더라도 다음 증거항목으로 그냥 넘어간다. 내담자가 생각하는 것을 한 번에 반드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며, 설령 변화시키지 못했더라도 내담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신선한 통찰’ 을 제공해 주는 효과가 있다.
내담자가 내놓는 증거가 너무 많아 모두 검토하고 도전해 보기 어렵거나 오래 걸릴 수 있다. 이때는 각 증거를 주제 등에 따라 분류하여 유목별로 도전해 보는 것이 좋다.
② 망상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기
먼저 내담자 신념 체계 내에 비일관적이거나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으면 이를 지적해 준다. 물론 어떤 신념 체계라도 모순이나 비일관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지적을 통해 내담자가 자신의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 망상이 ‘특정한 경험에 대한 반응이며 이를 이해하려는 시도’ 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예전의 그 ‘특정한 경험’ 이 얼마나 두렵고 혼란스러웠었는지를 상기해 볼 수 있다. 이때는 주로 ‘내가 미쳐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두려움, ‘누군가 나에게 장난을 치거나 괴롭히려 하는가.’와 같은 두려움과 의심 두 가지로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망상 형성 직전에 있었던 두려움을 상기시켜 보면, 자신이 그런 경험이 왜 일어나는지를 얼마나 절박하게 알아내려고 했었는지도 기억할 수 있다. 이 외에 망상의 또 다른 심리적 기능에 대해 얘기해 볼 수도 있다. 망상과 관련된 평가적 신념을 탐색하는 것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셋째, 내담자 자신의 관점에서 봐도 망상이 얼마나 내적 및 외적 타당도가 결여되어 있으며 본인에게 얼마나 손해를 입히는지를 보여 준다. 대안적 신념의 장점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본다.
(2) 경험적 검증
내담자의 신념이 타당한지 아닌지 여부를 보이기 위해 행동실험을 계획하고 실제로 시행해 보는 것이다. 말로만 해서는 신념이 거의 변화되지 않으며, 경험적 검증을 잘 계획해서 실행해 보는 것이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Beck은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제 치료경험을 비추어 보면, 언어적 도전을 통해서 먼저 행동실험을 계획하고 그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개념 틀을 염두에 두어야 행동실험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망상에 대해 경험적 검증을 할 때에는 망상에 대비되는 대안적 해석을 확실하게 미리 정해 두고, 망상과 대안적 해석 각각이 지지되고 또 기각되려면 행동 실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미리 내담자와 함께 정확하게 예측을 해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주장하는 경우, 엘비스의 노래를 들려주다가 중간에 끊고 이어서 불러 보라고 할 수도 있다.
Review 13. 환청에 대한 인지이론 및 치료
환청은 DSM-IV에서 ‘외부 자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지각으로 느껴지는 감각 경험’ 으로 정의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환청의 경험 빈도는 60%까지 이르는 높은 비율로 추정되고 있으므로(Slade & Bentall, 1988),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증상으로 환청을 지적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본 리뷰에서는 현재 인지적인 관점에서 환청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어떠한 치료적 개입을 발전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환청의 인지 모델
1. 정상적인 정보처리 과정의 편향 · 외부 귀인의 오류
초기의 연구에서는 환청에 발성과 관련된 근육 조직이나 입술 등의 움직임(subvo-calization)이 동반된다고 제안하였다(Gould, 1950). 이러한 발성 조직의 미동은 정상적인 사고과정이나 혼잣말 등에도 동반되는 특징이다(Mcguigan, 1978). 어떤 연구들은 이러한 발성조직의 미동을 억제한 결과 환청의 발생도 억제되었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Margo, Hemsley, & Slade, 1981). 이러한 결과에서 초기의 이론가들은 내적인 인지적 사건이 외부의 대상으로 잘못 귀인 되었을 때 환청이 발생한다는 의견을 제안하였다(Bentall, 1990).
어떤 이론가들은 환청(=외부로 귀인된 생각)이 정상적인 기능의 편향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하였다. Bentall(1990)은 내부 사건의 원인을 외부의 근원에서 찾으려는 경향은 어떠한 일차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내부의 사건을 감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나 편향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Bentall은 이러한 편향이 하향과정(top-down process: 환자가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에 의한 영향을 받고 강화과정(예: 불안감소)이 내적으로 발생한 사건을 외부 사건으로 잘못 귀인하는 과정을 촉진시킨다고 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왜 환청의 경험에 문화적인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은 실제 주변 세계나 문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 Morrison, Haddock과 Tarrier(1995)는 침투적 사고와 모순되는 상위인지가 존재할 때,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제거하기 위하여 침투적 사고를 외부로 귀인하여 환청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왜 침투적 사고와 환청의 내용이나 형태에 많은 유사성이 존재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요컨대, 경험적인 연구결과들은 환청이 인지적 혹은 지각적인 오류와 편향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지지한다. Morrison과 Haddock(1997)은 환청을 경험하는 피험자들은 단어연상 검사에서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귀인하는 오류를 나타냈다고 보고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환청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재인하는 과제에서 수행이 저조하고, 외부 귀인의 오류를 빈번하게 나타낸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환청이 정상적인 정보처리기능의 오류로부터 발생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2. 환청 경험의 해석
현재는 많은 연구자들이 환청에 대한 해석이 환청을 지속시키고 이와 관련된 불편감을 결정짓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가주한다. Morrison(1998)은 환청이 정상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에 대한 오해석이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불편감과 장애를 유발한다고 하였다. 또한 안전행동(safety-seeking behavior)이나 과경계성(hypervigilance)이 환청의 오류적인 해석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과경계성이 환청의 지속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으나, Morrison과 Haddock은 환청을 경험하는 환자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나 자기초점(self-focus)을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환청에 대한 인지모델의 제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환청은 외부로 잘못 귀인된 생가이다. 둘째, 환청에 대한 오류적인 해석의 결과로 불편감을 겪게 된다. 셋째, 자기초점 주의(self-focused attention)의 증가는 환청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실제 임상장면에서 환자들의 환청을 치료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마치 자동적 사고의 내용을 다루듯이 환청의 내용에 도전할 수 있고, 가상의 목소리에 대한 역기능적 오해석을 다루고, 주의의 초점과 경직성을 변화시키는 것 등이 인지적 관점에서 상정할 수 있는 치료적 목표이다.
환청에 대한 인지치료의 일반적 원칙과 구조
좋은 치료적 관계에 기반하고, 문제 지향적, 단기치료적, 구조화되어 있는 등의 인지치료의 일반적인 특성은 환청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인지치료는 귀납적인 방법과 협력적 경험주의를 통해 이루어지며, 종종 교육적인 색채를 띤다.
전반적인 치료의 구조는 ‘평가, 문제목록의 작성과 목표 설정, 치료에 대한 교육, 개별적인 사례 설계, 증상에 초점을 맞춘 개입, 인지도식에 대한 개입, 재발 방지’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각 회기 역시 마찬가지로 과제를 검토하고, 지난 회기에 대한 반응을 듣고, 회기의 주제를 함께 설정하고, 과제를 부과하는 등의 기본적인 구조가 적용된다.
환청 환자들의 치료 회기는 대체로 다른 환자 집단에 비하여 진행속도가 느리고, 회기 시간도 25분에서 45분 사이이다. 어떤 환자들은 좀 더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지만, 인지적 결함과 약물로 인한 기능 저하를 나타내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는 보다 짧고 잦은 회기를 갖고, 매 회기를 글로 요약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초반의 몇 회기는 치료적 관계를 맺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치료의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희망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환청의 경우, 치료 초기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목표로 목소리의 빈도, 이로 인한 불편감, 목소리의 크기와 강도, 목소리에 대한 신념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다루어질 수 있다.
치료적 개입은 개개의 치료적 기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례에 대한 이해(formula-tion)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사례이해는 환자와의 협력을 통해 인지모델에 기반해 이루어져야 하며, 물론 환자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 자료도 포함하여야 한다. 사례 이해는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최근의 사건을 일례로 들어 이러한 사건이 어떻게 증상을 지속시키고 악순환을 형성하는지 인지, 정서, 행동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사례 이해가 이루어지면, 언어적 혹은 행동적 방법을 통해 외부 귀인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과정이 후속되고, 이를 통해 환자의 경험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해석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노력이 시도된다. 한 가지 유의점은 사례 이해를 통한 해석은 환청 증상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한 해석들의 하나여야 하고, 환자가 지닌 해석 역시 아직까지는 동등한 대안적인 해석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지녀온 독특한 신념이 경험주의에 입각한 방식에 의해 기각되기 전에, 치료자의 논리로 설득하거나 교육하는 방식으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환청의 해석에 대한 개입
1. 대안적 해석의 모색
환청 경험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대안적 해석을 모색하는 과정은 환자에게 자신이 지닌 환청에 대한 설명이 하나의 가설적인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환자들이 지닌 환청에 대한 해석은 망상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만일 대안적인 해석을 다양하게 찾아내기 어려워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효과적이다.
1. 그 목소리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2. 처음에는 목소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었나?
3.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대해 뭐라고 하는가?
4. 당신의 친구가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고 할 때, 당신은 뭐라고 말해 줄 수 있겠는가?
환청에 대한 대안적 설명은 각 환자의 개별적인 경험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대안적 해석은 그 믿음의 강도를 0~100%의 주관적 척도 상에서 주기적으로 평가하며 변화의 추이를 관찰해야 한다. 찾아낸 각각의 대안적 설명은 반드시 사실과의 관련성을 검토해야 하고, 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근거들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2. 심리적 과정에 대한 교육
정상적인 인지과정에 대한 교육과 정보제공은 대안적 해석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즉, 일상적인 심리적 과정의 원리나 강한 스트레스 후에 정신병적 증상이 발생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환자의 불편감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환청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생성해 내는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일반인 누구나 잠재적으로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심리적 현상의 하나이며, 환청을 정상 경험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려는 오랜 전통도 있었다(Strauss, 1969). 환청은 약물이나 알코올 금단 현상 등에서 유발된 기질적인 상태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어떤 연구자는 성적인 학대와 환청 간의 관련성을 보고하기도 했다. 한 연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노인들의 82%가 환청을 겪는다는 결과를 보고하여, 환청이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임을 시사하기도 했다(Grimby, 1993). 또한 수면박탈, 구속, 감금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환청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이 보고되었다. 여러 연구에서 또한 암시(suggestion)와 모호한 자극을 사용하여 환청 경험을 실험적으로 유도해 낼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Jakes & Hemsley, 1986). 다른 연구에서는 정신분열증의 정신병리와 무관하게 37~39%의 대학생들이 환청 경험을 겪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Posey & Losch, 1983).
이러한 결과를 종합하여, Morrison(1998)은 환청이 정상적인 현상임을 의미한다고 제안하였다. 환자들과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악마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미쳤다. 이런 성적인 생각 때문에 나는 미쳤거나 사악한 것이다’ 와 같은 해로운 생각과 믿음을 가진 환자들에게 환청이 정상적인 경험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환청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이러한 침투적인 생각과 충동이나 이미지에 대한 해석 역시 치료적 개입의 표적이 된다. 여기에는 자기탓하기(personalization), 선택적 추론(selective abstraction), 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reasoning) 등의 다양한 인지적 오류가 포함된다.
정상적인 과정으로서의 환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환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써 주는 방법, 학술지를 이용하는 방법, 또는 환자가 친구나 친척과 같은 사람들에게 직접 조사해 보도록 격려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이러한 노력은 환청의 지속과 악화에 기여하는 상위인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한다.
3. 해석의 근거 검토
환청에 대해서 가능한 대안적 해석의 목록이 작성되면 각각에 대한 지지근거와 반대근거를 서로 비교한다. 환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반증 근거를 인식시키고, 환청에 대한 해석의 기초로 삼았던 증거에 대해서 정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환청에 대한 어떤 해석과 상반되는 사건과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과거에 있었던 해석의 근거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이것이 재해석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 과정의 핵심적인 목표는 앞서 작성한 대안적 해석의 목록 각각에 대하여 지지 근거와 반증 근거를 검토하여 무엇이 가장 타당하고 현실적인 해석인지 밝혀내는 것이다.
대안적 해석을 찾아내는 과정은 인지치료의 기본 철학처럼 치료자와 협력 하에 경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환청이 들리는 방법(텔레파시, 영혼, 전기장치)과 과정에 대해 환자가 가진 신념의 오류와 모순을 다루어야 한다. 종종 환자들은 자신의 모호한 신체감각이나 느낌과 감정을 환청의 해석에 대한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경미한 편두통이 텔레파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믿는 경우이다. 이 역시 대안적 해석과 근거 수집을 통해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4. 득과 실에 대한 비교
환자들이 환청에 대한 믿음을 고수할 때 뒤따르는 득과 실이 무엇인지 검토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 과정은 환자를 치료에 몰입시키고, 변화에 대한 동기를 고취하고 특정한 증상의 기능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과대망상적 환청이 자존감과 자기중요감을 높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와 관심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환청의 해석과 근거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증상에서 발생하는 부차적인 이득에 대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 환자가 자신의 환청과 망상적인 생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얼마나 정서적으로 강한 집착을 나타내는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장점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보다 건강한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종종 환청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보고하곤 한다. 또 환자들은 환청의 내용이 호의적일 때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한 연구에서는 정신과 입원환자들의 50% 이상이 환청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하였는데, 그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환청은 긴장을 풀어 주고 위안이 되고 친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는 것이었다(Miller, O’ Connor, & DiPasquale, 1993). Morrison, Wells와 Nothard(2000)는 환청에 대하여 부정적인 신념뿐 아니라 긍정적인 믿음이 생기는 것은 환청이 정상적인 경험에서 병리적인 성질의 것으로 악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였다. 또한 환청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은 환청을 듣게 할 가능성이 높은 행동을 하도록 하여 환청을 지속시키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들은 환청을 듣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환청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은 치료와 변화에 대하여 양면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어 치료에 매우 해롭다. 환청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추후에 재발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5. 행동실험
행동의 변화는 환청에 대한 신념을 반증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행동실험의 목적은 어떤 믿음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오류적인 신념을 반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데 있다. 행동실험의 절차는 ① 예언을 하고, ② 예언을 지지하거나 상반되는 근거를 검토하고, ③ 예언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험을 고안하고, ④ 실험의 결과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⑤ 보다 타당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6. 안전행동(safety behaviors)에 대한 개입
불안장애 환자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환청을 겪는 환자들 역시 환청의 해석에 내포되어 있는 재난적인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회피적인 행동에 집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악마가 자신에게 음란한 소리를 외치게 만들 것이란 두려움을 지닌 환자는 하루 종일 방안에 칩거하여 대인관계를 회피하거나,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등의 안전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안전행동은 불안감을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대처 행동이나 환청에 대한 해석이 지닌 오류와 편향을 발견하고 반증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안전행동을 중단했을 때의 결과에 대하여 예언하고, 그 실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행동실험은 매우 유익하다.
환청에 대한 해석에 개입할 때는 가능한 모든 해석을 모색하고 이를 검토해야 한다. 신이나 악마, 텔레파시, 죽은 친척, 외계인과 같은 특이한 원인뿐 아니라, 스트레스, 학대, 약물, 자신의 생각과 같은 보다 일반적인 원인, 또한 종교적이거나 생화학적인 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다양한 환청의 원인이 인지적 개입 과정 중에 다루어져야 한다. 또한 환청에 대한 각 설명은 증거 수집을 통해 그 타당성이 체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감찰을 위한 과제와 행동 실험 등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환청의 내용에 대한 개입
환청의 내용은 환자들에게 목소리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하나의 근거로 채택되곤 한다(‘그건 경찰임에 틀림없어. 나에 대해서 또 주변 일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어떤 목소리의 내용은 환자에게 ‘너의 의지에 상반되는 행동을 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환청과 관련된 믿음의 내용을 직접 다루는 것은 환청의 강력한 힘이나 지배력 혹은 통제력에 대한 왜곡된 신념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환자들은 자신의 환청의 기원에 대해 보다 정상적이고 덜 괴로운 내용의 믿음을 지니고 있을 수 있고, 혹은 치료 과정을 통해 자신의 환청을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에도 환청의 내용이 여전히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며, 환청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는 것 역시 상당히 불편한 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치료를 통해 환청은 본래 자신의 생각이 외부로 잘못 귀인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나, 여전히 ‘나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생각이 있으면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환청이 발생할 경우 그 부정적인 내용에 의해 상당한 괴로움을 겪게 될 소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환청의 내용에 도전하는 치료과정은 일단 환청에 대한 대안적 해석이 지닌 타당성이 평가된 이후에 시도된다. 치료자나 환자 모두에게 치료 초반에 환청의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를 다루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환자가 환청이 전능하고 강력한 힘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환청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실제로 환자는 환청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추론할 때 환청의 내용을 그 근거로 삼는다. 따라서 환청의 내용에 도전하는 것은 환청이 말하는 것이 100% 사실이라는 왜곡된 신념을 수정하고, 목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게 된다.
더욱이 환청의 내용은 모욕적이고 경멸적이거나 위협적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이론에서 환청이 내면의 목소리이고 외부로 잘못 귀인된 내면의 생각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환청의 내용에 대한 개입은 보통 인지치료에 사용되는 재귀인(reattribution) 방법을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치료자와 환자는 서로 협력하여 환청의 정확성을 검토하고, 환청이 말하는 내용의 타당성과 근거를 체계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이다’라는 환청을 듣는 남자 환자가 있었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이 환자는 환청의 원인이 외부의 어떤 힘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생성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환청의 내용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치료 과정은 환자가 환청에 대해 지니고 있는 근거를 검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우선, 환청의 내용을 지지하는 근거를 수집하였고(ex.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차 태어날 사람이나 신이다. 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가요에서 내가 만인의 어머니라고 노래한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환청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의 근거를 찾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1. 당신이 만인의 어머니라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놓친 것은 없을까요?
2.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믿는다면, 당신이 지적하고 싶은 사항이나 묻고 싶은 질문은
없나요?
3.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죠?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의미하는 다른 해석은 없을까요?
4.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거 몇 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어야 했나요?
5. 과거 몇 년 동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6. 환청의 목소리를 설명하는 보다 나은 해석은 없을까요?
이러한 과정을 환자가 연습할 수 있도록, 생각을 기록하여 환청의 내용에 도전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자동적 사고 기록 일지를 수정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각각의 칼럼으로 포함된다.
1. 목소리가 들렸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2. 이 목소리가 당신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혹은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10점 척도로 평정해보자.
3. 목소리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4. 목소리가 말하는 바를 지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5. 목소리의 내용을 생각해 보자. 이것이 100%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목소리의 내용과 일 치하지 않는 사실이나 근거는 없는가? 주변의 친구나 가족, 혹은 치료자가 환청의 내용에 부합 하지 않는 근거로 지적할 만한 것이 없을까? 환청의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는 사실 중에 간과한 것은 없는가? 이를 모두 적어 보자.
6. 지금까지 생각한 것을 기초로 볼 때, 환청의 내용이 얼마나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사실 이 아니라면, 보다 정확한 진술은 어떤 것일까?
7. 이제 얼마나 불안하거나 고통스러운지 10점 척도로 다시 평가해 보자. 불안이 감소하였는가?
1. 도식에 대한 개입을 통해 환청의 내용을 다루기
어떤 환자들에게는 환청의 내용이 기태적인 것이 아니며, 자신의 핵심 신념을 잘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환청은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나 침투적 사고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핵심 신념은 심층적 수준의 경직되고 만성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 인지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핵심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대안적인 정보를 무시하는 편향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인지적 도식에 대한 개입을 통해 환청의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면 자기에 대한 인지적 도식과 관련된 정보처리 과정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여자 환자 A는 옆집 빨랫줄에서 드레스를 훔쳤던 것으로 인해, 경찰이 인공위성을 통해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의 행동을 조종할 것이라는 내용의 피해망상을 갖게 되었다. A가 듣는 환청은 ‘너는 뚱뚱하고, 게으르고, 멍청하고, 못됐다’ 는 것이었다. 환청의 내용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졌으나, A는 좀처럼 신념과 상반되는 근거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이는 환청의 내용이 이 환자의 자기도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환자에 대해서는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도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Padesky, 1994).
(1) 증거에 대한 과거 회상(historical review of evidence)
A에게 자신이 못됐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 과거의 사건을 탐색하고, 그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재해석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A가 옆집에서 드레스를 훔쳤던 것은 이웃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어떤 괴롭힘을 당한 분풀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2) 연속선 기법(continuum methods)
A는 자신이 완전히 나쁜 사람이라고 믿었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악하다고 평가했다. 이 경우 전혀 악하지 않은 극단(0점)에서 완전히 악한 극단(100점)의 연속선을 긋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일지에 대해 평가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수정할 수 있다. 역사상 유명한 범죄자들의 위치는 어디인지, 뉴스에 보도된 범죄자들의 위치는 어디인지 평가하게 한 후에 다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평가하게 할 때, 극단적인 평가가 좀 더 적절한 위치를 찾게 된다.
(3) 조사 방법(survey methods)
연속선 기법으로 이루어진 과제를 보완하기 위해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한 행동이 어떻게 평가되는지 조사해 볼 수 있다. 이 역시 일반 인지치료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다.
(4) 긍정적 자료 기록(positive data logs)
A가 얼마나 부정적인 자기도식에 일치하는 정보만 수집하고 긍정적인 자기 정보를 무시해 왔는지를 인식하기 위해 긍정적인 자료 기록법을 도입할 수 있다. 이는 인지도식에 상반되는 새로운 믿음(나도 괜찮은 사람이야)에 부합하는 과거와 현재의 근거를 수집하고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2. 환청의 근원과 통제력에 대한 믿음
많은 환자들이 목소리의 내용을 통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믿게 된다. 종종 순환논리에 빠지는데, 예를 들면 ‘목소리가 신의 소리니까 이것은 사실임에 틀림없어. 또 목소리의 내용이 사실이므로, 이것은 신이 말하는 것이 분명해’ 와 같은 것이다. 목소리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 내용을 상세하게 검토하는 것이 유익하다. 환청의 내용과 근거를 검토한 후에 목소리의 내용에 대한 신념이 약화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이것이 다른 환청의 내용으로도 일반화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환청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시키기도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제지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환청의 내용에 대한 믿음을 수정하는 것은 환청의 내용을 따라서 행동할 것인가 하는 의지의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환청에 대한 주의 수정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고,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주의전환기법이 환청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있다(Margo et al., 1981; Nelson, Thrasher, & Barnes, 1991). 그러나 이러한 기법이 지속적인 치료효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는 주의와 관련된 정보처리 양식이 취약성 요인이므로, 이것은 치료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내부 초점 주의를 외부 초점 주의로 수정해야 하 고, 한 가지 제한된 측면에 집착하지 않도록 보다 유연한 조절이 가능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주의력 훈련 과정에서 이러한 주의 조절 과정이 고통스러울 대 채택하는 대처 행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며, 경직된 정보처리 양식을 유연하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훈련에서 조작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며 생각에 대한 주의이다.
요컨대, 환청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있어 매우 일반적이고 또한 고통스러운 증상이다. 목소리에 대한 해석과 목소리의 내용 그 자체가 이러한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이므로, 이 둘은 인지적 접근에서 주요한 치료의 표적이 된다.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치료에서 침투적 사고의 존재와 내용에 대한 오류적 평가가 치료 표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청에 대한 인지적 접근 역시 환청 자체를 정상연속선상의 경험으로 개념화하고 환청의 존재와 내용에 대한 해석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다루려고 한다. 환청에 대한 인지치료 접근은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연구와 임상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부분이다.
Review 14. 불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불안(Anxiety)과 공포(Fear)
불안은 미래 시점으로 지향된 기분 상태이다. 불안은 방어적인 동기 체계 내의 독특하고 일관적인 인지적-정서적 구조이며, 그 핵심에는 통제불능감(sense of uncon-trollability)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불안은 예기적이다. 또한 다가오는 위협적인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 상태에서는 과도한 경계와 각성상태가 되는데, 이는 어떤 부정적인 잠재적 사건을 다룰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Barlow는 결국 불안을 다가올 일에 대한 염려(anxious apprehension)라고 칭하고 다음과 같이 그 모델을 제안하였다. 다양한 단서와 문제가 불안의 유발 자극으로 기능하고, 그 결과, 주의 초점이 외부의 잠재적인 위협 상황으로부터 자기평가적인 내용으로 이행된다. 이렇게 주의 초점이 자기평가적인 양상을 띠면서 사람은 보다 강하게 각성되고 부정적인 정서가 강화된다. 이 과정은 악순환적인 고리를 형성한다. 이러한 피드백 고리가 지속되면서, 주의는 좀 더 위협이나 위험의 근원으로 협착되고, 추가적으로 주의나 해석과정의 오류를 통해 정보처리의 왜곡이 일어나고, 이전에 존재하던 과경계적인 인지도식이 참조틀로 활성화된다. 이로부터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나는데, 한 가지는 이러한 불안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한 회피행동이고 다른 한 가지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부적응적 대처로서 걱정과 만성적인 불안상태이다.
공포는 위협적인 사건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실제적인 경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포는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으로 신속하게 대처하거나 때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도피행동을 나타내지만, 어떤 경우에는 공포에 반하는 저항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즉 공포에 대한 일반적인 대처행동은 싸우거나 혹은 도망치거나(fight or flight)이다. 자발적이고 뚜렷한 단서도 없이 발생하는 공황발작은 공포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 단지 선행 사건을 밝혀낼 수 없기 때문에 공황발작은 공포 반응과 달리 허위 경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무척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불안 장애와 기분 장애의 구조
신경증(neuroticism)은 미국의 공식적인 진단체계 DSM-IV에서 배제된 명칭이나 여전히 많은 정보가를 지니고 임상 장면에서 통용되고 있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개념이다. Barlow는 신경증, 특질불안(trait anxiety), 부정적 정서(negative affect), 행동 억제(behavioral inhibition) 등은 개념적으로나 경험적인 측면에서 서로 중복되는 개념이라고 제안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신경증이나 부정적 정서가 기분장애와 불안장애의 공통 기저구조라고 했다.
우선 기분장애와 불안장애는 공존율(comorbidity)이 매우 높다. 치료 과정에서도 유사한 방법과 거의 동일한 약물이 사용된다. 또한 한 장애를 표적으로 치료하면 다른 공존하는 스펙트럼 상의 장애도 상태가 호전되곤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Barlow는 기분장애와 불안장애의 공통 기저 구조로 신경증을 상정하는 것이 유용한 접근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기분장애와 불안장애에 포함된 다양한 심리적 장애들 각각의 고유한 특징을 살리면서, 신경증 혹은 부정적 정서로 불리는 이러한 공통 구조를 어떻게 설명해 낼 것인가? Barlow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위계적인 모델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상위 요인에서는 부정적 정서가 불안과 우울의 동일한 공통 요인이고, 하위 요인에서는 각 장애의 독특성에 기여하는 특수성 요인이 존재하는 위계적 모델이다. 우울증이나 사회공포증을 포함한 불안과 우울의 모든 장애에 상위의 공통 요인으로서 부정적 정서가 놓여 있다.
Barlow의 의견에 의하면 우울과 불안은 부정적 정서와 신경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하는 유사한 구조이다. 그러나 각 장애현상의 특수성 측면에서 각각의 장애는 예기 불안을 유발하는 단서가 무엇인가에 의해 변별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예기 불안과 회피의 악순환 고리가 어떤 단서와 연합되는가에 따라 하위의 임상적인 발현이 극적으로 상이한 양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DSM-IV에서 사용되고 있는 의학적 범주모델을 탈피하여, 부정적 정서와 낮은 긍정적 정서 수준이 명료화되는 전반적 차원 모델의 틀 안에서 각 장애가 위치하고, 각 특수 장애의 핵심적 특징이 하위 요인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였다. 마치 MMPI의 프로파일 접근과 같은 좀 더 심리학적인 차원 모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고 따라서 더욱 타당한 접근일 것이다.
불안-관련 장애의 기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3중 취약성 이론(Triple vulnerability theory)
1. 일반적인 생물학적 취약성(generalized biological vulnerability)
심리적 장애에서 30~50%의 변량은 유전적인 소인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된 장애들은 공통적인 유전적 기초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며, 각 장애의 특수한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환경적 요인인 것으로 여겨진다. 높은 신경증, 낮은 외향성 점수는 불안 관련 장애의 발생에 중요한 원인이 되지만, 여기에 우울과 불안을 차별적으로 설명하는 예언적 특수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성격 변인은 우울장애와 기분장애 양자에 모두 해당하는 공통 취약성 소인(diathesis)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는 특정 불안장애를 설명하는 특정 유전자의 존재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와 같이 유전적 취약성이 3중 취약성 모델의 첫 번째 요인을 구성한다. 그러나 유전적 소인만으로 심리적장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소인과 심리적 취약성 요인 간의 상호작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심리적 장애는 비특정적인 생물학적 취약성 요인만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2. 일반적인 심리적 취약성(generalized psychological vulnerability)
3중 취약성 이론의 두 번째 요인은 일반적인 심리적 취약성이다. 이것은 통제불능성, 예측불능성을 의미한다. 보통 정상인들은 통제에 대한 착각(illusion of control)을 지니고 있다. 부정적 사건은 외부적인 원인이나 사소한 요인으로 귀인되고 혹은 자신의 상태로 귀인되더라도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Barlow는 불안장애의 핵심이 통제불능감, 예측불능감이며 이러한 심리적 취약성은 정서가가 부정적인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다. 다양한 동물 실험에서 실험적으로 신경증을 유발했을 때, 혐오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에 따라 동물들의 적응과 대처행동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성장 초기에 예측불능, 통제불능 경험을 할 경우 이후에 불안과 스트레스 발현이 강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정서 반응과 연계된 신경생물학적 과정에는 스트레스 호르몬(cortisol)의 분비 증가, 스트레스 호르몬의 조절 기제 능력 약화, 해마의 퇴화, 뇌하수체 분비계나 CRF(corticotropin releasing factor)의 민감성 감소 등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초기에 통제불능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던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생리적 반응 특성의 프로파일이기도 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통제불능과 관련된 초기의 스트레스 경험이 두뇌기능(특히 CRF 관련 뉴런과 수용기)에 영구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초기의 예측불능, 통제불능이라는 심리적 스트레스 경험이 만성적인 부정 정서나 신경증의 기저에 있는 신경생물학적 기능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최소한 동물 연구에서 볼 때, 초기의 예측불능, 통제불능 경험은 성장 후기에 HPA(Hypothalamic Pituitary Adrenocortical)반응의 증가, 만성적 우울이나 불안 정서의 증가, 각성과 경계 반응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연결된다. 셋째, 초기에 성취감(sense of mastery)을 주입시키거나 대처 반응을 터득하게 하는 것은 불안 반응에 대한 보호요인으로 기능하고 불안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결과가 동물 연구를 통해 수렴된 것이라면, 사람에게는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관련된 이론은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 이론, 양육 방식(parenting style),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 등이다. 유아에게 시기적절하게 안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부모는 통제감의 형성을 촉진시킨다. 아동은 자신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호자를 통해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감을 획득할 수 있다. 잘 보살피면서 강요하지 않고, 아동이 자신의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는 아동이 예기치 못한 주변 환경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발달시키고, 건강한 통제감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이와 유사한 결과가 우울증의 형성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다시 불안과 우울이 공통 취약성 소인에 기초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과잉통제적인 가정환경은 아동의 통제감을 저하시키고 통제의 소재를 외재화한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 정서를 증가시키고 우울, 불안 등의 임상증상을 발생시킨다. Chorpita, Brown과 Barlow(1998)는 구조방정식 모형을 적용했을 때 가장 적합도가 좋은 모델은 ‘자율성을 저해하는 가정환경’ 과 ‘차후의 부정적 정서 및 임상 증상’ 사이에 ‘개인적 통제감의 저하’를 매개요인(mediator)으로 둔 모델이라고 하였다. 이는 부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는 아동들이 통제감이 저하되었을 때 부정적인 정서와 임상적인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통제불능감은 성장초기와 아동기의 부정적인 생활사건과 우울 및 불안 증상 사이를 매개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통제불능감은 후기 아동기나 성인기로 접어들면서 매개요인이 아닌 중재요인으로 발달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심리적 취약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발달적 경과이다. 통제불능감이 중재요인으로 발전된다는 것은 안정적인 불안 발생의 만성적 취약성 요인으로 스트레스만 더해지면 언제든지 불안과 우울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태로 악화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발달상의 구조적 변화는 불안과 우울 증상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시 3중 취약성 모델의 견지에서 살펴보자면, 유전적 취약성과 초기 경험에서 비롯되는 통제불능감의 심리적 취약성이 상호작용하여 임상 증상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3. 특정 심리적 취약성(specific psychological vulnerability)
이 세 번째 요인은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에 불안감을 느끼도록 연합을 형성하는 심리적인 취약성 요인을 의미한다. 이 역시 초기 환경의 학습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예기적 불안(anxious apprehension)이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사건이나 대상과 연합되어 특정한 불안장애 양태를 띠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공황장애는 신체 내적인 감각과 불안감이 강하게 관련되어 있다. 신체단서는 또 다른 공황발작이 발생할 것을 예기하는 불안 경고 신호이다. 이 경우 초기에 부모로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신체 감각이란 위험한 것이고 더 나아가 어떤 병이나 죽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모방하거나 학습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사회공포증의 경우,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사회적 평가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들었던 경우가 많다. 강박장애의 경우, 강박사고 그 자체가 불안의 초점이 되는데 이들 중 일부는 성장과정에서 위험한 생각과 위험한 행동을 동일시하는 것을 미리 학습한 적이 있다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
요컨대, 어떤 대상이나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잠재적 위협의 대리학습(vicarious learning)은 개개의 불안장애 발생에 작용하는 장애 특수적인 심리적 취약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애 특수적인 심리적 취약성이 형성되었다고 장애가 발생하는 것 역시 아니다. 신체 단서에 대한 위험성을 대리학습 했어도, 다른 취약성이 없다면 그 자체로 임상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만성적인 불안상태가 발생하고 지속되는 것은 일반적인 생물학적, 심리적 취약성과 장애 특수적인 심리적 취약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 3중 취약성 이론은 아직까지는 가설적인 불안 및 기분 장애의 구조이며, 일반적인 생물학적 취약성(유전적 소인), 일반적인 심리적 취약성(통제불능감), 장애 특수적인 심리적 취약성 등 3요인이 어떠한 상호작용과 길항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확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각각의 취약성에 대한 연구 결과는 견실하게 축적되어 있으나, 그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Review 15.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이론: Clark
공황장애에 대한 인지행동적 모델은 Clark(1986)과 Beck 등(1985)의 접근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Clark(1986)의 모델은 Beck 등이 제안한 불안에 대한 일반 인지이론과 많이 중복되면서도, 공황장애의 원인과 유지에 관한 인지적 요소를 좀 더 자세하고 다루고 있다. 이 모델은 일련의 사건이 순환적으로 일어나 결국 공황까지 이어진다고 개념화하고 있어 공황의 ‘악순환 모델’ 로 불린다. 악순환 고리의 요소와 양상이 장애마다 다르기는 하나 악순환 모델은 일반적으로 불안장애를 개념화하는 데 유용하다.
공황의 발생 요인
Clark 모델의 핵심 주장은 정상적인 신체적 혹은 정신적 사건을 파국적으로 왜곡 해석하여 공황발작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기증은 막 기절하게 되리라는 신호로, 숨이 찬 것은 심장마비가 올 것을 알리는 신호로, 주의집중이 안 되거나 생각이 혼란스러워지면 곧 미쳐 버리게 될 것을 알리는 신호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파국적으로 왜곡 해석되는 대상은 주로 불안한 상태일 때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신체감각이지만 불안과 무관한 감각, 예를 들어 혈당치가 낮을 때 나타나는 불안정감이나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 혈압변화, 과음이나 피로로 인해 생기는 신체감각일 수도 있다. 또 그냥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정상적인 신체감각도 모두 파국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황의 유지 요인
특정한 내적/외적 자극이 위협적인 것으로 해석되면 불안해지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관련된 신체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불안해서 나타나는 정상적 신체증상이나 감각이 또 다시 파국적으로 해석되면 불안 수준이 더욱 높아지고, 그러면 신체증상들도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이는 더욱 파국적으로 해석되어 더욱 불안해지고, 결국 공황상태까지 이르는 악순환 고리를 돌게 되는 것이다.
일단 공황발작이 발생한 후에 이를 유지시키는 것은 신체적 감각에 대한 선택적 주의, 공황발작 상황에서의 안전행동(safety behavior), 그리고 회피의 세 가지 요인이다.
첫째, 신체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선택적 주의를 주고 자신의 몸에 초점을 두게 되면, 감각 지각역이 낮아지기 때문에 신체감각을 주관적으로 느끼는 강도가 더 커지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왜곡된 해석의 악순환이 시작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둘째, 환자는 두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다가올 것 같은 끔찍한 결과를 막아 보기 위해 자기 나름의 안전행동을 취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리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이제 곧 쓰러질 것을 알리는 신호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의자에 앉거나 벽에 기대거나 눕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된다. 이는 파국적 결과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또한 안전행동 자체가 신체감각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숨이 찬 것을 이제 곧 숨이 막힐 것임을 알리는 신호로 잘못 해석한 경우, 숨이 막히지 않기 위해 숨을 더욱 크게 쉬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현기증이 생기고 오히려 숨이 더 가빠지는 등 신체감각이 더욱 증폭된다. 이렇게 안전행동이 공황장애를 유지시키는 방식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자신이 두려워하던 끔찍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마음이 불안하다고 해서 실제로 끔찍한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객관적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앉거나 눕거나 하는 안전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잘못 귀인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신념이 틀렸다는 사실을 반증할 기회를 차단해 버린다. 둘째, 안전행동 자체가 신체적 증상을 악화시킴으로써, 파국적 해석에 대한 신념을 오히려 강화시켜줄 수도 있다.
공황발작 후 이를 유지시키는 세 번째 요인인 회피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과 같은 불안 유발 상황이나 운동과 같은 활동을 피하는 행동이다. 그러면 결국 불안을 경험할 기회가 적어지고, 마음이 불안해진다고 해서 끔찍한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어져 버린다.
▲ Clark의 공황 발생 및 유지 모델
개별 사례 이해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인지행동적 평가의 목적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공황을 유발하는 악순환 고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하는 파국적 해석의 내용과 이를 확신하는 정도, 가장 두려워하는 신체 감각이 무엇이며 그 구체적인 특성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떤 안전행동과 회피행동을 하는지를 자세하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공황발작의 빈도와 강도, 전반적인 불안과 회피 수준도 정기적으로 평가한다.
공황장애 인지행동 이론에 대해 환자에게 충분히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악순환 고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치료자와 함께 살펴본다. 처음 몇 회기까지는 주로 유발 및 유지 요인에 대해서만 개념화하여 환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첫 회기에 안전행동까지 포함하는 전체 모델을 함께 만들어 보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내적 신념이나 가정과 같은 취약성 요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황 증상이 감소한 후에 하도록 한다.
1. 악순환 고리 파악하기
환자가 가장 최근에 겪은 공황발작을 자세하게 살펴봄으로써, 그 환자에게 있어 공황을 유발하는 악순환 고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본다. 구체적이고 기억이 생생한 공황발작을 예로 들어 하지 않으면 이 순환 고리를 잘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그 사건이 슬로우 모션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자세하게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악순환 고리는 정서적 반응, 신체감각, 감각에 대한 왜곡된 해석 혹은 부정적 사고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한 예를 들어 보자. 가장 먼저 막연한 비현실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느낌을 ‘내가 공황발작을 하면 어떡하지?’ 라고 해석하였다. 그러자 불안해지고 두려워졌다. 그랬더니 더욱 가슴이 뛰고 숨이 차고 비현실감이 커졌다. 이러한 느낌을 ‘이제 심장마비가 올 것을 의미한다. 고 해석하자 더욱 불안해졌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불안 때문에 생기는 신체 감각을 잘못 해석하게 되자 악순환 고리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처음 불안을 유발하게 되는 요인은 이 환자의 경우처럼 비현실감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감각, 생각, 분노나 흥분 같은 감정일 수 있으며, 얼마나 지속되는가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악순환 고리를 만들 때에는 불안을 시발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다음은 악순환 고리를 탐색해 가는 과정에 대한 사례이다.
치: 가장 최근의 공황발작은 언제였습니까?
환: 어제 아침에 한 번 있었어요. 무척 심했어요.
치: 그 발작에 대해서 좀 얘기해 볼까요. 기억이 생생하세요?
환: 네, 그런 것 같아요.
치: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발작이었나요?
환: 네. 하지만 예전 것만큼 심하지는 않았어요.
치: 좋아요. 일단 그 발작 경험에 대해 얘기하면서,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그 때 어디서 무얼 하려던 참이었나요?
환: 회사에서 손님과 전화로 얘기를 하고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발작이 생긴 겁니다.
치: 발작이 아주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말 같네요.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가장 처음 느낀 게 뭐였나요? 신체 감각이나 생각이었나요?
환: 비현실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내가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일부가 아닌 것만 같은.
치: 그런 비현실감을 느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환: 음 … 아! 세상에, 공황발작이 나면 어쩌지?
치: 그 생각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환: 절대로 지금 공황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느꼈어요.
치: 그렇게 생각했을 때 또 다른 느낌은 뭐였나요?
환: 공황발작으로까지 발전될까봐 두려웠어요.
치: 그러니까 두렵고 불안했던 거군요.
환: 네. 심한 발작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심정뿐이었지요.
치: 좋아요. 천천히 한번 그 발작 동안 있었던 일을 살펴봅시다. 그 때 두려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두려움을 느꼈을 때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있었나요?
환: 떨리고, 심장이 막 뛰기 시작했어요.
치: 또 다른 감각은 없었나요? 예를 들어 아까 느낀 비현실감 같은 것은?
환: 아, 그 비현실감은 더 심해졌어요. 그리고 숨이 막 차올랐어요.
치: 그러니까, 떨리고, 심장이 막 뛰고, 비현실감이 들고 숨이 막 차고, 그런 감각을 느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환: 공황발작이 오는구나, 통제할 수 없겠구나 하는 걸 알았죠.
치: 이런 증상이 생길 때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환: 바로 그거에요,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치: 어떻게 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환: 심장마비가 오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치: 그 생각을 할 때 불안한 것은 어때요?
환: 더 심해지지요. 거의 공황 상태로 느껴졌어요.
치: 그 때 증상이 나빠지면 심장마비가 올 것이라고 믿는 정도는 얼마나 강했나요? 0점에서 100점까지로 친다면요? 0점이 전혀 믿지 않는다이고, 100점이 100% 믿는다라면?
환: 거의 80%요.
2. 기본 개념화하기: 안전행동과 회피를 포함시키기
일단 기본적인 악순환 고리를 만들고 나면 안전행동과 회피행동을 파악하고 모델에 포함시켜야 한다. 광장공포증이 함께 있는 경우에는 회피행동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매우 주의 깊게 탐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운동이나 힘든 활동을 회피하는 것,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 의학적 정보를 회피하는 것 등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회피행동들이 있다. 먼저 ‘불안 때문에 회피하게 되는 상황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고, 이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물어들어 간다. 안전행동에 대해 확인할 때에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 때 예로 들었던 그 공황발작을 가지고 그 안에서의 안전행동을 탐색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음은 그 사례이다.
치: (칠판에 그려놓은 악순환 고리를 가리키며) 이걸 한번 봅시다. 당신이 불안을 느끼고 심장마비가 올 거라고 생각할 때, 스스로를 위해서 뭔가 하시는 일이 있나요? 심장마비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환: 긴장을 풀고 심장이 뛰는 것을 가라앉히려고 해요.
치: 긴장을 풀고 심장이 뛰는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어떻게 하시나요?
환: 나 자신한테 긴장을 풀라고 되뇌이고, 숨을 깊게 천천히 쉬어요.
치: 숨을 어떻게 쉬시는지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환: 숨을 아주 깊이 쉬고, 심장이 천천히 뛰도록 하려고 하지요.
치: 그러니까 긴장을 풀기 위해서 숨을 깊게 쉬는 거군요. 또 다른 것이 있나요?
환: 종이봉투에 숨을 쉬었다 뱉었다 하기도 하는데, 그 때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치: 그러니까 불안한 것을 조절하려고 나름대로 몇 가지 방책을 마련하신 것 같네요. 공황이 올 때 이러한 조절 방책을 쓰지 않았다면 심장마비 같은 끔찍한 일이 생겼을 거라고 어느 정도로 확신하세요?
환: 심장마비가 오거나 아니면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치: 그러니까, 호흡 조절을 한 것이 심장 마비나 쓰러지는 일을 막아 주었다고 어느 정도로 확신하세요? 0에서 100까지?
환: 한 60% 정도요.
▲ 사례 이해의 예
앞의 그림처럼 사례 개념화를 할 때 행동이 왜곡된 해석에서 비롯되고, 신체감각을 증폭시키는 한편, 잘못된 신념이 잘못된 것임을 알 길이 없게 만드는 등의 두 가지 영향을 나타내도록 그려 넣는다.
3. 사회화(socialization)
그 환자에 대한 공황의 악순환 고리를 함께 만들어 보고 이를 제시하면서 사회화가 시작된다. 이 작업을 최근에 있었던 몇 번의 공황발작에 대해서 반복함으로써, 모든 공황발작이 이러한 틀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이 악순환 모델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이 모델이 당신의 공황발작 경험에도 잘 맞아 보입니까? 아니라면 왜 그렇습니까?
- 이 모델에서 틀린 것 같거나 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사회화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공황발작이 신체감각에 대한 파국적인 잘못된 해석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위의 모델이 맞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행동 실험을 할 수 있다.
(1) 연상학습과제(paired associates task)
이 과제의 목적은 신체적으로 끔찍한 결과에 대해 생각만 해도 신체감각과 불안수준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미리 설명해 주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므로 처음에는 알려주지 않는다.
환자에게 단어 쌍을 주고 이를 큰 소리로 읽으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단어 한 쌍당 5~6초의 시간을 주고, 단어 쌍은 목록의 형태로 제시한다. 단어 쌍은 일반적인 불안 감각과, 이러한 불안 감각에 대한 파국적 왜곡해석의 전형적인 예를 짝지은 것이다. 예를 들어 숨이 차다-질식한다, 어지럽다-기절한다, 가슴이 뛴다-심장마비, 비현실감-미쳐버림 등이다.
이렇게 몇 분 간 과제를 수행한 뒤에, 단어를 읽으면서 스스로 느낀 점이나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어본다. 가끔 심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조금 더 불안해지거나 신체 감각에 대한 인식정도가 약간 높아진다. 그 다음에, 우리가 앞에서 세운 모델에 입각해서 보았을 때, 이 결과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그 과정에서 이런 단어를 그냥 읽기만 해도 불안해지고 신체감각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이 과제를 해도 불안해지거나 신체감각에 대한 인식도가 전혀 높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때는 이 과제는 불쾌한 내용의 단어를 읽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반응을 보기 위한 것이며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말해 주고 마무리하면 된다.
(2) 신체초점 과제(body-focus task)
이 과제는 신체감각을 느끼는 데 있어 선택적 주의의 영향력을 보여 주려는 실험이다. 즉 신체감각에 주의를 선택적으로 주게 되면 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그런 감각이 느껴지는 정도가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환자에게 발이나 손가락 끝과 같은 신체 특정 부위에 주의를 집중해 보라고 지시한다. 몇 분 후 느낀 점이나 새로 인식하게 된 점을 말해 보도록 한다. 이 때, 공황 모델에 입각하여 이러한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그 부분에 주의를 집중하기 전에는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까?
-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니까 그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 그 부분에 주의를 집중하니까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면, 이것이 우리가 아까 살펴본 악순환 고리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이 과제를 좀 더 변형시켜서, 손등과 같은 부위에 시선을 고정시켜 계속 쳐다보도록 하고, 그 다음에 시지각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즉 그 부분의 크기, 눈에 맺히는 상의 명료도, 그 부분이 자기 몸의 일부로 느껴지는 정도 등에 변화가 있는지를 느껴 보도록 할 수도 있다.
(3) 안전행동증가 검사(increased safety behavior tests)
치료 회기 중에 안전행동을 더 많이 해 보게 함으로써, 안전행동이 신체감각을 증폭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또, 안전행동을 했기 때문에, 파국적 결과가 올 것이라는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게끔 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질식하게’ 되는 끔찍한 결과를 막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는 안전행동’을 한다면, 이런 숨쉬기 행동이 신체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기 위해 숨쉬기를 실제로 해 볼 수 있다. 숨을 가쁘게 들이 내쉬면 현기증이 생기고, 가슴이 뛰고, 어지럽고, 시야가 흐려지는 등 여러 가지 감각이 생긴다. 이렇게 여러 감각이 더 생기기 때문에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게 되고, 그러면 불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남을 알게 된다. 실제 공황 상태에서는 지금 연습해 보는 것처럼 열심히 숨을 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숨을 가쁘게 쉬는 것 자체의 효과를 보여 주려는 목적임을 강조해서 알려 준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실제로 공황발작 상황에서 불안해지려고 할 때 그 사람이 하는 안전행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탐색해서 이와 똑같이 해 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여러 안전행동 중에 증상을 더 많이 악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안전행동을 해 보는 것이 유익할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은유와 비유
‘안전행동을 하면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① 남아프리카에는 세상에 수호신이 있다고 믿는 부족이 있다. 세상이 계속되고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매년 특별한 의식을 해야만 한다. 이 부족은 그 의식을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한다. 이 의식을 못하면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신념이 잘못된 것임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이와 같이,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당신이 안전행동을 하는 한 알 수 있겠는가?
② 흡혈귀를 믿는 사람들은 밤에 잘 때 매우 불안해진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 주위에 마늘을 걸고 잔다. 여태껏 아무도 흡혈귀를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마늘이 정말 효력이 있기 때문인가? 흡혈귀가 없다는 것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둘 모두 안전행동을 한번 포기해 보는 것이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함을 보여 주는 예이다. 안전행동을 ‘안하는 것’뿐 아니라 불안증상과 신체증상이 생길 때 이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유지해 보는 것이 이러한 의미에서 더욱 유익할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
위의 사회화 작업은 향후 하게 될 직접적 형태의 신념 수정, 재귀인 전략을 하기 위한 발판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인지행동 치료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잘 조절하여 호흡하기 연습’ 과 같은 증상 통제 전략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현재 치료적 기법의 논리에는 반하는 것으로, 오히려 파국적 결과에 대한 신념이 틀렸음을 보여 줄 기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증상 자체를 유발해 놓고 그런 경험을 하는 가운데 환자의 신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장질환 같은 신체적 질환이 있는 경우는 증상 유발 전략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1. 행동적 재귀인 기법: 행동 실험
공황장애 치료에서 행동 실험은 공황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신체감각을 일부러 유도해 보고, 이런 신체감각이 ‘실험실에서 유도될 수도 있는 정상적인 것’ 이지 ‘죽음이나 기절과 같은 파국적 결과가 올 것임을 알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이 이러한 신체감각을 왜곡하여 해석했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효과적으로 ‘증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실제로 공황발작 동안 느끼는 신체적 감각과 거의 똑같은 정도의 감각을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실험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행동실험의 결과가 자신의 신념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환자가 ‘증상이 유도된다는 사실을’ 불안해하거나 꺼려할 수도 있으므로 치료자가 먼저 모델링을 해 보이면 환자가 따라오기 쉬울 수 있다.
행동 실험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파국적 결과가 올 것이라는 신념의 정도를 실험 전후에 각각 평정해 보아야 한다. 잘못된 신념이 실험 후에도 남아 있다면 그 이유를 잘 파악해야 하며, 행동 실험을 몇 차례 반복할 수도 있다.
신념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 그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험을 하는 동안 환자가 부지불식간에 안전행동을 했을 수 있다. 실험 동안 환자를 잘 관찰하여 안전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잘할 때까지 몇 번씩 반복해야 한다. 둘째, 실험에서 유도된 신체감각이나 증상이 실제 공황발작 때 느끼는 신체감각이나 증상과 유사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구원 요인’ 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료자가 함께 있거나 치료실 안에 있으면, 파국적 결과가 일어나기 전에 치료자가 구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공포 수준이 별로 심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때는 환자 혼자서 하게 하거나 아니면 치료실이 아닌 곳에서 해 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공황 유도 실험은 치료자 자신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치료자가 가진 잘못된 신념 때문이다. 예를 들어,
- 나는 내 환자를 언제나 기분 좋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 환자에게 이걸 하라고 시키면 치료를 그만둘 것이다.
- 환자를 공황에 빠지게 하면 나는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 환자가 통제력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와 같은 생각들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치료자가 먼저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을 파악하고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 과호흡(hyperventilation) 유발 과제
과호흡이란 숨을 빠르게 들이쉬고 내쉬도록 하는 것으로, 공황을 유발하는 여러 가지 신체감각을 유발하는 데 효과적이어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절차 가운데 하나이다. 과호흡을 하면 현기증, 어지러움, 해리감, 시각의 변화, 열감, 심박 증가, 숨찬 느낌 등이 생기게 되므로, 이런 유형의 증상을 파국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에 유용하다.
일어선 채로 하게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과호흡을 한 다음에는 여러 가지 부가적 전략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과호흡을 아무리 해도 파국적 결과가 생기지 않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과호흡을 오래 하기 한다든지, 현기증이 나면 ‘쓰러지거나 균형을 잃게 될 것’ 이라는 신념에 도전하기 위해 과호흡을 한 다음에 똑바로 걷거나 한 발로 서게 한다든지, 한 발로 뛰게 한다든지 할 수 있다.
또는 과호흡을 하면서 다른 전략을 병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는 것을 실명의 신호로 왜곡 해석하여 공황발작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 때 4분간 과호흡을 하면서 동시에 밝은 불빛을 쳐다보도록 하여 시야가 흐려지고 비현실감이 느껴지게끔 만든 다음, 바로 글을 읽어 보게 함으로써 시각 기능에 이상이 없음을 깨닫게 할 수도 있다.
과호흡을 하면서 안전행동의 반대 행동을 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쳐 버리지 않을까’ 가 가장 주된 공포이고, 안전행동이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쓰는 것이라면, 과호흡을 하면서 일부러 ‘미치는 생각’을 함으로써 정신적 통제를 잃으려는 시도를 해 보는 것이다. 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를 상실할 것이 두려운 경우라면, 방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거나 기괴한 몸짓을 하도록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과호흡을 오래 하면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과호흡을 지속하다 보면 점차 이런 증상이 없어진다. 드물게 근육경련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과호흡 때문에 기절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심장병, 천식, 고혈압 같은 질병이 있거나 임신 중일 때에는 과호흡을 시도하지 않는다.
(2) 신체적 운동 과제
격렬한 활동을 회피하는 경우, 심장 질환, 체력에 대한 염려가 있을 때 유용한 방법이다. 주로 조깅, 계단을 빨리 오르내리기, 줄넘기 등을 해 보게 하고, 이 때 나타나는 신체감각이 운동을 해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해 준다.
이 방법을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두려워하는 신체감각이 가슴이 뛰고 땀나는 것이라면, 아주 더운 곳에서 아니면 두꺼운 옷을 입고 운동을 하게 하여 땀이 더 많이 나게 해 볼 수도 있다.
(3) 흉통 유발
가슴이 조이거나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이를 파국적으로 해석하여 공황이 오는 경우에 유용한 방법이다. 환자에게 숨을 한껏 들이쉰 채 계속 참고 있기를 몇 분 간 반복해서 연습시키면 가슴이 답답하고 조여 오게 된다. 또 숨을 깊게 들이쉰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심장 부근과 흉골 옆쪽의 갈비뼈 사이를 눌러 보도록 하면 찌르는 듯한 압박감이 생긴다.
이를 통해, 가슴 부위가 여러 가지 근육으로 되어 있고, 불안하거나 긴장되면 흉통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심장마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4) 시각 장애 유발
눈이 흐려지는 등의 시각적 감각을 왜곡 해석하여 공황이 오는 경우에 유용한 방법이다. 모눈종이 한가운데를 계속 쳐다보게 할 수도 있고, 눈을 한 군데에만 고정하고 응시하게 해 볼 수도 있다. 그 다음 느껴지는 시각적 감각을 말해 보도록 하면, 이런 일을 통해 시각적 감각이 달라질 수 있고 이것이 실명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줄 수 있다.
(5) 해리 경험
비현실감이 느껴질 때 이를 파국적으로 해석하는 환자의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느 한 군데를 너무 오래 쳐다보거나 과호흡을 해도 비현실감이 느껴질 수 있다. 혹은 유도된 백일몽을 함께 해 보거나 이완상태를 유도하여 이러한 경험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6) 두려워하는 결과를 행동으로 옮겨 보기
넘어지거나 기절을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염려가 가장 주된 경우에 사용해 본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 나가서 실제로 넘어지거나 기절하는 시늉을 해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봄으로써 환자가 가진 파국적 결과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수정해 줄 수 있다. 환자가 너무 두려워할 수 있으므로 치료자가 먼저 시범을 보이는 것도 좋다.
2. 언어적 재귀인 기법
환자가 두려워하는 파국적 결과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왜 그러한 파국적 해석을 하는지, 파국적 해석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것이 가장 일차적인 방법이다. 때로는 환자가 자신의 파국적 해석의 증거를 생각해 내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해석이 왜곡되거나 비합리적인 것임을 금세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가 여러 가지 증거를 대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그 증거를 자세하게 논의하고 분석하여 다른 대안적 해석이 어떤 것이 있는지 도출해 본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파국적 결과가 정말 일어났었다고 환자가 주장하는 경우 이를 자세하게 분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환자가 자신이 실제로 쓰러졌으며, 다리가 풀리고 기절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잘 질문해보면, 파국적 결과가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환자가 제풀에 주저앉은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안전행동을 한 것인데, 이를 파국적 결과가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 증거에 대해 질문하기
신체감각을 왜곡하여 해석할 만한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탐색적 질문을 던진다. 이는 행동 실험을 하기 전에 할 수도 있고, 행동 실험을 하고 나서 그 의미를 깨닫도록 돕기 위해 할 수도 있다.
- 공황과 같은 불안 상태가 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어떻게 아는가?
- 이제까지 당신은 공황발작을 여러 차례 경험하였다. 그런데 왜 아직 그런 끔찍한 결과가 안 일어났는가?
- 불안이 끔찍한 일을 생기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
- 그 끔찍한 일이 생기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가? 불안도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이렇게 환자가 생각하는 증거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도록 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오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 유용하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주로 파국화와 임의 추론의 오류를 많이 범한다. 또한 공황발작이라는 극심한 불안상태에서는 현실검증력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알려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평상시에는 자신이 왜곡된 해석을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신념을 수정하려 할 수 있지만, 공황발작 중에는 이러한 능력이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환자가 이를 이해하면, 일부러 불안한 상태를 유발해 놓고 행동실험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강조해 준다.
이러한 언어적 기법은 반드시 행동실험을 함께 해야만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 공황 일기
공황 일기는 공황 발작의 빈도와 강도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는지를 평가할 수 있으며, 왜곡된 해석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환자 스스로 취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환자 자신도 자신이 내리는 왜곡된 해석에 대해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공황 일기에는 발작이 일어난 상황 등의 기본 칸 외에도, 신체감각,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신체감각, 자신이 신체감각에 대해 내린 왜곡된 해석을 적는 칸이 포함된다.
공황 일기는 매일매일 집에서 숙제로 해야 한다. 이렇게 매일 하게 되면 공황발작이 특정한 양상으로 일어나는지 여부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현기증을 느끼면 공황 발작이 오게 되는데 그것이 주로 오전이라면, 그 현기증은 주로 혈당치가 낮아서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이를 찾아내는 것도 현기증의 원인을 제대로 귀인하고 왜곡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데 유용하다.
(3) 교육과 반증 탐색
환자가 자신의 신체감각에 대해 내린 왜곡된 해석에 대해 반대되는 증거들을 함께 찾아보고 왜곡된 해석과 상충되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를 통해 자신의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대안적인 합리적 해석을 생각해 보게끔 할 수 있다. 되도록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사용하여 환자가 점진적으로 깨달아가는 ‘인도된 발견법(guided discovery)’ 으로 해야 한다. 왜곡된 해석의 반대 증거는 환자가 스스로 경험했던 일이나 행동 실험 결과, 아니면 다른 일반적인 예를 들어 줌으로써 제시할 수 있다. 환자가 왜곡된 해석을 내리게 된 나름의 증거와, 이에 반대되는 증거 목록을 함께 만들어보고 이를 비교해 본다.
(4) 조사 기법
친척이나 친구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도 자신과 같은 증상을 경험하는지 질문을 해 보도록 한다. 구체적인 질문 내용은 치료 회기에서 미리 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신체감각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3. 회피 행동 다루기
회피 행동의 내용과 정도를 정기적으로 계속 확인하고 이를 소거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특히 광장공포증이 있을 경우 회피 행동을 없애는 것이 치료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노출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려고 한다거나 운동을 일부러 안하는 경우 이러한 행동이나 활동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가 쉽게 임할 수 있도록 이러한 노출의 수준을 단계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4. 재발 방지
인지 치료 마지막 두세 회기는 재발 방지 작업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왜곡된 해석과 신념이 남아 있을 경우 향후 불안과 공포에 취약성 요인이 되기 때문에, 그 신념 수준을 확인하고 종결 전에 이들 신념을 수정해야 하며, 회피나 안전행동도 모두 확인하고 소거시켜 주어야 한다. 재발 방지는 치료 청사진 만들기, 미래에 다가올 불안에 대해 새로운 틀을 제시하기, 추후 회기 계획하기로 이루어진다.
(1) 치료 청사진
치료회기 동안 환자가 공황의 원인, 유지 요인, 이를 극복하는 방식 등에 대해 배운 모든 것을 글로 요약해 주는 것이다. 악순환 고리의 예, 안전행동과 회피의 역할에 대한 설명, 왜곡된 해석의 신념에 도전하는 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왜곡된 해석에 대한 반증을 요약한 것 등으로 구성한다.
(2) 새로운 틀과 추후 회기
앞으로 만약 공황발작이 다시 생기면 얼마나 괴로울 것 같은지를 0~100 사이에서 평정하도록 하면 현재 남아 있는 문제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점수가 높다면 그 이유를 탐색하고 도전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 만약 공황발작이 생긴다면, 이는 병이 재발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수정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잘못된 신념을 고치고, 인지치료 기술을 발휘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치료 효과가 유지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세 달 간격으로 2~3회기의 추수 회기를 계획해야 한다.
<치료의 예>
1회기
a. 최근 발작에 대한 공황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b. 악순환 고리와 사회화 절차를 사용하여 사회화 작업을 한다.
c. 왜곡된 해석과 신념의 정도 및 안전행동을 파악한다.
d. 오해석에 대한 공황 일기를 쓰고, 치료 회기 녹음을 들어 보는 숙제를 내준다.
2회기
a. 일기에 써 온 최근 공황발작에 대한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b. 핵심 신념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적 · 언어적 재귀인을 사용한다.
c. 안전행동 개념을 도입한다.
d. 일기를 계속 쓰고, 안전행동을 안하는 행동 실험을 하고, 치료 회기 테이프를 듣는 숙제를 내준다.
3~7회기
a. 안전행동을 포함하여 공황발작에 대한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핵심 신념에 초점을 맞춘다.
b. 서로 다른 신념에 도전하기 위해 회기 내에서 증상 유도 실험을 한다.
c. 이것과 행동 실험에 근거하여 언어적 재귀인과 합리적 반응을 유도한다.
d. 노출 실험, 안전행동 안하기와 증상을 그대로 경험하기, 공황일기를 쓰되 왜곡된 신념과 안전행동을 대신하는 합리적인 반응을 적어 오기, 치료 회기 테이프를 듣고 요약해오기 등의 숙제를 내준다.
8~12회기
a. 남아 있는 신념에 도전한다.
b. 남아 있는 안전행동과 회피를 파악하고 제거한다.
c. 재발 방지를 한다.
d. 증상 밀고 나가기를 계속하고, 자신의 불안 대처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공황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찾아나서 보기를 숙제로 내준다.
Review 16.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접근
인지적 접근의 발달 과정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이론이 제안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초기 인지이론에서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과도한 생각을 강박장애의 핵심적인 인지적 특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위협 사상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반드시 강박장애에 특수적인 인지적 특성으로 보기보다는 거의 모든 불안장애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Franklin & Foa, 2001).
강박장애에 대한 본격적인 인지이론의 효시는 과도한 책임감을 그 핵심으로 제안한 Salkovskis(1985, 1989)의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행동에 대한 생각은 그 행동의 실제 수행과 마찬가지이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지 못한 것은 직접 가해를 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위해에 대한 생각을 중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가해 의도와 마찬가지이다’ 와 같은 내용이 과도한 책임감과 관련하여 강박장애 환자의 독특한 사고내용으로 제안된 것이다. 또한 이 이론의 혁신적인 측면은 인지적인 침투현상을 일종의 자극으로서 평가와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이는 강박사고라는 증상을 단순히 떨쳐 버리고 제거해 버려야 할 의식적 통제 불가의 대상에서, 인지적인 해석의 매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인지적인 산물로 개념화한 것으로서, 강박사고라는 증상에 대한 인지치료적 접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지치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치료적 접근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기존의 불안에 대한 개념과 치료적 접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제안되기도 하였다(Franklin & Foa, 2001). 인지적 접근이 모색되기 이전에는 병리적 불안이 치료 상황에서 그저 소거나 습관화와 같은 자동적인 과정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즉, ‘자동적인 과정’ 이라 함은 ‘비인지적’ 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학습이론가들은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맥락에서 조건형성을 재구성하고 자극의 의미에 대해 고려하고 있으나, 행동치료자들은 노출치료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여전히 비인지적 측면, 예를 들어 소거나 습관화 같은 면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Emmelkamp, Van der Helm, van Zanten과 Plochg(1980)는 ‘노출과 반응예방에 의한 치료는 수동적 그리고 적극적인 회피행동의 수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강박장애 환자의 인지를 직접적으로 수정하기 위한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 지적하였다. 노출치료만으로는 강박장애 기저의 병리적 인지에 대해 직접 다룰 수 없으므로, 인지적 접근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공황장애나 사회공포증에 인지치료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인지적 접근의 강박장애 치료 모델
강박사고에 대한 인지적 개입은 본격적으로 Salkovskis(1985)에 의해 제안되고, 이후 van Oppen and Arntz(1994), Freeston 등(1996)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본고에서는 Freeston 등(2001)이 제안한 인지치료 모델과 Whittal과 Mclean(1999)이 개발한 집단인지(행동)치료 모델을 중심으로 그 공통적인 요소를 소개하겠다.
Freeston 등은 ERP를 배제하고 치료의 90% 이상을 순수한 인지치료적인 접근으로 순수강박사고 유형을 치료하고자 한 인지모델이고, Whittal과 McLean은 ERP에서 더 나아가 인지치료적 접근이 매우 강화된 집단 인지행동치료법을 개발하였다. 두 연구진의 초점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모델의 중요한 인지적 요소를 같이 소개한다면 현재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접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Whittal과 McLean의 집단 인지행동치료 매뉴얼은 총 12회기로 구성되어 있다. 1회기에서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예를 제시한다. 또한 강박장애의 인지행동 모델을 설명하고 치료 원리를 학습한다. 1회기에서 중요한 치료적 과제는 환자가 인지적 평가와 침투적 사고를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고, 과제(home work)로 인지적 평가와 침투적 사고를 구분해 적어 오는 것을 부과한다. 2회기에서는 치료 모델의 원리를 복습하고, 과제를 검토한다. 이 회기에서는 인지치료에서 다루어지는 일반적인 인지적 오류를 설명하고 이것이 침투적 사고에 대한 인지적 평가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하향 화살표 기법(downward arrow technique)을 통해 환자가 강박사고와 관련하여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낸다. 제반 인지적 오류를 찾아내는 자기감찰과 자신의 강박증상과 연관된 인지적 평가에 대해 하향 화살표 기법을 적용해 보는 것을 과제로 부과한다. 3~7회기에서도 회기의 시작은 치료 모델의 복습과 과제 검토로 시작한다. 이 치료 중반에서는 본격적으로 강박장애에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오류적 인지 평가를 제시하고 이를 수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인지행동 전략을 소개한다. 각 회기 내에서 오류적 인지 평가를 수정하기 위한 행동실험을 실시한다. 행동실험이나 인지적 평가 내용의 수정을 위한 조사나 정보 수집 등이 과제로 환자와 협의 하에 부과된다. 8~10회기에서는 강박장애의 인지적 평가와 각각에 대한 치료기법을 복습한다. 이 치료 종반의 가장 주요한 과제는 강박증상 기저의 신념과 가정을 밝혀내고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에 도전하고 대안적인 신념과 가정을 찾아낸다. 이러한 신념체계를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증거를 찾아내는 행동실험을 과제로 부과한다. 마지막 11~12회기에서도 치료 모델을 복습하고 현재까지의 치료 과정을 검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
Freeston 등(2001)의 인지치료는 한 시간의 개인치료로 매주 진행되며 평균 16회기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Whittal과 McLean의 치료가 집단치료인 것을 고려할 때, 각 환자가 치료를 받게 되는 시간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부분적인 차이는 있으나 두 치료의 큰 흐름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치료 초반에 환자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강박증상과 치료에 대한 인지행동 모델을 교육시킨다. 중반에는 강박장애 환자가 지닌 인지적 왜곡, 즉 인지적 평가에 대한 본격적인 수정과 대안적인 인지적 평가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기저의 신념체계에 대한 도전도 이루어진다. 종반에는 지난 치료 과정을 검토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지금부터 이 치료과정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어떠한 내용이 다루어져야 하고, 각각 어떠한 문제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인지 기법이 사용되는지 그 치료의 핵심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겠다.
1. 강박사고에 대한 인지행동적 설명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모델의 중요한 전제는 침투적 사고의 경험이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인지행동 모델의 교육은 강박사고의 문제가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과 본질적으로 연속선상에 있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재개념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반인들이 경험하는 침투적 사고의 내용을 제시하고 정상인들에게도 이러한 침투적 사고의 발생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임을 제시해야 한다(Rachman & de Silva, 1978). 정상인들이 경험하는 침투적 사고의 리스트를 제시하여 환자 자신의 강박사고와 직접 비교하게 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정상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내용상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으며, 빈도, 불편감,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대처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각 환자의 증상에 맞게 왜 정상적인 침투적 사고가 그토록 강렬한 강박사고로 악화되고 지속되는지에 대한 인지행동모형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모델의 중심적인 내용은 각 사람이 침투적 사고를 경험할 때, 그 생각의 존재나 내용에 대해 저마다 상이한 평가와 해석을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왜곡된 인지적 평가를 함으로써 침투적 사고에 대한 불편감이 심해지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역기능적 중화행동을 하게 되며, 결국 중화행동의 결과로 더욱 강박사고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되고 왜곡된 인지적 평가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모델에는 기분의 변화나 일상의 대소사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증상의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강박사고에 대한 최근의 인지적 이론은 인지적 침투 현상 자체를 직접 차단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침투사고를 현상의 시초 자극으로 간주하고 그 생각의 존재나 내용에 대한 왜곡된 인지적 평가가 일상적인 현상을 병리적인 과정으로 악화시키고 지속시킨다고 제안한다(Salkovskis, 1985, 1989; Rachman, 1997, 1998; Freeston et al., 1996).
2. 침투사고에 대한 인지적 평가와 중화행동
이 단계에서는 우선 면담과 과제를 통해 환자의 침투적 사고에 뒤따르는 다양한 생각과 중화행동에 주목하게 된다. 이 단계의 주목표는 앞서 교육한 모델에 따라 왜곡된 인지적 평가와 중화행동을 탐지해 내는 것이다. 인지적 평가라는 개념이 때로는 환자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지적 평가란 ‘침투적 사고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혹은 그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침투적 사고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이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를 다루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침투적 사고, 인지적 평가, 중화행위 등을 명확하게 변별하는 것은 전반적인 치료적 개입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이는 특히 강박적 반추의 경우에 효과적인 인지치료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침투적 사고와 인지적 평가를 구분해 낼 수 없다면 왜곡된 인지적 평가의 수정과 대안적 평가의 모색은 매우 어려워진다.
이 부분에서 명백하게 인지적 평가가 강박장애 환자와 비강박장애 환자를 구별하는 중심적인 특징이며, 왜곡된 의미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정서적인 불편감이나 강박행위에 대한 충동이 유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행동모델을 통해서 교육한다. 치료초반에서 제일 중요한 과제는 ‘침투적 사고를 밝혀내고 이에 수반되는 인지적 평가를 찾아내고 서로를 구분하는 것’ 이다. 따라서 자기감찰이 과제로 부과되며, 다양한 예를 통해 이 침투적 사고와 인지적 평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배우게 된다. 종종 환자들은 침투적 사고를 인지적 평가로 착각하고 이를 수정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한다.
3. 왜곡된 인지적 평가의 수정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행동 모델에서 인지적 평가는 이론적으로나 임상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의 발생과 지속에 기여하는 요인이며, 치료에서는 다양한 인지적 기법을 통해 직접적인 개입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다. 치료 중반의 주요 목적은 환자가 자신의 침투적 사고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새롭고 적응적인 정보를 사용하여 보다 객관적인 인지적 평가를 대안으로 찾아내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인지적 평가는 자동적 사고에 준하는 수준의 인지 과정이며, 그 내용의 수정을 위해서 이미 잘 성립되어 있는 다양한 인지-행동적 기법을 적용할 수 있다. 어느 인지치료와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상황(생각의 존재와 내용)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대안해석을 찾기 위한 노력이 치료의 결정적 요소가 된다. 정서적인 추론이나 과잉 일반화를 비롯한 다양한 인지적 오류를 지적하고 보다 유연하게 합리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연습을 다양한 상황을 걸쳐 시도한다. 더 나아가 과거에는 적응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현재는 현실적응에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 기저의 역기능적 신념을 파악하고 그 역할을 인식할 수 있다면, 왜곡된 평가와 관련된 부적응적인 가정을 보다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한다(Whittal & McLean, 1999).
이 단계에서는 환자가 본래 가지고 있던 왜곡된 인지적 평가와 대안적인 인지적 평가가 반복적으로 비교되고 검증을 거친다. 다양한 인지적 기법을 통해 오류적인 평가에 도전하고, 행동 실험을 통해 그 증거를 수집한다. 이 역시 인지행동치료의 대의인 협력적 경험주의(collaborative empiricism)를 따르므로 이 과정은 반드시 치료자의 도움으로 환자가 자신의 결론을 찾아내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환자들에게 그들의 인지적 평가가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을 직접 내리는 것은 삼가해야 하며, 침투적 사고를 어떻게 정확하게 평가하는지를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따라서 행동실험이라는 것은 정보 수집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 여기에서 ERP와 인지행동치료의 근본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행동치료에서 ERP의 역할은 습관화(habituation)를 통한 불안의 감소이지만, 인지행동치료에서의 ERP는 여러 가지 행동실험 중에서 효과적인 실험의 하나이며 그 목표는 습관화를 통한 불안감소가 아니라 인지적 평가의 수정을 위한 정보 수집 도구로 사용된다(Whittal & McLean, 1999).
Whittal과 McLean의 치료에서는 집단 내에서 가장 공통적인 내용의 인지적 평가부터 환자들에게 제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인지치료에서 다루는 인지적 오류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고 관련 책자를 소개하기도 한다. 인지적 오류가 침투적 사고에 작용하여 나타나는 결과가 오류적인 인지적 평가이므로, 강박장애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인지적 오류의 내용과 과정을 인지적 평가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흑백논리, 이분법적 사고 등이 위해에 대해 모두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인지적 평가로 나타나는 것이 과도한 책임감이라고 볼 수 있다.
4. 재발 방지
치료의 종반부는 재발 방지를 목표로 한다. 이 과정은 각 환자의 증상에 따라 개별화되어 이루어진다. 각 환자들은 자신이 기존에 지녀왔던 오류적인 평가 내용과 중화행동, 새로 획득한 인지적 평가와 대처 방략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게 된다. 또한 기분의 상태나 생활사건과 같이 강박증상의 수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을 밝혀내고 그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한다.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통해 다시 침투적 사고가 재발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스스로 질문해야 할 항목들이 무엇인지 상세히 논의한다. 만일 침투적 사고가 다시 악화될 경우에는 치료를 통해 학습한 강박장애의 전형적인 오류적 인지평가의 항목 하나하나를 대입하여 자신의 상태에 적용되는가 검토해야 한다. 우선은 침투적 사고를 정확히 기술하고, 이에 대해 어떤 인지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인식하고, 대안적 평가를 찾아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실험을 수행하는 것이다(Whittal & McLean, 1999). 가장 효과적인 재발방지책은 치료에서 배운 다양한 기법을 계속해서 적용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특히 재발방지를 위해 증상의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상황(예: 수면 부족, 배우자나 동료와의 다툼, 학업 부담, 우울감)을 탐지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인지적 평가의 내용과 여러 가지 인지행동적 기법
강박장애 환자들의 독특한 인지적 오류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과도한 책임감’이다(Salkovskis, 1985). 그러나 현재는 책임감 이외의 다른 여러 가지 인지적 평가내용에 대해 논의가 진행 중이다. Freeston 등(1996)은 강박장애 환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임상적 관찰과 연구를 통해 강박장애 환자들의 왜곡된 신념과 관련된 평가 내용의 영역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1)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과도한 평가: 데카르트 추론(Cartesian thinking), 사고행위 융합 오류(thought-action fusion), 마술적 사고(예: 이 금을 밟으면 우리 엄마가 죽는다) 등
(2) 개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사건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3) 완벽주의와 통제: 완벽하게 확실하거나 완전한 상태에 대한 추구, 생각과 행동에 대한 완벽한 통제의 추구
(4) 위협에 대한 과대평가: 부정적인 사건의 결과가 지니는 가능성과 심각성을 과도하게 평가함.
(5) 생각에 의한 초래된 불안은 받아들일 수 없고 위험하다는 신념
이 각각에 대해 주로 Freeston 등(2001) 및 Whittal과 McLean(1999)이 제안한 치료기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본 논의가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접근이지만 이 중에는 행동적인 치료 기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개입의 목적인 왜곡된 인지의 수정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1. 사고의 과잉 중요성(overimportance of thoughts)
데카르트 추론, 사고행위 융합, 마술적 사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Freeston 등(1996)은 ‘이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고,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와 같은 오류적 사고를 왜곡된 데카르트 추론이라고 지칭하였다. 이 오류에 대해 간단한 사고억제 실험(thought suppression test)을 시도할 수 있다. 즉 중성적인 생각을 원치 않는 생각으로 지정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 때, 의도와 무관하게 그 생각의 현저성과 빈도가 증가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또는 사고 표본법(thought sampling)을 통해 무작위로 주어진 시간 내에 의식에 있던 생각을 추출해 냈을 때, 얼마나 사소하고 중요치 않은 생각들이 많은지를 제시할 수 있다. 더불어 자기감찰 역시 각 환자들이 강박사고 이외의 중요치 않은 생각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음을 인식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치료기법들은 어떤 생각이 의식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지나치게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인지적 평가인지를 직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고행위 융합은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인 책임이나 발생 가능성의 측면에서 동일시하는 인지적 오류이다. 우선 도덕성 융합(moral fusion)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그러한 행동을 실제로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왜곡된 평가이다. 특히, 성적, 공격적, 신성모독적인 생각을 가진 환자들의 경우, 이러한 오류적 평가를 나타낼 때 연속선 기법(continuum technique)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즉 눈금을 통해 양 극단에 가장 악한 사람과 가장 선한 사람을 두고, 이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환자에게 예를 제시하게 한 후, 이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대답하게 한다. 이 경우 많은 환자들이 자신을 최악의 사람으로 위치시킨다. 그러면 치료자는 다른 여러 사람들을 제시하여 각 사람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환자가 직접 정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행인에게 길을 안내한 사람, 파트너를 속인 사람, 아이를 때린 사람, 탈세한 사람, 파트너에게 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전혀 실제 행위로는 옮기지 않은 사람 등을 연속선상에 위치하도록 한다. 여기에서는 반드시 선한 영역에 속하는 예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를 해칠 생각이 있으나 실제 행동으로는 사랑밖에 베풀지 않은) 당신이 실제로 남을 해친 사람만큼 나쁘다는 말입니까?’ 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한다. 이 과정을 치료에서 반복할 경우 환자의 자기지각의 내용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도덕성 융합의 오류에 대해서는 대안해석을 찾는 과정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첫째, 생각과 행동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도덕적인 사람들이란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유혹과 마음을 느끼면서도 양심에 따라 유혹에 반하여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둘째, 의도적으로 나쁜 생각을 하는 것과 나쁜 생각을 갖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한 다음에 오는 역설적인 결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가능성 융합(likelihood fusion)은 생각의 존재로 인해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 인지적 오류는 주로 행동실험을 통해 도전할 수 있다. 즉, 어떤 일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함으로써 그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보라는 요구를 한다. 보통의 경우 이 실험을 통해 생각은 어떤 사건의 발생 여부와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가전제품이 파손될 것이란 생각을 일주일 내내 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경험한 후에, 행동과 실제 결과를 유발하는 생각의 힘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직면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 자체가 부정적인 결과를 일으키는 어떠한 영향력도 지니고 있지 않음을 인식시키고, 부정적인 사고를 의도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없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2. 과도한 책임감(inflated responsibility)
이 오류는 자신이 치명적인 부정적 결과를 예방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중심적인 힘을 지녔다고 여기며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파이차트 기법은 과도한 책임감에 도전하기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인지적 기법 중의 하나이다.(van Oppen & Arntz, 1994). 관련된 결과를 초래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 모든 상황과 사람들의 역할을 명세하고, 직접 환자가 각각의 책임을 분할하여 부여한 후에 최종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몇 퍼센트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 결과는 이전에 자신이 생각하던 주관적 책임감의 비율과 비교된다. 파이차트 기법은 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에게 귀속시키기보다 다양한 상황적 요인을 고려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타내는 파이 중에 자신의 몫이 어느 정도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돕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Freeston 등(1996)은 과도한 책임감을 다루기 위해 법정 절차(courtroom procedure)라는 기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일종의 역할 연기로서 치료자는 판사 역할을, 환자가 검사 역할을 하여 왜 이 환자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검사 역할을 통해 환자 자신이 제시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중립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중 기준 기법(double standard)도 과도한 책임감을 수정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이 주변 사람에게 일어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주목하게 하여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매우 가혹한 평가를 하고 있음을 인식시킬 수 있다.
책임감의 수정을 위해서는 상황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이 상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는 다른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궁극적으로 모든 부정적인 결과를 예방할 수는 없다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수용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과도한 책임감이 오히려 고통을 초래하고 있으며, 자신이 의도하는 안전한 상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시켜야 한다. 만일 치료 중에 어떤 불운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는 책임감과 관련된 즉각적인 생각과 정서를 다룰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생생한 기회이다(Rheaume, Freeston, Leger, & Ladouceur, 1998).
그러나 과도한 책임감은 비교적 탐지해 내기 어려운 인지적 평가이다. 이를 위해 하향 화살표 기법을 정교하게 구사하며, 환자가 두려워하는 결과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갖는 개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탐색해 들어가야 한다(van Oppen & Arntz, 1994; Freeston et al., 1996).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각각의 상황과 연관된 감정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책임감은 느끼지 않는다고 부인하더라도, 자신이 확인행동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죄책감의 존재는 과도한 책임감의 평가가 존재하며 곧 치료 상황에서 부각될 것이라는 뚜렷한 지표로 여겨진다(Whittal & McLean, 1999).
3. 완벽주의와 통제
확실성에 대한 욕구,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욕구,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신념 등이 이에 관련된 평가 내용이다. 여기에는 보통 이분법적인 사고, 흑백논리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성공과 실패, 완벽함과 무가치함, 확신과 무지 등의 극단적이고 경직된 평가가 상황의 판단과 해석을 사로잡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은 경직된 판단 과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생각의 내용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생각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유익하다. 우선 강박사고와 무관한 다른 상황에서의 이분법적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개입하고 점차 그 초점을 강박사고와 관련된 상황으로 옮길 수 있다. 삼분법(trichotomatic)적 사고를 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 하나의 치료 기법이다. 예를 들어 중요도에 따라 학업 수행을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하기만 하면 되는 과제(보충 과제, 기말 리포트에 대한 계획), 잘 해야만 하는 과제(수업 전의 예습, 필수 교재의 학습), 매우 잘 해야만 하는 과제(최종 기말 리포트, 시험공부 등) 등의 구분이 한 예이다. 이를 통해 흑과 백의 중간지점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적절히 잘 하거나 어느 정도만 확실한 것이 오히려 보다 수용할 만하고, 생산적이고, 위험하지 않은 것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Freeston et al., 2001).
행동실험을 통해 고의로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거나 애매모호한 상황을 만들고 예상한 결과와 실제 결과를 비교해 보는 등의 시도는 경직되어 있는 생각의 기준과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는 좋은 방법이 된다. 또한 목표설정에 대한 개입도 필요하다. 보통 완벽주의적인 강박장애 환자들이 자기 능력을 뛰어넘는 막연하게 완벽한 기준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보통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수행 과정에 대한 피드백도 받을 수 있는 분명한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활동에 대해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수행과정 중에 어느 정도 목표를 설정했고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현실적이고 성취하기 어려운 기준을 바라보며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적절히 설정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4. 위협에 대한 과도평가
이것은 부정적인 결과의 발생 가능성과 결과의 심각성을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오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인지적 기법에는 ‘누적 확률 계산(cumulative odds raito)’ 이 있다(Whittal & McLean, 1999). 이는 두려워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위해서 이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열하고 각각의 확률을 계산하여 최종으로 누적된 실제 발생확률이 얼마이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 불이 난다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선행 사건과 각 사건의 발생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담뱃불이 꺼지지 않아야 하고(1/10), 불꽃이 마루로 번져야 하고(1/10), 카페트에 불이 붙어야 하고(1/10), 불이 붙은 것을 발견하지 못해야 하고(1/100), 불을 너무 늦게 발견하고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해야 한다(1/100). 여기에서 최종으로 누적된 발생 확률은 1/10,000,000이다. 강박장애 환자들은 위협 사건에 대한 가능성을 평가할 때, 각 상황마다 존재하는 대안적인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위협 단서와 부정적인 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직선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각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적인 해석을 통해 과잉일반화, 이분법적 사고 등을 같이 다룬다면 결과에 대한 평가에 좀 더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요컨대, 이 방법은 위험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발생확률을 객관화하는 좋은 기법이 된다.
경우에 따라 실제로 파국적인 결과가 정말로 발생하는지 일부러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 행동실험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다른 계좌로 송금을 하는데 번호가 틀려 돈을 영영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 과연 그런 오류가 있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직접 시연을 해 보는 것이다.
조사(survey)를 실시하는 것도 객관적인 기저선 수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확인 유형의 환자들은 자신이 문을 잠근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문이 잠겨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나 동료들 10명에게 각자들이 문을 잠근 기억을 하고 있는가 질문하게 하면, 전형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을 잠갔는지 일상적인 행동에 대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사건의 발생과 동일시하는 오류적인 평가의 대안을 찾고 위협 평가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조사를 실시하기 전에 반드시 결과에 대한 예언을 해야 하고, 이후에 실제 조사 결과와 비교해야 한다. 이 기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조사를 처음 실시할 때는 대안적인 평가를 위한 정보 수집이지만, 이것이 재차 사용될 때는 확신 추구(reassurance seeking)라는 중화행위로 변질된다는 점이다(Whittal & McLean, 1999).
결과의 심각성에 대한 왜곡된 판단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식 질문(Socratic questioning)을 통해 대안적인 관점을 수용하고 행동실험에 참여하도록 안내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위협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하도록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Freeston 등(1996)은 과도한 책임감, 확실성에 대한 욕구, 사고의 과잉중요성 등의 신념이 견고하게 유지될 경우 위협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수정하더라도 그 치료적인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제안하였다.
때로는 강박사고에 내포된 위협 사건이 실제로 객관적으로 매우 심각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대한 생각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럴 경우에는 반드시 강박장애의 특수한 인지적 오류인 사고행위 융합과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개입해야 한다. 어떤 환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에 대해 모순되는 생각을 나타낸다. 즉 부정적인 사건을 생각하는 것이 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인 사건에 대한 생각과 실제 발생 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고, 이를 행동실험을 통해 도전할 수 있다.
5. 불안의 결과에 대한 왜곡된 판단
불안에 대한 신념이 강박장애의 발생에 핵심적인 것은 아니나, 강박장애를 지속시키는 데는 분명히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보통 두 가지 형태의 생각으로 나타나는데, ‘불안은 위험한 것이다’, ‘불안은 뭘 제대로 해낼 수 없도록 만든다’ 와 같은 것이다. 이는 불안과 그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도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가 불안감을 느꼈던 실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Freeston et al., 2001).
예를 들어 가해에 대한 강박사고를 지닌 한 환자는 자신의 불안감으로 인해 통제를 상실하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까봐 두려워한다. 이 환자가 수행하는 중화행위의 목적도 생각의 통제라기보다는 불안감의 통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치료 회기 중에 행동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손에 칼을 쥔 채로 주변 사람을 해치는 생각을 하도록 시킨다. 더불어 중화행위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불안감이 증가하는 와중에 중화행위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치료자나 주변 사람들을 실제로 공격하지 않았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실험의 목표는 불안감이 자동적으로 통제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다 합리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접근의 문제점
이렇게 인지적 접근이 강화된 인지행동치료가 강박장애의 치료에서 희망적인 것은 사실이나, 잘 통제된 치료 성과 연구를 통한 검증은 이제 시작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Freeston 등(2001)은 이러한 인지치료적인 사례이해와 치료가 ERP를 대체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지치료적인 틀 내에서 ERP가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따라서 이러한 인지적 요소가 강화된 인지행동치료는 그 동안 지적되어 왔던 노출치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ERP를 통해 뚜렷한 효과를 경험하지 못했던 일부 환자들을 인지행동치료의 영역 안으로 흡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Whittal과 McLean은 강박장애의 인지행동치료가 아직 발달 초기에 있지만, 특별히 ERP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순수강박사고 유형의 환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하고 있다. Freeston 등(2001)의 연구는 6명의 순수강박사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에 소개된 인지치료를 적용하여 주목할 만한 치료 성과를 보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RP의 응용과 확장의 두 번째 주제인 가족개입을 제안하기 전에, 강박장애에 대한 인지적 접근이 지니는 어려움과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항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Oppen & Arntz, 1994; Whittal & McLean, 1999). 첫째, 환자들이 자신의 인지적 평가를 찾아내지 못하거나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강박적으로 손을 씻는 환자가 이와 관련된 전형적인 두려움은 부인할 수 있다. 또는, 침투적 사고를 예상하는 순간에 중화행동에 몰입하는 환자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인지적 평가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에 노출을 포함한 생생한 실험을 통해 불안을 유발하고 인지적 평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도출해 내야 한다.
둘째, 인지적 평가가 아닌 침투적 사고를 수정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접 종이에 침투적 사고와 이에 대한 인지적 평가를 구분해 적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학대하는 내용의 강박사고 환자가 자신을 머리가 돈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경우 인지적 개입이 되는 평가의 내용은 ‘과연 내가 이 생각이 들었다고 머리가 돈 사람인가?’ 이다. 만약 ‘자신의 아이들을 학대했다’ 는 생각에 대한 증거를 찾고 반증하려다가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셋째, 만일 치료자가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여 환자의 오류적 평가에 도전하지 않으면, 고안된 대안적인 평가 내용이 안도감의 근원으로 중화행위에 사용되거나 사고통제의 방략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사고의 중요성을 인지적 평가로 하며 두려운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마술적인 사고에 몰두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치료에서 찾아낸 대안적 평가는 ‘사고는 행위와 동등한 것이 아니다’였다. 그러나 환자가 이 대안적 평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더 이상 합리적 사고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강박사고가 떠오를 때마다 반드시 떠올려 안도감을 얻게 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불안감을 유발하기도 했다. 대안적인 인지적 평가와 개입이 환자에게 ‘안도감 추구’ 에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치료 기법과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환자들이 치료자의 지지적인 태도와 혹은 치료적인 개입을 안도감을 얻기 위한 근원으로 사용하고자 할 때는 완곡하게 거절해야 한다.
중화행동과 인지재구성은 명확한 차이를 지닌다(Freeston & Ladouceur, 1999). 중화행동은 침투사고나 이와 관련된 불편감을 감소시키고 또는 생각의 의미를 바꾸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각을 제거하고, 통제하고, 예방하고, 완화하려는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로 정의된다. 중화행위는 생각에 즉시적으로 수반되며, 바로 생각을 제거하거나 통제하고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반면에 인지재구성의 치료적 개입은 생각의 존재 이전이나 이후 모두에 효과적으로 시도되며, 중화행동처럼 생각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만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인지재구성은 생각이 발생할 때, 이를 제거하려고 하거나 그 의미를 안전하게 바꾸려고 하는 등의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넷째, 확인, 세척, 반복행위 유형의 환자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으로 두려워하는 결과가 먼 미래에나 발생할 사건인 경우에는 일반적인 행동실험의 적용이 어렵다. 한 가지 방법은 행동실험 중에 상상의 노출을 통해 두려운 결과가 일어났다고 가정하게 하는 것이다(van Oppen & Arntz, 1994). 다른 방법은 미래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그 전에 일어날 만한 시초의 사건 중 눈앞에 닥친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핸드폰으로 인해 뇌종양이 발생할까봐 두려워하는 환자의 경우, 당장 두통이 일어나는 것을 표적으로 하여 행동시험을 시도할 수 있다.
이미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통해서 제시되듯이 강박장애의 영역에서 ERP는 여전히 검증된 최선의 심리학적 치료방법이다. 그러나 그 역시 주요한 제한점을 지니고 있고, 인지적 접근은 그에 대한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지적 접근은 ERP의 대안이나 대체물이 아니다. 인지적 접근에서 사용하는 행동실험 중에 가장 필수적인 항목이 ERP일 것이다. 그러나 행동치료에서의 ERP와 인지적 접근에서의 ERP는 그 기능이 다른 것으로 가정된다. 인지적 접근에서는 ERP가 습관화가 아닌, 오류적인 인지적 평가에 대한 도전과 정보 수집의 방법으로 사용된다. 즉 경험적인 반증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작용한다. 다양한 인지적 기법으로 대안적인 인지적 평가를 찾아내고, 행동실험을 통해 보다 근거 있고 타당한 인지적 평가를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공적인 인지적 접근은 ERP가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치료 상황을 제공할 것이다.
Review 17. PTSD의 인지행동이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인지 모델에서는 충격적 사건에 대한 평가와 기억에서의 문제로 인해 PTSD가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첫째, PTSD 환자들은 충격적 사건을 ‘과거에 일어났던 일’ 로 보지 않고 ‘현재에도 강한 위협이 되는 일’ 로 평가한다. 둘째,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저장되고 인출되는 양상이 일반적인 일화 기억 혹은 자서전적 기억과 다르며, 이로 인해 PTSD 증상이 증폭되거나 유지된다. 또한 PTSD 환자들이 자신의 불안감 등을 통제하고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지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기제들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충격적 사건 및 관련 사건에 대한 평가
1. 충격적 사건에 대한 평가
PTSD 환자들은 충격을 과거에 한정된 사건으로 보지 못하고, 충격 및 거기서 파생된 사건들 예를 들어 주의집중 곤란, 실직 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그것이 ‘현재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먼저 충격적 사건에 대해서는 과잉일반화된 해석이 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나는 재앙을 불러오는 사람’ 혹은 ‘세상은 너무나 위험한 곳’ 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나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사람이다’ 와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환자의 경우 차가 조금만 빨리 달려도 사고가 날 것처럼 생각하는 등 정상적인 범위의 사건들도 더 위험한 것으로 지각하고, 앞으로 재앙이 닥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평가하게 되면 불안감과 공포감이 강해질 뿐 아니라, 관련 상황이나 자극에 대해 회피행동을 하게 되므로 이러한 잘못된 평가가 반증되지 못하고 유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편 충격적 사건 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이나 반응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본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간을 당한 여성의 경우 자신이 전혀 반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 나에게도 성욕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하고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2. 관련 사건에 대한 평가
충격적 사건과 관련하여 파생된 다른 사건들, 예를 들어 자신의 PTSD 증상 자체,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 다음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 충격 때문에 생활과 삶이 실제로 변화된 부분 등을 ‘현재에 위협이 되는 것’ 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PTSD 증상이 유지될 수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그 사건이 반복적으로 생각나고 감정이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해지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등 여러 초기 증상들이 나타날 때, 이를 정상적인 불안반응이며 회복 과정의 일부로 보지 않고 ‘내가 완전히 망가졌구나,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구나’ 등 신체적 · 정신적 건강이 악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 우울감, 분노감, 불안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감정을 해결하고자 사고 억제, 회피 등의 대처방법을 쓰면 오히려 이러한 평가가 잘못된 것임을 반증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한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구들이 환자를 배려하려는 의도에서 일부러 충격적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조심할 수 있다. 이를 환자가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구나’, 혹은 ‘그 일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라고 해석하게 되면 소외감이나 사회적 위축같은 PTSD 증상이 오히려 생겨날 것이다. 또 제3자와 충격적 사건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교정적 재경험을 할 기회가 없어지고,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교정할 기회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가 실제로 환자에게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고 비난할 수도 있는데, 환자가 그 사람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를 ‘내 잘못이었다, 나는 몹쓸 사람이다, 이제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등으로 해석할 것이고, 그 결과 여러 가지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충격적 사건의 결과로 건강, 외모, 직업적 재정적 상황 등 여러 삶의 영역이 부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하여 경제적 손실이나 실직을 겪게 될 수도 있고, 건강이 악화될 수도 있다. 이 사실을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 이제 앞으로는 절대 예전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평가한다면 이는 우울감, 무력감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
PTSD 환자들은 충격적 사건을 ‘의도적으로’ 기억해 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 사건을 회상해 보려고 하면 조직화가 잘 안 되고 단편적으로만 떠오르며, 구체적인 사항을 빠뜨리거나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이때는 그 사건을 과거의 것이 아니라 마치 현재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비의도적 재경험(reexperiencing)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재경험은 생각(thoughts)보다는 주로 감각인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인상은 촉감, 청각 등도 모두 가능하지만 주로 시각적인 형태로 일어난다.
둘째, 감각 인상은 과거 기억이 아니라 지금 막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경험되며, 여기에 수반되는 감정은 충격 당시의 감정과 똑같이 느껴진다. 보통 자서전적 기억을 떠올릴 경우에는 이것은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 내고 있는 것’ 임을 인식하는데, 비의도적 재경험의 경우는 이러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셋째, 충격적 사건 당시에 느꼈던 인상과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를 얻은 다음이라 하더라도, 혹은 당시에 느꼈던 인상이 사실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재경험하는 그 순간에는 충격 당시의 인상을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
넷째, 충격적 사건을 회상하지 않고도 그 사건과 관련된 감정이나 생리적 감각을 재경험할 수 있다. 즉 예를 들어 왜 갑자기 불안해졌는지 모르면서 공포감에 휩싸일 수가 있다.
다섯째, 아주 다양한 자극과 상황에 의해 비의도적 재경험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유발자극은 충격적 사건과 의미적 관련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연합된 단서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강간을 당하던 당시 붉은 벽돌로 된 벽을 보았다면 붉은 색의 벽만 보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심한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이 PTSD 환자들이 보이는 기억의 특성, 즉 의도적인 회상은 잘 해내지 못하는 반면 ‘지금 여기’처럼 생생한 비의도적 재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충격적 사건이 부호화되고 기억 속에 저장되는 방식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 충격적 사건은 자서전적 기억 속에 제대로 정교화되고 통합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적 기억은 의미 단위와 시간적 순서에 의해 저장된다. 자서전적 기억이 인출될 때에는 이러한 의미적 관련성에 기반하기도 하고, 그 사건과 시간적 · 공간적으로 연합된 자극에 의해 인출되기도 한다. 대체로는 전자에 기반하여 자서전적 기억의 인출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의미적으로 관련성이 적은 일상적 일을 할 때에는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비의도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PTSD 환자들에게 있어서 충격적 사건은 의미에 대한 정교화가 잘 되지 않고, 시간적 · 공간적 정보, 향후 그리고 이전 정보의 맥락이나 다른 자서전적 기억의 맥락 속에 잘 통합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충격적 사건의 의미가 잘 정리되어 기억에 저장되지 못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회상할 때 의미에 기반한 인출이 어렵고, 과거라는 시간적 맥락도 충분히 부여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여기’ 적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속해서 내가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껴 왔지만 ‘지금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는 것처럼 향후 정보와 충격적 기억이 의미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2. S-S와 S-R 연합이 강하다
PTSD 환자들의 경우 충격적 사건과 관련된 주변 자극에 S-S와 S-R 연합이 특히 강하게 일어나며, 이 연합된 자극에 의해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과 정서 반응이 유발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러한 형태의 학습은 유기체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하는 데 도움이 된다. PTSD에서는 충격적 사건 직전이나 직후에 있었던 현저한 자극이 자기에게 닥칠 위험을 예언하는 것과 연합된다. 또한 이러한 연합적 기억은 시간적으로 근접했던 단서에 의해 비의도적으로 인출되기 때문에 환자는 왜 이런 기억이 나고 재경험하게 되는지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재경험 증상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면 환자는 예를 들어 ‘아, 붉은 벽돌을 보았기 때문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며 지금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된다.
3. 지각적 점화가 강하다
충격적 사건과 시간적으로 연합된 자극에는 강한 지각적 점화(일종의 암묵기억) 효과가 있어서 이 자극의 지각역이 더 낮아진다. 때문에 이러한 단서들은 다른 자극보다 더 쉽게 인식되고 결과적으로 비의도적 재경험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부적응적 행동 전략과 인지 처리 양식
PTSD 환자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여 위협과 증상을 통제하려고 한다.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가 여부는 충격적 사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리고 충격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대처전략은 다음과 같은 기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부적응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첫째, 대처전략 행동을 함으로써 PTSD 증상이 직접적으로 유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고 억제를 하면 침투적 회상의 빈도가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악몽을 꿀까봐 잠자리에 늦게 들게 되면 집중력 약화, 신경질, 고립감 등의 PTSD 증상이 증폭될 수 있다. 또한 위협단서에 대한 선택적 주의도 침투적 사고와 감정의 빈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둘째, 부적응적 대처행동을 하게 되면 충격적 사건과 그 관련 사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변화되거나 반증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안전행동을 하게 되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파국적 결과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
셋째, 충격적 기억이 일반적인 자서전적 기억과 같은 양상으로 변화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끊임없이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충격적 사건을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려고 노력하게 되면, 충격적 기억을 의미적으로 정교화하여 그 경험을 시간적 · 공간적 정보, 이전과 향후 정보 및 다른 자서전적 기억 맥락에 통합하고 연결시키기 어렵게 된다. 또한 충격적 사건에 대해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평가, 예를 들어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등의 평가도 변화되지 못한다.
충격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나 관련 자극을 회피하는 것도 부적응적 평가가 변화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기억의 특성이 변화되는 것도 막음으로써 PTSD를 지속시킨다. 또한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약물이나 술을 마시게 되면, ‘내 감정을 그대로 두면 통제력을 잃을 것이다’ 와 같은 해석이 변화되지 못한다. 충격적 사건 이전에 중요한 일이었던 활동들, 예를 들어 스포츠나 취미 등을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다. 충격과 그 결과에 대해 반추하는 것도 충격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강화하게 만들고 긴장감, 우울감이나 무망감 등을 증가시키게 된다.
치료적 함의
위의 모델에 따르면 치료적 변화는 다음의 세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첫째, 침투적 재경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충격에 대한 기억을 정교화하고 이전 경험이나 향후 경험과의 맥락에 통합시켜야 한다. 둘째, 충격적 사건과 관련 사건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수정해야 한다. 셋째, 기억이 정교화되거나 부정적 평가가 수정되지 못하게 만드는 역기능적 행동 및 인지적 전략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
1. 평가 면접
먼저 환자에게 그 사건을 회상해 보도록 하고,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점,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인지 질문한다. 지금 현재 강한 고통을 유발하는 기억은 어느 부분인지 탐색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다.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면 환자의 생각과 평가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이 무엇인지, 자기 증상과 미래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인지도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에서 빠진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사건의 순서가 얼마나 뒤죽박죽인지, 비의도적인 재경험, 즉 침투적 사고가 ‘지금-여기’ 적 성질을 띠는 정도는 어떠한지도 평가해야 한다.
또한 부적응적인 인지 및 행동적 대처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그 사건을 접어두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충격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회피하는지, 침투적 사고를 어떻게 다루는지, 충격적 사건을 자꾸 생각하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도록 스스로를 내버려두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지, 반추를 하는지, 만약 한다면 무슨 내용인지 등을 물어볼 수 있다.
2. 치료의 논리 제공
먼저 환자에게 PTSD 증상은 비정상적 사건을 겪으면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임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환자의 증상을 구체적으로 함께 검토해 보고, 환자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증상도 사실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알려 주면 환자가 안도감을 얻고 왜곡된 평가를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환자가 충격적 기억을 다루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대처전략, 예를 들어 사고 억제나 주의 분산 등의 행동은 이제까지 다른 가벼운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데는 유용했겠지만 지금은 반대로 증상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설명해 준다.
셋째, 치료과정 중에는 충격적 사건을 피하지 않고 자세하게 생각하고 회상해 봄으로써 이를 완전하게 ‘처리하고’, 증상을 유지시키는 요인들을 점차 수정해 나갈 것임을 알려 준다. 치료의 핵심 요소는 충격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이 때, 컵이 산산조각 난 찬장을 정리하려면 이를 잘 들여다보고 나서 정리해야 찬장 문이 잘 닫힐 수 있다는 등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면 도움이 된다.
3. 실험과 교육
실제로 간단한 사고억제 실험이나 반추 실험을 해 봄으로써 그 역설적 효과를 보여줄 수도 있다. 또 약물 치료, 건강 문제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여러 가지 왜곡된 부정적 평가가 수정될 수도 있다.
4. 자기 삶을 새로 시작하기(reliving)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과 공포감이 반복적으로 엄습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기 삶이 그 사건에 완전히 얽매여 버렸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환자들에게 자신의 삶이 지금 지속되고 있고 스스로 생활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충격적 사건 이후 그만두었던 활동들, 예를 들어 운동을 하거나 모임에 나가는 것 등을 다시 시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5. 재체험과 인지적 재구성
환자는 치료자와 함께 있는 안전한 상황에서 충격적 경험을 떠올려 재체험하고, 이를 말로 옮기거나 글로 써 본다. 재체험은 몇 가지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충격적 기억이 의미적으로 정교화되고, 맥락 정보 속에 통합될 수 있다. 둘째, 재체험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충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셋째, ‘충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미치거나 통제력을 잃거나 죽을지 모른다’ 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재체험 자체가 이런 해석을 검증하는 강력한 행동 실험이 된다.
환자에게 본인 마음의 눈으로 충격적 사건을 재체험하라고 지시한다. 즉 가능한 한 생생하게 그 사건에 대한 심상을 떠올려 보도록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모두 떠올리도록 한다. 동시에 말로 자신이 재체험하고 있는 바를 현재 시제로 기술하도록 한다. 그 기억 속에 머물도록 돕기 위해서 ‘무엇이 보입니까?’, ‘어떤 생각이 스쳐갑니까?’ 등의 질문을 할 수 있다. 충격적 사건 가운데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재체험의 여러 시점에 걸쳐 고통의 수준을 평정한다. 처음에는 그 사건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시작해서 그 일이 끝나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까지 사건 전체에 대해 재체험을 실시하고,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 영역을 좁혀 재체험을 반복한다.
재체험 연습을 하고 나면 적절한 인지재구성 기법을 사용하여 충격의 핵심적 순간과 관련된 생각과 신념을 파악하고 논의한다. 대안적 관점이 확인되고 나면 이 정보를 다음번 재체험 연습에 포함시켜 해보게 된다.
치료가 진행해 감에 따라 충격적 기억의 특성도 변화한다. 기억이 점차 일관적이고 조리 있게 되고, 감각적 · 운동적 요소가 옅어지며, ‘지금-여기’ 적 특성이 없어지고 정상적 회상과 유사하게 되어 간다. 단순히 재체험만 반복해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추가적인 인지적 재구성을 많은 시간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재체험 자체가 정서적으로 힘든 과정이므로, 환자가 너무 힘들어 할 때에는 인지적 재구성을 다소 미루는 등의 조정이 필요하다.
언어적 · 심상적 인지 재구성이 특히 필요한 환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분노, 죄책감, 수치심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경우, 둘째, 충격적 사건 동안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자기 자신의 부정적 측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 셋째, 오랜 시간 동안 폭력을 경험한 경우이다. 특히 세 번째의 경우 자기가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만한 나쁜 사람이라는 자기개념이 내재된 경우가 있으므로, 재체험을 하기 전에 상당한 인지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6. 직접 노출(in vivo exposure)
충격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그와 관련된 자극을 회피하지 않고 이에 노출시키는 것은 충격적 사건이 지금이 아니라 단지 ‘과거의 사건’ 임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강력한 방법이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 가 보고, 충격 동안의 장면과 지금의 장면이 어떻게 비슷하거나 다른지를 논의해 보고, 충격적 사건 동안 있었던 위험한 자극과 충격과 우연히 동시 발생한 무해한 자극을 변별해 볼 수 있다.
Review 18.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의 인지치료
치료의 목표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에 있어 인지행동 치료의 기본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나는 못나고 가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사랑받는 것이 필요하다” 는 왜곡된 핵심 신념이 내재되어 있음을 일깨워 주고, 이를 좀 더 현실적이고 적응적인 것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이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인지치료적’ 인 사고방식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은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이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며, 객관적 증거보다는 자신의 인상이나 느낌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 이들로 하여금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연습을 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체계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이도록 방법을 가르치며, 이를 반복해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인지치료의 두 번째 목표이다.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
1. 치료자는 전지전능한 구원자가 아님을 주지시킨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는 치료자를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생각하고, 힘든 점을 얘기하고 나면 치료자가 정답과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치료자는 ‘환자가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매달리고 있구나’, 혹은 ‘나더러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은근히 조종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면 치료자 자신도 그래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게 되고, 환자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거나 짜증스러워지기도 한다. 치료자는 이러한 환자의 요구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이를 한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치료자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으며, 최종적으로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료자와 환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환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치료 시간 동안에 환자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환자 스스로 그런 역할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고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점은, 환자의 기대대로 치료자가 ‘구원자’ 의 역할을 하게 되면 환자의 무기력감, ‘난 역시 혼자서는 안 된다’ 는 핵심 신념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환자의 의존적이고 요구가 많은 태도 때문에 치료자가 부담과 짜증을 느끼게 될 때, 이것이 환자가 다른 대인관계에서도 반복적으로 유발하는 감정이자 세상과 타인에 대한 환자의 신념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치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2. 치료자는 환자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서만 강화를 해 준다
치료자는 치료 시간 동안 환자의 부적응적 행동에 대해서는 강화하지 말고, 환자가 적응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보일 때 이를 놓치지 않고 강화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은 외모나 행동이 매력적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이 드라마틱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치료자에게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다. 치료자도 환자와의 대화를 즐기며 마치 환자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환자의 부적응적 양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치료자는 늘 자신과 환자와의 관계를 한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 특별대우를 요구할 때는 이를 치료의 기회로 삼는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은 치료비를 덜 받거나 치료시간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자신만은 ‘특별대우’ 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당한 요구를 합리적인 이유로 들어 주지 않는 것도, 이들에게는 ‘나를 거부하는 것’ 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요구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치료자가 비용이나 시간 등의 규칙을 설정해 두는 것이 자신을 거부하는 행위가 아님을 환자가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치료자는 치료에 명확한 한계를 정해 두고 이를 실행하는 데 단호해야 하며, ‘우리가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당신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지 당신을 거부하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암묵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전달해 주어야 한다. 한편 규칙이나 약속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자기주장을 할 때는 오히려 강화하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구체적 치료지침
1. 구체적인 치료 목표를 함께 의논하여 정한다
이 작업은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를 치료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치료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고, 치료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관심이나 해결책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이들은 지루함과 불만을 느끼고 쉽게 치료를 그만두어 버리곤 한다.
치료 목표를 정하는 단계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를 치료에 계속 나오도록 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즉 환자 본인에게 절실한 의미로 다가오고, 장기적이고 원론적인 것뿐 아니라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이익도 가져다줄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쉽고 구체적이며 단기적인 목표를 세워 이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관여하고 작은 목표 달성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에게 치료 목표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 모호하면서도 원론적인 목표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치료자가 나에게 이런 것을 기대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두리뭉실하고 모호한 목표를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더 기분이 좋아지고요”, “더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더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기를” 등등이다. 그러나 목표는 아주 구체적인 언어로 설정되어야 하고, 또 내담자에게 정말로 중요하게 느껴져야 한다. 스스로 이런 목표를 ‘원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것은 안 된다.
2. 치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료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의논하여 합의 한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이 치료시간에 와서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대개 지난 한 주일 동안 있었던, 혹은 과거 어느 때인가 있었던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소소한 갈등에 대해서 드라마틱하게 얘기하고, 치료자가 이에 관심을 갖고 들어 주고 맞장구쳐주며 자기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환자가 누적된 감정을 분출하고 치료자에게 이해받는다고 느낌으로써 서로간의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과정만 반복된다면 이는 환자의 의존성과 자기 및 타인에 대한 부정적 신념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반대로, 치료자가 치료 목표만 생각하고 이에 맞추어 나아가려고만 한다면 환자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지난 한 주간에 환자에게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났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 의논하여 치료시간 중 일정한 분량(예: 치료 1시간 중 전반 20분) 동안은 지난 주일에 있었던 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로 정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계속 진행해 오던 치료 목표를 향한 작업을 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치료자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선택한 결과라는 생각과 통제감을 갖도록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감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약속을 해놓고도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은 자신의 얘기를 계속 들어 주기를 원하거나, 약속된 시간이 지나 다음 작업을 진행하려 할 때 거부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그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치료자는 친절하고 따뜻한 어조로, “지금 그 얘기가 흥미롭긴 하지만 우리가 논의하기로 합의한 목표와 어떻게 관련이 되지요?”라고, 환자가 논점에서 벗어날 때마다 일관되게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중심을 찾도록 도와준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환자가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게 해 준 다음, 그런 행동이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손해를 입힐 것인지 목록을 함께 작성해 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행동의 의미를 깨닫고 좀 더 적응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치료 기법
1. 역기능적 사고용지 기록
지난 한 주간 부정적 감정을 느꼈던 사건에 대해, 자동적 사고, 합리적 대안적 사고,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 등을 기록하는 숙제를 하게 한다. 이러한 역기능적 사고용지를 기록함으로써 기분이 더 나아질 수도 있고,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상황에서 자주 떠올리게 되는 자동적 사고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고, 인상이나 느낌에 근거한 모호한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역기능적 사고용지의 의미나 기록하는 방법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해 주고 인내를 갖고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그냥 줄줄 써오는 경우가 많다. 일단 무언가를 기록하려 했다는 노력에 대해서는 칭찬과 보상을 해주어야 하지만, 다시 한 번 역기능적 사고용지 기록의 의미를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을 읽고 치료자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겠지’ 라는 희망을 갖고 어떤 글을 써오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치료자에게 전달해야겠다는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면 이러한 글도 써오도록 허용하되, 역기능적 사고 용지도 반드시 함께 작성해 오도록 해야 한다.
2. 행동 실험
부적응적인 자동적 사고와 관련된 상황 속에서 실제로 어떤 행동을 시도하는 ‘실험’을 함으로써, 자동적 사고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검증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 실험은, 환자 스스로 이 정도면 내가 도전해 볼 만한 실험이라고 생각되는 정도로, 치료자와 환자의 의논 하에 매우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은 언어적 사고보다는 심상의 형태를 띤 인지를 많이 사용하므로 이를 역이용하여 생생한 심상을 수정해 보는 것도 유익하다. 자동적 사고를 언어적으로 도전할 때는 치료자가 자동적 사고의 역할을 하고 환자가 좀 더 적응적인 반응의 역할을 맡아 서로 대화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충동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즉흥적이고 타인의 관심을 끌고 조종하려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으면 자기통제가 점차 가능해진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장단점 목록을 적는 기법도 대처 기술 증진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치료 회기 동안 치료에 협조하기를 싫어한다면, 협조하는 것의 장단점을 생각해 보도록 할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은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등 감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늦게 들어왔을 때 무조건 화를 내는 히스테리 환자가 있다고 할 때, 그녀에게 바로 그런 반응을 보이기 전에 자신이 이 상황에서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 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다른 대안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해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한편 이들에게는 주장성을 훈련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자신의 바람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과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도록 돕는 것 이외에도,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관심과 사랑을 받을까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볼 여력이 없었고, 이 때문에 정체감이 안정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히스테리 환자들은 ‘정체감’ 이나 ‘자기감’ 에 대해 역기능적 사고를 갖고 있다. 이것이 무언가 대단한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인지적인 기법을 통해 주장성을 기르고 세부적인 데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체감이 발달하게 되는 것임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또한 관계가 틀어지거나 상실하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라는 신념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가 결렬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해 보고,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회상하도록 하면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파국적인 생각을 없앨 수 있다. 또 아주 작은 ‘거절’ 을 경험하는 행동실험을 시도하는 것도 좋다.
“나는 무능하고 부족하기(inadequate)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다” 는 핵심 신념은 치료적 작업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즉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대처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이 자기효능감을 증가시키며, 본인에게 능력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논리적 사고를 잘 하지 못하므로, 작은 성취가 있을 때마다 치료자가 이를 명료하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
때로 히스테리 환자들은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으로 변하면 감정의 풍부함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 때 치료자는 치료의 목표가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임을 분명히 해 준다. 도 자동적 사고에 도전하는 데는 이들의 ‘강점’ 인 드라마틱한 방법을 사용해 보도록 격려할 수도 있고, 생생한 상상력 등을 적응적으로 사용해 보는 것도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므로 구조화된 인지치료 집단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집단성원들은 피드백을 통해 환자의 주장성을 강화해 주고 역기능적이고 과도한 정서반응을 소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Review 19.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이해와 치료
개념적 정의
반사회성 성격(antisocial personality)이라는 용어는 DSM-II(1968) 출간과 더불어 선호된 용어로 반사회적인 행동에 대한 기술적(descriptive)인 설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sociopath, psychopath와 반사회성 성격(antisocial personality)이 서로 혼용되어 왔는데, 각각의 개념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Sociopath는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장애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Psychopath는 Cleckley(1941)의 설명에서 출발한 역동적 구성개념으로서, ‘사랑할 능력이 없고,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고, 후회나 수치심이 없으며,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Meloy(1988)는 ‘공감력이 전혀 없고 정서적인 애착보다는 힘에 기초한 가학-피학적 대인관계 스타일’ 이라고 기술하였다. Person(1986)은 ‘장기적인 결과보다 단기적인 불안의 감소가 더 중요한 충동 장애’ 로 개념화하기도 하였다. Kernberg(1984)는 자기도취성 성격장애의 하위개념으로 상정했는데, ‘가장 원시적인 psychopath’ 부터 ‘다소 정직하지 못한 정도의 반사회적 특성을 지닌 자기도취성 환자’ 에까지 이르는 자기도취의 연속선상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Cleckley(1941/1976)는 일차적 psychopath와 이차적 psychopath를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psychopath는 외현적으로 정신증은 아니지만 그 행동이 혼란스럽고 현실과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바 그 기저에는 정신증이 시사되는 사람이다. 일차적 psychopath는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 행동을 하면서도 외적으로 불안이나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면서도 어떤 긴장, 회의, 후회도 느끼지 않는 등 도덕적 양심이 결여되어 있어 보인다. 이차적 psychopath는 위와 같은 착취적 행동을 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잘못이 초래할 부정적인 결과를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동 조절이 어렵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Hare(1985)는 psychopathy에 대해 다음과 같은 준거 항목들을 제시하였다.
1. 피상적으로는 매력 있어 보임(glibness/superficial charm)
2. 웅대한 자기가치감(grandiose sense of self-worth)
3. 자극을 추구하고 쉽게 지루해 함(need for stimulation/proneness to boredom)
4. 병적으로 거짓말을 함(pathological lying)
5. 교활하며 남을 조종함(cunning/manipulative)
6. 후회나 죄책감이 없음(lack of remorse or guilt)
7. 피상적 정서(shallow affect)
8. 냉담하고 공감력이 결여됨(callous/lack of empathy)
9. 남에게 기생하여 살아감(parasitic lifestyle)
10. 행동 통제가 어려움(poor behavioral controls)
11. 성행동이 문란함(promiscuous sexual behavior)
12. 어려서부터 행동 문제가 있었음(early behavior problems)
13.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결여됨(lack of realistic, long-term plans)
14. 충동성(impulsivity)
15. 무책임함(irresponsibility)
16.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음(failure to accept responsibility for own actions)
17.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함(many short-term marital relationships)
18. 청소년기 비행(juvenile delinquency)
19. 조건부 석방 시기에 다시 범행을 함(revocation of conditional release)
20. 범죄에 재능이 있음(criminal versatility)
원인론
1. 유전적 환경적 관점
첫째, 반사회성 성격장애(이하 ASPD)의 병인론에서는 생물학적 요인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들의 공격성은 호르몬 분비와 같은 신경화학적 요인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 각성수준이나 자극에 대한 민감성 등이 유전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신분열적 사람들은 각성수준이 너무 낮아서 사소한 자극에도 흥분하고 많은 자극이 주어지면 쉽게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에, ASPD들은 각성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더 많은 정도의 자극이 들어와야만 흥분할 수 있다.
둘째, 잘못된 가정환경과 부모의 양육방식의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이에게 적대적, 거부적, 단정적, 권위적인 부모의 태도는 아이가 유년기에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과 인연을 맺게 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아동의 부모는 아동의 잘못된 행동을 회피하거나 특이한 방식으로 강도 높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주의를 주는데, 이렇게 혼란스럽고 원칙 없는 양육방식은 아이의 탈선행동을 증가시키게 된다.
2. 정신역동적 관점
첫 번째로 어머니와 아동 간의(mother-child) 초기 관계에 문제가 있을 경우 ASPD가 생겨난다는 견해가 있다. ASPD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받거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과거력을 지니고 있고, 이로 인해 대상 항상성이 적정 발달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ASPD들은 자신을 지속적으로 돌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내면화하지 못한다(lack of a soothing maternal introject). Kernberg(1984)는 자기도취성 성격장애자들의 웅대한 자기는 실제 자기, 이상적 자기, 이상적 내적 대상이 서로 융합된 것이라고 보았는데, psychopath의 경우 내적 대상은 공격적 내사물이며, 이는 신뢰할 수 없고 아이에게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기본적 신뢰감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 발달과정에서 분리-개별화가 완성되기 이전에, 그리고 대상 항상성을 획득하기 이전에 곤란을 겪게 된다. 부모에 대한 정서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빗나가게 되며, 그 결과로 이후의 발달과정에서 모든 사회적 관계 혹은 정서적인 경험으로부터 단절되는 양상을 보이고, 타인을 향해 권력이나 파괴력 등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지배하려는 가학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제반 관계에서 단절됨으로써 정상적인 발달단계를 거치지 못하게 되고, 오이디푸스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사람을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을 지닌 독립적인 개인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타인을 해치는 경우에 갖게 되는 불안이나 우울, 죄책감 등을 느낄 줄 모른다.
둘째,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초자아 발달의 문제로 개념화하기도 한다. 심한 ASPD들의 경우, 자신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려는 노력도 아예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 ASPD들은 희생양이 된 사람들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대응하고,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지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내재화 기능의 심각한 손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반적인 초자아 발달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 준다. 결국 부모의 거부적 태도, 부모에 대한 반감, 부모와의 동일시 실패 등으로 인해 부모에 의해 전달되는 사회적 요구나 규범 등을 내재화하지 못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해도 스스로는 아무런 불편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셋째, 이들에게는 분열(splitting)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범죄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해리상태에 있었다거나 중다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범죄를 저지른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넷째, ASPD를 자기도취성 성격장애의 원시적 변형물로 개념화하기도 한다. 평가절하나 투사와 같은 원시적 방어에 의존하며, 기저의 경계선 성격 구조를 공유하는 병리적인 내적 대상관계로 개념화한다. 자기도취적인 사람이나 psychopath 모두 지루함이나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 Psychopath의 경우에는 이런 감정을 더 공격적으로 처리한다. 이들은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데, 자기도취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타인을 조종하는 일차적 동기가 자존감을 보다 안정화시키려는 것인 반면에, psychopath의 경우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파멸시키고 굴욕을 주려는 동기에 기인한 것이다. Psychopath는 권력, 힘, 공격 등에 의한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학적이고 잔인하게 행동한다. 이는 자신을 학대하고 무시했던 부모상에 기반을 둔 이상적 대상과 관련된다.
Kernberg(1984)는 다른 자기도취자와 구분되는 psychopath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타인과의 관계에서 애착보다는 공격성과 힘이 특징적이다.
2. 타인에 대한 잔인하고 가학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듯이, 가학적인 초자아가 발달되어 있다.
3. 학대하고 무시하는 부모상에 기반한 매우 공격적인 내사물을 이상적 대상으로 내면화한다.
4.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는 데 무관심하다.
5. 착취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 외에 어떤 가치체계도 따르지 않으려 한다.
3. 인지행동적 관점
Beck과 Freeman(1990)에 따르면, ASPD들은 자신을 외롭고 자주적이며 강한 힘을 지닌 인물로 지각한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이 사회에 의해서 학대당하거나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당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ASPD들의 핵심 믿음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나는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겁쟁이다. 내 밥이다’, ‘다른 사람들이 착취했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착취할 수 있다’ 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사회의 규범이나 규율, 제한 등을 어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ASPD들은 즉각적이고 개인적인 만족을 강조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야기될 결과를 최소화하여 지각하려는 이기적 편향을 지니고 있어 종종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된다. 또 자신은 항상 옳다는(self-righteousness) 신념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에 일체의 의문을 품지 않는다. 앞으로 닥쳐 올 일의 결과나 전망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미래에 대한 염려의 결여는 강박적 환자들이 나타내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는 정반대 극단에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은 ASPD들이 흔히 보이는 신념이다.
1. 정당화: 내가 이것을 원하므로 혹은 피하고 싶어 하므로 나는 이렇게 행동해도 된다.
2. 생각이 곧 믿음이다: 내 생각과 감정은 전적으로 정확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3. 나는 완전무결하다: 나는 항상 좋은 선택만 한다.
4. 감정적 추리: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내가 옳다고 느끼므로 나는 옳다.
5. 타인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행동을 직접 좌지우지 않는 한 그들의 생각은 내 결정과는 무관하다.
6.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결과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도 상관없다.
Kagan(1986)은 ASPD들이 도덕적 성숙과 인지 기능에서 발달적 지연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Kohlberg의 도덕 발달단계 중에서 ‘이차적 인식 수준(second epistemological level; Erikson의 latency-age child)에 머물러 있으며, Piaget의 인지발달단계에서는 구체적 조작기 수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인지적 한계로 인해 ASPD들은 타인의 관점을 자기 것으로 동시에 공유할 수 없고, 역지사지해서 생각하지도 못한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생각을 하며 오직 자신의 소망이나 충동에 따라 행동한 후에 타인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지를 고려한다.
Erikson(1950)의 개념화를 빌자면, 심리사회적 발달과정에서 ‘근면성’ 이슈에 빠져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 계획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Kagan은 sociopath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의 한계를 넘어 타인의 권리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ASPD에게 불안이나 수치심과 같은 정서를 느끼게 하여 그의 도덕적 구조를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인지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도덕적 · 사회적인 행동을 증가시키도록 해야 한다. 즉 구체적인 조작단계에서 벗어나 보다 추상적인 사고를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고려할 줄 아는 인지적 성장(cognitive growth)을 증진시키는 방향의 치료가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치료
이처럼 인지적 성장을 촉진하는 Kagan(1986)의 전략에 근거하여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는 구체적 사고와 자기결정 수준에서 발전하여 형식적 인지 조작, 추상적 사고 능력과 타인에 대한 고려 능력이 생겨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1. 인지치료 목표
ASPD의 인지치료 과정은 인도된 토의(guided discussion), 구조화된 인지 연습 및 행동 실험을 통해 환자로 하여금 좀 더 고차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고와 행동 방식의 위계적 수준을 나누어 보면, 가장 하위 단계 수준에서는 자기관심사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보상을 얻거나 즉각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선택을 하며, 타인을 고려하지 못한다. 이 단계에서는 역기능적 신념이 거의 절대적으로 환자들을 지배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며, 자신에게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좋다고 굳게 믿으며, 교정적 피드백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다.
그 다음 수준에서는, 자기 행동의 의미를 인식하고 이것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소 이해하게 되며, 좀 더 장기적인 자기 이익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역기능적 사고와 행동 개념을 환자가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이전의 생활 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대안적 해결책을 검증해 보도록 격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타인의 관점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이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정보를 취하고 그에 따라 본인의 행동을 수정할 수도 있게 된다.
도덕 발달의 최고 수준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있기 때문에 가장 최상위 수준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다. 이 수준에서는 책임감이나 타인에 대한 고려 혹은 배려를 보이게 되는데, 여기에는 타인의 욕구와 소망에 대한 존중, 사회 이익을 위해 원칙을 지키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전 수준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얻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특정 조건하에서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만 관심과 염려를 보이지만, 이 수준에서는 타인의 욕구 혹은 사회 일반의 욕구를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질서와 규칙에 대한 존중을 보이고, 타인의 안녕을 염려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관여할 수 있으며, 대인관계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된다. ASPD를 치료함에 있어서 두 번째, 더 나아가 세 번째 수준으로 인지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 목표라 하겠다.
2. 구체적 개입
ASPD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인식할 수 없고 불편감도 거의 느끼지 못하므로 치료에 관여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먼저 치료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다루기 위해, 당신의 문제는 아동기나 초기 청소년기에 그 뿌리가 있으며 장기간 동안 발달하여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갖는 생활양식의 장애라고 간략하게 요약하여 말해 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려 주고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며 장애 정도나 치료 진행을 봐서 회기는 50회기 혹은 그 이상 진행될 것임을 말해 준다.
치료를 이해시키기 위한 일반적 전략으로, 치료란 환자가 원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얻고 독립성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상황을 평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와 함께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해 줄 수 있다.
환자가 치료에 관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회기에 규칙적으로 참가하고, 토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숙제 계획과 완성에 관여하도록 한다. 이러한 지침을 설명함으로써 치료가 강제적이 아닌 유익한 활동이라는 관점으로 환자를 이해시키려고 시도한다. 환자가 이에 순응하지 않으려 할 때, 예를 들어 약속을 어기거나 회기 동안 적대적으로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으려 하거나 숙제를 하려 하지 않을 경우, 치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물어야 한다. 치료에 참여할 것을 격려하고 이해시켜도 별다른 소용이 없다면 치료자는 약 4회기 무렵에는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환자와 논의해 보아야 한다.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 을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가족 치료, 집중 입원치료 프로그램, 부분 입원 프로그램, 혹은 보호관찰소로 재의뢰하는 것 등의 대안적 서비스를 약 2주간 먼저 받도록 할 수 있다. 환자에게 유익할 것이 분명할 때에만 심리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때로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으며 이때는 치료에 대한 관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환자를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치료를 계속해야겠다는 압박감을 치료자가 느낀다면, 이는 ‘내가 환자를 구원해야 한다’ 는 역기능적 가정 하에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를 자기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보호해 줌으로써 치료자가 환자의 반사회적 행동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 된다.
환자의 문제 목록을 논의하려 할 때 환자가 문제를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환자에게 문제가 있음을 억제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하면 라포가 손상되고 치료를 회피하거나 그만두게 되거나, 힘겨루기가 지속될 수 있다. 그 대신 치료자는 환자에게 ASPD 진단 준거를 들려주고 이를 환자의 과거력과 비교해 볼 수 있다. ASPD가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장애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이것이 친구나 가족으로부터의 고립, 타인으로부터의 물리적 상해, 혹은 장기 투옥 등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면 환자는 더 심각한 결과가 오기 전에 치료를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자기 문제를 장애의 증상으로 이해한 환자들은 나쁜 행동으로 비난받는다는 느낌을 덜 가질 수 있다. 이를 출발점으로, 치료자는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들의 장점과 단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결정해 볼 수 있도록 인도된 탐색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어떤 선택들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치료자는 서로 다른 문제 영역을 개관하고 다양한 선택에 대해 ‘위험-이득 비율’을 평가하는 구조화된 포맷을 사용할 수 있다. 먼저 현재 문제가 있는 상황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상황에 대한 모든 사실을 목록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특정한 대인관계, 직업적 상황, 혹은 현재 건강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영역에 대한 만족도를 0~100까지 평정하도록 한다. 다음, 그 상황과 관련하여 가능한 많은 선택사항을 적어 보도록 하는데, 여기에는 현재 본인이 하고 있는 부적응적 행동과 좀 더 적응적인 대안적 행동이 모두 포함된다. 그 다음에는 각 선택의 장점과 단점, 이익과 손해가 무엇인지를 적어 본다. 이 때 환자가 간과했던 부적응적 행동의 단점이나 좀 더 적응적인 선택의 장점을 지적해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자로 하여금 각 선택이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 0~100까지 평정해 보도록 한다.
3. 환자 - 치료자 관계
치료자는 자신의 역할이 중재자나 심판의 역할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평가내리고 선택하는 것을 돕는 조력자 혹은 협력적 파트너이며, 이러한 평가와 선택에 있어서 전문가임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Review 20. 변증법적 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 DBT)
DBT의 정서 이론
DBT에서 정서는 주관적인 감정 상태 외에도 두뇌의 생화학적 반응, 생리적인 신체변화, 정서에 관련된 행동 성향(예: 슬픔 - 위축; 분노 - 공격; 공포 - 도피) 등 유기체의 총체적인 반응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서의 표현은 표정 및 자세의 변화, 언어적 표현,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동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러한 행동은 유기체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므로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유지된다. DBT의 이론에서는 특히 정서가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이 지니는 의미를 인식하게 하고 사건에 대한 지각과 해석을 확증한다는 점에서 자기-타당화의 기능을 지녔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정서 반응을 정확하게 탐지하고 인식하는 것은 정서의 조절에서도 매우 핵심적인 측면으로 부각된다.
DBT에서 본 경계선 성격장애: Linehan의 BPD 이론
DBT 이론은 기본적으로 생물-사회학적 이론이다. 경계선 성격장애(BPD)는 정서적 취약성을 지닌 사람이 정서 경험이 무시되는 환경(invalidating environment)에서 성장하면서 초래되는 결과이며, 그 정신병리의 핵심은 정서조절의 장애라고 제안된다(Linehan, 1993).
1. 정서적 취약성
정서적 취약성을 지닌 사람들은 자율신경계가 저수준의 스트레스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기저선 수준의 평형으로 회복되는 데 보통 사람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DBT 이론에서는 이러한 정서적 취약성을 생물학적 취약성 소인(biological diathesis)의 결과라고 간주한다.
2. 정서 무시 환경(invalidating environment)
이는 아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반응과 경험이 주변의 중요타인들(signifi-cant others)에 의해 부적절한 것으로 무시되고 부인되는 환경을 의미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동의 의사소통이 진솔한 감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기 내면에 대한 정확한 표현으로 여겨지더라도 주어진 상황에 비추어 적절하지 못한 감정으로 간주된다. 이 상황에서 아동은 내적 경험의 내용을 표현할 때, 무시되고 경멸당하고 처벌되는 역기능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경우 성학대를 당한 고통을 호소해도, “네 삼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라며 정서적인 고통을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있다. BPD 환자들의 50~70%가 아동기에 친인척에 의해 성적인 혹은 신체적인 학대를 당한 과거력을 보고하는데, 이와 같은 학대는 DBT 모델의 견지에서 극단적 형태의 무시 경험(invalidation)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이 환경은 아동에게 자신의 경험을 기술하고 이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이것은 전혀 울 일이 아니야!”, “너는 별것도 아닌 걸로 늘 소란을 피워!” 결과적으로 자기 경험을 적절히 명명하고, 정서적인 각성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를 학습하지 못하게 된다.
셋째, 이 환경에서는 아동에게 자기통제, 자기독립이 매우 강조되고 약점이 인정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동이 겪는 문제는 적절한 동기만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간주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수행을 보일 경우에는 동기가 부족하거나 부정적인 성격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비난당하게 된다.
3. 정서적 취약성과 정서 무시 환경 간의 상호작용
정서적으로 취약한 아동이 이러한 환경에 처할 때 아동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주변의 현상에 대한 자기 자신의 반응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해도 이러한 문제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아동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타인을 의지하고 싶어하지만, 이 상황은 경직되게 자기독립과 자기통제를 강조하므로 적절한 도움도 받지 못한다. 결국 아동은 이러한 불운한 환경 속에서 심한 정서 억제(emotional inhibition)를 보이거나, 혹은 다른 극단에서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극단적인 감정 발산(extreme displays of emotion)을 나타내며 양 극단을 교차하게 된다. 극단적인 감정발산을 해야 그나마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주의를 받을 수 있게 되므로, 주변 환경의 반응은 아동의 행동을 간헐적으로 강화하고 부적응적인 행동패턴을 지속시키게 한다. 아동은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 실패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을 학습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 취약성이 정서 무시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정서조절불능이라는 BPD의 전형적인 증상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DBT 관점에서 바라본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의 특성: 세 가지 변증법적 딜레마
Linehan은 BPD 환자들이 앞에서 설명한 성장과정의 역기능적 생물-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여섯 가지 전형적인 행동패턴을 보이게 된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행동은 정서적, 인지적, 자율신경계 반응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로 사용된다. DBT에서는 이 여섯 가지 행동이 세 가지 변증법적 딜레마(dialectical dilemma)의 양극을 이룬다.
첫 번째는 정서적 취약성과 자기부정(self-invalidation)의 딜레마이다.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은 정서적 취약성이 BPD 환자들의 첫 번째 행동 패턴으로, 이들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인식하며, 타인이 자신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나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게 된다. 자기부정은 정서 무시적인 환경 특성을 내재화하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억제하며, 자신이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지각하고, 비현실적인 목표와 기대를 형성하고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는 데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면 수치감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분노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는 수그러들지 않는 위기와 억제된 슬픔이다. BPD 환자들은 충격적인 환경 사건을 빈번히 경험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자신의 역기능적 생활패턴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또한 기저선의 정서적 평형으로 회복하는 능력이 부족한 점과 극단적인 감정반응 경향에 의해 악화된다. 결과적으로 현재 맞이한 위기가 종결되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가 중첩된다. 한편, 정서 조절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직면할 수 없고, 부정적인 감정 특히 상실이나 슬픔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감정을 억제하는 경향을 획득하게 된다. Linehan은 이를 억제된 슬픔(inhibited grieving)이라 지칭하였고, 이것은 지속되는 위기감과 함께 두 번째 딜레마를 구성한다.
세 번째는 수동성과 외현상의 유능감이다. BPD 환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측면에서는 매우 수동적이다. 이들은 또한 성장과정에서 정서 무시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이 유능하다는 인상을 주는 방법을 학습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상황에서 이들이 실제로 유능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상황에 그러한 기술을 폭넓게 적용하지 못하며 순간순간의 기분 상태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DBT의 변증법적 특성
DBT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변증법적인 특성을 지닌다. 첫째, DBT의 전체 구조는 변증법적 관점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변증법적 요소는 수용과 변화라는 딜레마의 상호작용이다. DBT는 BPD 환자들이 보이는 자기부정을 다루기 위한 상반된 요소로서 수용과 인정을 목표로 한 특수한 치료 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수용을 추구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변화를 시도하여 양자 간에 변증법적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둘째, DBT에서 사용되는 변증법적 치료 전략은 극단적이고 경직된 사고 양상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는 모든 치료 과정 속에 스며들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변증법적 딜레마 외에 치료자의 태도나 환자와의 의사소통 양식 역시 변증법적 속성에 기반하고 있다.
DBT가 지향하는 치료적 관계
1. DBT에서는 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제와 가정을 기본으로 한다
첫째, 환자는 겉모습과 달리 변화를 원하고 있으며 현재를 비롯한 어느 순간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둘째, 환자의 행동패턴은 그의 성장배경과 현재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결코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며, 삶을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셋째, 그러나 상황이 호전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환자가 전적으로 비난을 받아서도 안 되지만, 환자에게는 상황을 현재와 다르게 만드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이 있다.
넷째, DBT에서 환자에게 실패란 없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은 치료이지 환자가 아니다. 치료자는 환자를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환자에 대해 그러한 이야기를 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태도는 성공적인 치료적 개입을 방해하는 해로운 요소이며, 또한 초기 성장기에 BPD가 발생하도록 만든 문제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2.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는 명확하게 구조화된다
치료자와 환자 간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무조건적 관계란 불가능한 것이고, 언제든지 환자가 의도하기만 하면 치료자가 자신을 거절하게 만들 수 있음을 명시한다. 또한 치료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해로운 일인지 분명히 인식시킨다. 환자는 치료자가 계속해서 자신을 돕고 싶어 하도록 격려하는 방식으로 치료자를 상대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DBT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치료 과정 중에 매우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직면시켜 다룬다. 치료자는 환자의 행동이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이를 일관적으로 지적해 주어야 하고, 그러한 상황을 보다 바람직한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을 교육함으로써 치료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에 대해 방어적이지 않은 자세를 취해야 하고, 자신이 경우에 따라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Linehan은 특히 BPD 환자를 다루는 치료자가 녹초가 될 위험에 매우 주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치료자들 간의 상호 지지와 자문이 DBT의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제안하였다. DBT에서 치료자 간의 지지는 선택사항이 아니며, 치료자는 환자에게 DBT를 시행함과 동시에 동료 치료자들로부터 DBT를 받는다는 것이 DBT 치료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DBT는 치료자와 환자 양자가 모두 치료에 대한 동기를 느낄 수 있도록 치료 상황을 구조화할 것을 강조한다.
치료 양식
대개의 CBT가 주로 개인심리치료의 단일 양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비하여, DBT는 네 가지 치료 양식이 병렬적으로 전개된다. 이 중에 주된 치료 작업은 개인 치료를 통해 이루어지며, 집단 치료와 그 외의 집단 기술 훈련, 전화 연락, 치료자 자문 등은 치료자의 재량 하에 분명한 치료 표적과 목적에 따라 추가된다. 따라서 개인 치료자는 DBT의 주 치료자로서 전체 치료를 조직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기술 훈련은 주로 집단 치료를 통해 시행되며, 구조화된 개인 치료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개인 치료자 이외의 다른 치료자가 집단 기술 훈련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환자들은 이 집단을 통해 보통 BPD 환자들이 전형적으로 경험하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기술을 교육받게 된다. 다음의 네 가지 기술 훈련을 BPD 환자들에게 적응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대인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전략으로 교육하게 된다.
(1) 마음 인식 기술(mindfulness skill)은 자기감정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부적응적인 저항 없이 있는 그대로 자기감정과 경험을 수용하기 위한 기술 훈련이다.
(2) 불편감 인내 기술(distress tolerance skill)은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내성을 증가시키고, 고통에 대한 부적응적 행동을 감소시키는 기술이다.
(3) 정서 조절 기술(emotion regulation skill)은 정서적 취약성을 감소시키고 현재의 정서 상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증가시키는 기술이다.
(4) 대인관계 기술(interpersonal)은 대인상황의 우선순위, 목적을 명료화하고 적절한 자기주장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1. 전화통화
회기 사이에 치료자는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 이는 DBT에서 많은 치료자들이 주저하는 측면이기도 하지만, DBT에서는 치료자가 전화통화에 대해 분명한 한계를 설정할 수 있으며, 전화통화가 어떠한 치료적 목적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지도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다.
전화연락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결코 심리치료를 위한 통화가 아니다. 이는 환자가 회기 중에 배운 기술을 실생활에 잘 적용하고 일반화하도록 돕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자해행동을 방지하는 것이다. 전화는 반드시 치료자만 거는 것이 아니며, 환자 측에서도 자신이 치료자와의 관계를 손상시켰다고 느끼고 이를 다음 회기에서 만나기 전에 바로잡고 싶어 할 때는 관계의 회복을 목적으로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전화연락의 중요한 목적이 자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환자가 실제로 자해 행동을 한 후에는 전화연락이 허용되지 않는다. 당장 환자가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된 후 24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더 이상의 전화통화가 허용되지 않는데, 이는 자해행동을 강화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치료적 장치이다.
2. 치료자 자문
치료자 자문은 동료자문 및 슈퍼비전의 형태로 상호간에 DBT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는 DBT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적 요소로 여겨진다. 치료자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 DBT적인 양식을 따라 변증법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각자가 맡고 있는 환자나 치료자의 행동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치료자 개인의 한계를 존중하며 환자를 치료하듯이 서로를 상대해야 한다.
치료의 실제 과정
BPD 환자들은 매우 다양한 문제와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어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DBT에서 치료 과정은 각각 특정한 목표를 갖는 몇 가지 단계로 구성되고, 각 단계는 치료 표적의 위계에 따라 구성된다. 이러한 단계 설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전제는 ‘일단 환자를 살리고 치료에 적절히 몰입시킨 후 인생의 살 가치를 느끼도록 진행한다’ 는 것이다.
개인치료는 대략 다음과 같은 치료 표적에 주목하여 진행한다.
(1) 자살 행동 감소시키기(예: 유사자살 행위, 자살 사고, 계획, 위협 등).
(2) 치료 방해 행동(therapy interfering behavior) 감소시키기(예: 회기 불참, 대화의 화제를 회피하거나, 집단 내의 다른 성원을 무시하는 행동, 부적절한 시간에 전화를 하는 등 치료자의 한계를 자극하는 행동).
(3) 삶의 질을 저해하는 행동 감소시키기(예: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DSM-IV 축I의 장애, 장기간의 사회적 고립이나 실직, 물질남용, 문란한 성행위, 난폭한 운전 등 위험한 행동).
(4) 행동 기술 증진시키기(예: 정서 조절 기술, 대인관계 기술, 자기관리 및 자기감정 인식 기술, 불편감 인내 기술).
(5) 외상 후 스트레스에 관련된 행동을 감소시키기
(6) 자존감 증진시키기
(7) 환자와 협의한 개별적인 치료 표적
특히 자살 행동은 그 어느 문제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전 회기가 끝난 이후 자살 행동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다음 회기의 처음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 환자가 이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려고 시도해도 절대로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유사 자살 행동(parasuicide)이란 실제 자살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어떠한 자해나 자살과 관련되는 행동을 포함한다. BPD 환자들의 70 내지 75%는 최소한 1회 이상 자살 시도 혹은 치명적이지 않은 자해 행동을 시도한 과거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BPD 환자들은 불편감을 비롯한 자신의 감정상태를 매우 견디기 어려워하고 이에 대한 적응적인 조절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정서 조절을 위해 자살, 자해, 공격성과 같이 매우 부적응적인 대응 행동을 하게 된다. 일부 BPD 환자들은 섭식장애에서 나타나는 폭식행동을 보이기도 한다(Wiser & Telch, 1999).
DBT의 기술훈련 내용
DBT의 기술훈련은 정서와 대인관계 조절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이는 대개의 경우 집단 치료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개인치료에서도 구조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각 기술훈련에는 매우 다양한 구체적 치료 기법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문헌을 살펴보기 바란다.
1. 자기 인식 훈련(mindfulness skill)
‘Mindfulness’ 란 비판단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주어진 현재 순간을 관찰하고 기술하고 이에 몰입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불교의 명상 기법으로부터 응용된 것이다. 이 훈련에서는 자기 경험의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고, 주어진 순간의 경험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도록 돕는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판단’ 을 감소시키고, 현재의 경험에 대한 인식과 수용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환자들은 보통 비판단적이고, 판단적이고, 과거나 미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 훈련에서는 현재 순간의 자기 경험을 판단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된다. 극단적인 행동과 감정 폭발은 내면의 고통스러운 정서 경험에 대한 일종의 회피지만, 자기인식은 직면을 추구한다. 현 상황의 즉시적인 경험에 대해 직접적인 직면과 접촉이 이루어지는 한편, 동시에 이로부터 한걸음 물러서는 거리유지가 가능해진다. 비판단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은 ‘판단’ 에서 기인하는 죄책감이나 수치심과 같은 감정 반응을 감소시키고, 선호나 판단 없이 모든 경험에 동등한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를 유발한다.
DBT의 이러한 기술 훈련을 통해 환자들은 정서 경험이라는 것이 순간적이고 주어진 순간에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현재의 경험은 영속적으로 변화하는 현실의 일부분일 뿐이며, 일출일몰처럼 일시적으로 찾아왔다 사라지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고, 현재의 순간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통제하고 수정하려는 시도 없이, 그대로 인정하고 직면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의 감각과 감정, 충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주시하고 판단하지 않고 기술하는 방법을 학습함으로써 경험을 과장하거나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방지하고 좀 더 유연하게 충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2. 대인관계 기술(interpersonal effectiveness skills)
여기에서는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교육시킨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요청하고, 때에 따라 거절할 수 있고 이를 상대가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타인과의 상호교류에서 관계를 지속시키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3. 정서조절 기술(emotion modulation skills)
정서 조절 기술 훈련은 불쾌한 정서를 ‘제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며, 정서적인 고통을 줄이고 강렬한 정서 상태의 강도, 지속시간이나 빈도 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감정을 회피하거나 대항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감정과 함께 지내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이 자신에게 어떤 기능을 하고, 그 감정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감정 상태를 조절하여 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다.
정서 반응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탐지하고, 정서의 역할을 이해하고, 불편한 정서에 대한 취약성을 감소시키고,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유도해 내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변화시키는 방법과 과정을 학습한다. 사건에 대한 해석의 내용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서반응 간의 관계를 밝히고, 정서 반응에 수반되는 신체 반응이 어떤 것인지 학습한다. 강한 정서상태에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동기가 어떠한 것인지, 정서 경험을 명확하게 명명하는 것과 정서의 적응적인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학습한다.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취약하게 만드는 행동 패턴, 예를 들어 적절히 수면을 취하지 않거나, 술과 약물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행동 등을 탐지해 내고 수정한다. 적절한 운동이나 유쾌한 활동 등 부정적인 감정을 직면할 때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돕는 행동 패턴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진다.
부정적인 감정에 상반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서조절 능력의 획득과정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치료 전략이다. 기본적인 전제는 어떤 감정과 연관된, 즉 감정으로부터 유발되는 행동(예: 무서울 때 도망가거나, 화가 날 때 공격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경우, 그러한 감정이 보다 심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바꾸기 위해 그러한 감정이 압박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기술 훈련이 시도된다. 이는 정서의 운동반응 요소(예: 표정, 제스처)에 변화가 있을 때, 전체 정서 반응 체계에도 변화가 온다는 정서 이론에 근거한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공포심을 느끼고 상황을 회피하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 오히려 이에 다가가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공포를 감소시키는 경우가 있다. 또, 우울할 때 무기력한 상태에 자신을 방치하기보다 활동 수준을 증가시키는 것이 우울감을 경감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4. 불편감 인내 기술(distress tolerance skills)
고통스러운 상황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피한 부분이고, 그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전제에 기반한 기술 훈련이다. 만약 매우 고통스러운 정서 상태를 바꿀 수 없다면 부적응적인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그러한 감정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기법을 학습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범주가 있는데 한 가지는 심한 주관적 불편으로부터 주의를 전환하거나 이를 경감시키기 위한 목적의 여러 가지 인지적, 행동적 치료 기법으로 구성된 위기극복 전략(crisis survival strategy)이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꾸려 하거나 회피하려는 시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열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용 전략(acceptance strategy)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수용 전략은 환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기술 훈련이다. 현 상황에서 주어진 고통에 완전히 젖어들고 닥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면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정서적 혹은 행동적으로 대항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총동에 반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는 상황에 대한 수동성과는 다른 것이며 변화시킬 수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상황을 왜곡 없이 직면하고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맺음말
DBT는 BPD 환자들과 그 치료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치료 방법이다. DBT는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에 지속적으로 참여시키는가 하는 문제, 치료자의 치료 동기와 개인적인 안녕을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다룬 치료 방법이다. 이는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BPD 정신 병리 이론에 기초하고, 다른 여러 치료 방법으로부터 유용한 치료적 요소를 흡수하고, 특히 치료자와 환자의 견고한 관계가 주는 치료적 유익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강조하여 개발된 것이다.
치료는 단계별로 명확하게 구조화되고, 각 단계마다 치료 표적의 위계가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으며, 특히 유사자살 행동과 같이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 행동을 다루는데 유용한 치료 방법이다. DBT에서 사용하는 치료적 기법은 광범위하고 다양하며, 근본적으로 ‘균형 잡히고, 유연하고 체계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변화를 촉진하는 기법은 수용을 강조하는 기법에 의해 변증법적인 균형을 이루게 된다.
경험적인 연구에서도 DBT는 자해행동, 유사자살행동을 감소시키고, 치료과정에서 입원일수를 줄이며, 약물 투여가 필요한 긴급한 상황의 발생을 감소시키고, 치료효과를 지속시키는 등 다른 치료방법에 비해 우수한 치료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살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나타내는 BPD에 대한 최초의 경험적으로 지지된 치료방법이기도 하다.
Review 21. 폭식장애의 위험요인과 치료
기존 연구
폭식장애의 위험요인으로는 다이어트, 완벽주의, 몸매에 대한 불만, 낮은 자존감 등의 내적 변인과 가족 상호관계 양상의 장애라는 환경적 변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폭식을 하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 다이어트나 식사를 절제하는 행동이 선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어트는 생리적 압박(예: 허기)을 효과적으로 무시하고 이를 인지적 통제로 대체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인지적으로 매개되는 활동’ 이라고 한다. 이런 억제적 인지가 방해를 받으면(예를 들어 부정적 정서에 의해) 탈억제된(disinhibited) 양상의 음식 섭취가 나타나는 것이다.
완벽주의가 섭식장애와 관련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슈퍼우먼’, 즉 무슨 역할도 완벽하게 해내는 전체적으로 완벽한 여자를 이상으로 삼는 여대생이 섭식장애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다. 한편 자기 몸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 특히 더 날씬해지고 싶어 하는 것도 상당한 위험 요인임이 밝혀져 왔다.
자존감이 낮은 것도 다이어트와 폭식 모두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이 다이어트와 폭식에 선행하는 것인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인가, 혹은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섭식장애 발달의 나선형 모델에 따르면, 다이어트와 자존감에는 상호 호혜적(reciprocal) 관계가 있다. 즉,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실패를 더 잘하게 되므로, 계속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부정적 정서가 더욱 커지고 자신의 몸매를 수용하지 못하고 실제로 다이어트를 성공하지도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의 측면에서 보면, 폭식장애 환자는 물론 그 부모도 자기 가족이 갈등이 많고 응집력이나 애정적인 보살핌의 정도가 낮다고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Fairburn(1997)에 따르면, 부모의 문제, 부모의 정신적 질환, 환자가 과거 성적 신체적 학대의 경험이 있는 것이 폭식과 관련성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기존의 위험 요인 연구들은 주로 상관연구에서 나온 것이고, 각 요인 하나하나를 연구대상으로 한 것이다.
폭식 증상의 3요인 상호작용 모델
Vohs는 여러 위험 요인들을 함께 고려하여, 이들이 어떻게 해서 폭식행동을 가져오는지를 개념화하기 시작했다. 완벽주의를 논의의 시발점으로 해보면 섭식장애자는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날씬한 상태에 이르고 싶어 하는 것이므로, 완벽주의 즉 거의 완전무결한 수준에 도달하고 싶은 소망과 섭식장애가 관련되리라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완벽주의가 섭식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밝혀져 온 사실이지만, 그 관련성은 상관연구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그러한 관련성도 불안정하게 나타나는 편이었다. 완벽주의가 있다고 해서 모두 섭식장애에 이르는 것이 아니며, 다른 위험요인과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되었을 때에만 섭식장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Joiner는 완벽주의적인 여성이 자기 몸매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게 되면 폭식증상이 생기지만 몸매에 대한 불만족이 없으면 폭식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즉 완벽주의가 취약성이고 몸매 불만족이 스트레스가 되는 취약성-스트레스 모형을 제안한 것이다. 이 두 요인의 상호작용 효과는 지지되었고, 완벽주의와 몸매 불만족의 주효과보다 더 유의미했다. 이는 체중에 대한 자신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할 때에만 완벽주의가 폭식증상의 취약성 요인이 됨을 보인 것이다.
Vohs는 이에서 더 나아가, 몸매가 불만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완벽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폭식과 같은 비생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중을 줄이거나 아니면 몸매에 대한 내적 기준을 변화시키는 등 건설적 행동을 하는 여성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절 변인을 연구자들은 자존감으로 가정했다. 즉, 몸매가 불만스럽고 완벽주의적인 여성이 자존감이 낮으면 폭식행동을 하겠지만 자존감이 높으면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정은 3요인 상호작용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남으로써 지지되었으며, 따라서 완벽주의적이고, 몸매에 대해 불만족하고, 자존감이 낮은 것이 함께 있을 때 폭식증상의 위험요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의할 것은 세 위험 요인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있다고 해서 폭식증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세 가지 모두가 함께 있을 때 폭식증상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또한 이 세 요인 중 어느 한 가지를 수정하더라도 폭식 증상이 감소될 수 있다.
평가
위의 3요인 모델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평가할 수 있다. 폭식장애에 대해 신뢰롭고 타당한 도구로 EDI(eating disorder inventory), EDE(eating disorder examination interview)가 있다.
EDI는 8개 척도로 된 자기보고 검사이다. 이 안에는 6문항으로 된 완벽주의 척도가 있는데, 자기지향 완벽주의와 사회적으로 부가된 완벽주의 두 가지를 측정하여 전체 점수로 전반적 완벽주의 점수를 산출한다. EDI에는 자존감 척도는 없지만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을 측정하는 10문항짜리 비효능성 척도가 있다. 또 자기 체중에 대해 어떻게 지각하는지에 대한 문항이 없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몸매에 대한 불만족을 측정하는 척도인 8문항짜리 지각된 몸매 괴리(discrepancy) 척도가 있다. EDE는 반구조화된 면접으로, 완벽주의나 자존감에 대한 평가 부분은 들어 있지 않지만 지각된 체중 괴리에 대한 항목은 포함하고 있다. 현재 체중과 바라는 체중, 체중과 몸매에 대한 불만족, 살을 빼고 싶은 소망 등도 함께 평가한다.
완벽주의를 평가함에 있어서, Hewitt와 Flett의 다차원적 완벽주의 척도에서는 자기지향적 완벽주의, 사회적으로 부가된 완벽주의, 타인에 대한 완벽주의 기대 세 가지를 측정하지만 섭식장애 모델에서는 세 번째 요인은 적절하지 않으므로 제외한 것이다. 또 Frost 등의 다차원적 완벽주의 척도에서는 실수에 대한 염려, 자신의 기준, 부모의 기대, 부모의 비판, 행동할 때의 회의, 조직화 등의 하위척도가 포함된다. 이러한 완벽주의 하위 요인이 섭식 행동과 차별적으로 관련되는지 아니면 전반적인 완벽주의 수준이 위험요인으로 더 중요한지가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 완벽주의 수준이 위험요인으로 기능할 소지가 더 높은데, 왜냐하면 전반적 완벽주의 수준이 높으면 여러 영역에 걸쳐 기대수준이 높을 것이고, 때문에 괴리를 느낄 기회가 더 많아져 부정적 사고와 감정을 느낄 소지도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대체로 상태 자존감 척도(SSES), Rosenberg 자존감 척도를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에서는 자존감 대신 자기효능감이 이 모델에서 좀 더 적절한 개념이라고 보고 있다. 자기효능감은 내가 하려고 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정도를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완벽주의가 높은 사람들이 자기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 당시 자기효능감이 높다면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초점적 부정적 사고와 감정을 지나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제안을 생각한다면, 3요인 모델에서 자존감보다 오히려 자기효능감이 더 큰 예언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Bandura(1997)의 이론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이 바로 행동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다. 자신의 기준과 성취 간에 괴리가 있다고 지각될 때, 이것이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낙심하게 만들 것인가 여부는 그 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지각하는 정도 즉 자기효능감에 달려 있다. 자기 능력을 불신하면 실패로 인해 쉽게 낙심하지만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동기화될 것이다. 자기효능감 측정치 가운데 자기효능감 척도(Sherer & Adams, 1983)가 가장 널리 사용된다. 완벽주의와 마찬가지로 자기효능감도 영역별로 나누어 보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전반적 자기효능감 수준이 더 적절한 변인인지는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Bandura(1986)는 과제나 영역에 특정적인 자기효능감이 행동을 가장 잘 예언하며, 그 영역에 한정된 자기효능감 측정치를 사용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Joiner와 Vohs 등의 연구자들은 모두 체중과 몸매에 대한 불만족을 스트레스 변인으로 연구하였다. 피검자들에게 자기 체중이 매우 저체중, 저체중, 보통, 과체중, 매우 과체중의 다섯 범주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평정하도록 하여, 과체중과 매우 과체중이라고 응답한 경우를 체중에 대해 불만족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체중 외에 다른 영역에서의 자기 괴리도 이 모형에 적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 스트레스(애인과 관계에서의 불만, 친구와의 다툼과 같은)나 성취 스트레스(성적이 낮게 나오거나 고과 평가가 낮은 경우와 같은) 등이 있을 때, 완벽주의가 높고 자존감이 낮다면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생기게 되고, 여기에서 도피하고자 폭식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틀을 가지고 볼 때, 다양한 영역에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포함시키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생활사건척도(LES) 같은 포괄적 측정치를 사용해 볼 수도 있다.
다이어트가 폭식증상 발생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본 모형에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진행 중인 연구들에서 다이어트를 포함시켜 보았는데, 다이어트를 하려는 억제적 인지가 자기관련 스트레스(예를 들어 너무 완벽주의적이고 자존감이 낮으며 자신이 과체중이라고 지각함으로써 경험될 수 있는) 때문에 방해를 받게 되면 탈억제적 섭식 행동이 나타나게 되리라는 가능성이 나타났다. 차후 연구에서 다이어트, 완벽주의, 신체 불만족, 자아 위협의 4요인 모델을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3요인 모델과 치료
1. 인지행동 치료(CBT)
CBT는 폭식증 치료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어 왔으며,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치료 방법이다. 폭식하기, 토하고 설사하기, 절식하기 등의 행동적 양상과, 이러한 행동 및 체중, 몸매와 관련된 역기능적 사고와 신념에 초점을 둔다. 폭식증이 유지되는 요인에 대해서는 낮은 자존감, 몸매와 체중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 등이라고 본다. Wilson의 인지행동 모델에서는, 체중과 몸매에 대한 과도한 염려로 인해 경직되고 비현실적인 지나친 절식을 하게 되어, 결국 이것이 음식 섭취에 대한 통제력 상실 위험성을 높이게 되어 폭식을 초래한다고 본다.
완벽주의에 대해서 보면, CBT는 ‘몸매가 날씬하면 매력있고 성공적이고 행복하다’ 와 같은 체중과 몸매에 대한 완벽주의적인 역기능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파악하고 이를 수정함으로써 완벽주의를 다루고 있다. 폭식 장애 CBT에서는 주로 몸매와 체중에 대한 완벽주의적 신념을 다루지만, 일반적인 완벽주의나 다른 영역에서의 완벽주의도 모두 고려의 대상이 된다. fairburn(1997)은 완벽주의와 관련하여, 폭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분법적, 실무율적 사고를 자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실무율적 사고는, 다이어트와 체중감량에서의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조금만 이를 어겨도 통제를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행동을 s kg게 할 소지가 높다. 차후 폭식증 발생에 더 많이 기여하는 것이 실무율적인 사고인지 완벽주의인지를 규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존감도 인지행동치료에서 중요한 개념적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환자는 스스로 자기 섭식 행동을 변화시켜 봄으로써, 자기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효능감과 자존감이 높아지게 된다. 즉 자기가 무가치하다는 역기능적 사고와 신념, 낮은 자존감이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지행동치료에서는 몸매와 체중에 대한 극단적인 염려와 관심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자신이 과체중이라고 지각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자신이 과체중이라는 지각이 지나친 것임을 보이기 위해 건강한 정상 체중과 body mass index(BMI)에 대해서 교육하기도 한다. 체중과 몸매에 대한 역기능적 사고(예: 나는 뚱뚱하다, 나는 살을 빼야 한다)를 파악하고 그러한 생각의 증거와 반대증거를 자세히 탐색하며, 이러한 생각 기저에 있는 신념, 가치관,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기원을 자세하게 파헤친다. 역기능적 사고와 기저 신념을 파악해 내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재구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정말 과체중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실이 내가 실패자이고 매력이 없고 약한 존재임을 의미한다는 신념 때문에 괴로워하게 되는 정도는 줄어들 수 있다. 대체로는 체중과 몸매에 대한 역기능적 사고와 신념에 초점을 두지만, 다른 영역에서의 자기 괴리가 폭식행동을 유발하는 경우에는 이 영역에 대한 역기능적 사고와 신념을 다루게 된다.
2. 대인관계치료(IPT)
폭식증상에 IPT를 적용하는 것은 CBT보다 최근에 이루어진 조류이다. Fairburn 등의 연구에 따르면, IPT는 CBT만큼이나 효과가 좋으며 추적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IPT는 식사, 몸매, 체중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고 현재 대인관계 문제를 파악하고 수정하는 데 초점을 둔다. 식사 등과 관련된 논의에 빠지게 되면 중요한 기저의 대인관계 문제를 간과하는 결과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IPT가 완벽주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대인관계 문제를 다루면서 완벽주의적인 사고를 발견하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대인관계가 어떤지를 평가할 때 자기와 타인에 대한 기대를 물어볼 수 있고, 여기에서 혹시 완벽주의적 사고가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와, 완벽주의를 조장하는 상황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지나치게 완벽주의적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고, 자신의 완벽주의적 기대가 갖는 장단점을 한번 생각해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낮추고 조정할지를 모색할 수 있다.
자존감도 IPT에서 다루어진다.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재 대인관계 문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존감 문제를 알아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가져오는 데 내담자가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돕는 능력을 경험하게 되므로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이 높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흥미롭게도 자존감에 대한 이론 대부분이 대인관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대인관계에서의 만족이 자존감과 중요한 관련성을 가짐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IPT가 식사나 몸매와 관련해서는 논의를 하지 않고자 하므로 몸매 불만족도에 대해서는 다룰 수 없지만, 대인관계 영역에서의 괴리나 스트레스를 탐색함으로써, 특히 폭식행동에 선행하는 대인관계 스트레스 상황을 탐색함으로써 이 부분을 다루는 셈이 된다.
종합하면, CBT는 완벽주의적 사고와 기저 신념의 타당성, 장단점을 평가함으로써 역기능적 완벽주의적 사고를 수정하며, 이를 통해 완벽주의 문제를 다룬다. IPT에서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완벽주의적 사고나 환경을 탐색해 볼 수는 있지만 완벽주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CBT와 IPT 모두 자존감에 대해 평가하고 다루며, 치료적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자기효능감을 높여 준다. CBT는 몸매 불만족과 같은 스트레스를 다루지만, IPT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위의 모델에서 자기와 자신이 설정한 기준 간의 괴리가 몸매가 아닌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면 IPT도 대인관계에서의 자기 괴리를 다루는 데 적용될 수 있다. 이렇듯, CBT가 본 모델에 근거해서 치료적 접근을 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이며, IPT는 CBT를 잘 보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즉 완벽주의, 낮은 자존감, 몸매 불만족 세 요인을 증폭시키거나 유지시키는 대인관계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3요인 이론과 예방
본 3요인 모델은 폭식행동 위험성을 높이는 취약성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예방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Fairburn이 주장했듯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전체를 다룰 것이 아니라, 그 유형을 이론적으로 구분해서 다루는 것이 좀 더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이나 완벽주의적 경향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예방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1차 예방 즉 위험요인이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의 측면에서는,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을 높여 주는 전략이 좋다. 2차 예방 즉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측면에서는 각 취약성 요인을 감소시켜 주는 방식의 개입을 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
인지행동이론에서 주장하는 골자는 거식 및 폭식 증상이 몸매와 체중에 대한 왜곡된 과도한 사고(overvalued idea)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완벽주의, 금욕주의, 정서조절문제와 같은 개인적 특성과 여성 외모에 대한 사회문화적 압력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이러한 사고가 생겨난다고 본다. 일단 이러한 사고와 신념이 형성되면 역기능적인 방식으로 식사하고 배설하게 되고, 부적절한 강화 수반성에 반응하고(예: 사람들이 너무 말랐다고 말하면 기뻐하는 등), 인지적 편파에 따라 정보를 왜곡처리하게 된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외적으로 서로 다르고, 폭식증 환자가 배경 변인, 성격 특성, 일반적 적응정도에 있어 훨씬 이질적이지만 그 기저의 신념체계는 매우 유사하며, 그 근본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체중과 몸매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한다.
폭식증의 CBT는 대개 3~6개월 동안 10~20 회기를 가진다. 거식증 환자들은 변화에 더 저항적이고 치료초반에 체중을 회복하는 것이 힘드므로 매주 한 번씩 1~2년간 하며, 첫 몇 달은 좀 더 밀도 있게 해야 한다.
거식증 환자는 치료에 저항적이라 연구에 참여시키기도 어렵고 체중 증가의 문제 때문에 치료효과 연구가 지지부진하지만, 폭식증에 대해서는 연구도 잘 되어 있고 치료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보면, 대체로 행동치료 단독으로보다는 인지행동치료가 더 효과적이며, 대인관계 치료효과도 이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인지행동치료는 약물치료보다도 자기보고된 폭식-토하기 주기, 우울, 섭식 태도를 감소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약물치료와 CBT를 결합했을 때는 약물치료 한 가지만 한 경우보다 효과가 더 우수했고, CBT 한 가지만 했을 때보다는 더 좋기도 하고 유사하기도 했다. 두 치료를 같이 하면 폭식 빈도에는 효과가 더 좋았지만 토하기 빈도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예비적인 결과이기는 하지만 추적해 보면 약물치료보다 CBT가 치료효과 유지에 더 우수했다.
1. 치료 초기
(1) 섭식행동 장단점 목록 만들기
환자가 자기 자신의 용어로 스스로의 섭식행동의 장단점 목록을 만들어 보도록 한다. 체중이 줄어들면 환자는 자기 통제감, 자신이 순수하다는 느낌, 성취감 등의 이득을 얻지만, 치료를 하게 되면 이러한 이득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방식으로 이 부분을 메워 주지 못하면 치료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치료자는 반드시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또한 섭식행동의 단점이라고 환자 스스로 말한 것들, 예를 들어 우울감, 짜증,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은 지나치게 절식하고 체중을 줄이려는 행동과 필연적인 관련성을 가진 것이며, 섭식행동이 주는 장점은 얻으려고 하면서 단점만 버릴 수는 없는 노릇임을 환자에게 주지시켜 주는 것이 좋다.
(2) 식사 습관과 체중 정상화
규칙적인 식사습관을 들이고 체중을 정상화시킨다. 거식증과 폭식증의 경우 모두, 우선적으로 식사습관과 체중을 정상적으로 만들어야 향후 효과적인 심리치료적 개입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환자의 신념체계가 왜곡되어 있고, 매우 불규칙적이고 혼란스러운 식사 패턴으로 인해 생리적 허기중추나 포만중추 신호 역시 혼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배고프거나 배부르다 등 환자의 내적 감각이나 생각은 식사습관을 계획하는 데 고려하지 않으며, 영양수준이나 양, 그리고 식사 간격을 이상적인 것으로 처방하여 환자로 하여금 무조건 ‘기계적으로’ 먹도록 한다. 살이 찌거나 폭식을 하게 될까봐 안 먹고 피하던 음식도 식단에 다시 도입한다.
(3) 심리 교육
먼저 섭식장애 일반, 폭식행동의 기제에 대한 인지이론과 앞으로 하게 될 치료적 기법의 논리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BMI와 그 해석법, 체중이 자연스럽게 늘고 줄기도 한다는 것, 정상체중 범위 등 체중에 관한 사항, 폭식과 토하기 및 설사를 반복할 경우 나타나는 전해질 비정상성, 부종, 침샘 비대, 치아 손상, 월경 불규칙, 허기가 더 커지는 등의 악영향, 토하거나 설사제, 이뇨제를 사용해도 체중을 줄이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사실, 즉 토해도 먹은 것을 많이 뱉어 낼 수 있지 못하며, 설사제와 이뇨제는 칼로리 흡수방지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 등의 필요한 사항을 교육한다.
2. 치료 중기
초반에 했던 규칙적인 식사행동을 계속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음식, 체중, 몸매에 대한 왜곡된 신념, 그리고 그 기저의 여러 가지 왜곡된 신념을 수정한다.
(1) 반응 방지
먹고 나서도 토하지 못하게 하는 반응방지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불안을 토하거나 설사를 하는 취소(undoing) 행위를 통해 통제하려는 환자의 시도를 깨뜨리는 것이다. 치료 초기에는 치료실에서, 후반에 가서 익숙해지면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연습하도록 한다.
(2) 인지 재구성
체중, 음식, 식단에 대한 왜곡된 역기능적 신념, 관련 상황에서 떠오르는 자동적 사고, 관련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오류를 역기능적 사고기록지 혹은 최근의 일화를 통해 파악하고, 증거 찾기 등의 방법을 통해 이를 수정하고 현실적이고 적응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여러 신념 가운데 체중과 몸매에 대한 사회문화적 압력으로 인한 것도 수정의 대상이 된다. 특징적으로 보이는 자기진술을 보면, ‘식사와 체중을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을 통제함을 의미한다.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면 비만이 될 것이다, 당분은 바로 지방이 되어 저장될 것이다, 토하거나 약을 먹어 설사를 하면 몸이 깨끗해질 것이다, 폭식을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오늘까지는 먹고 토하고 내일부터 잘해야겠다, 나는 왜 이럴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3) 심상 기법
몸매에 대한 왜곡된 신념을 심상기법을 통해 수정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몸매에 대한 상이 왜곡되고 과장되었다면 이를 둔감화시키거나 심상을 통해 수정시키고, 심상 속의 자기 몸매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같은 지시적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3. 치료 후기
치료를 종결하기 전에 환자의 취약성에 맞추어 재발 방지 기법을 계획하고 이를 연습한다. 향후 폭식의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자기통제를 할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 보고, 실제로 연습도 해본다.
또 체중과 몸매 외에 자기평가와 자기강화를 해줄 다른 기준이나 자원을 마련하는 것도 치료를 종결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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